소스페소! 같이 먹고 삽시다
[삶의 창]
[삶의 창]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이탈리아’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구찌, 아르마니 같은 명품을 먼저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자동차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패션에도 차에도 관심이 없는 나는 축구와 음식을 떠올렸다. 지난해 여름 코로나로 미각을 잃었던 나는 ‘미식의 나라’인 이탈리아에 흠뻑 빠져 즐기고 있다.
피자, 파스타 등과 더불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커피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이탈리아는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밀라노, 피렌체, 로마 정도를 제외하면 스타벅스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인구가 세번째로 많은 남부 최대 도시인 나폴리에도 스타벅스가 없다. 이탈리아는 한국에도 이제는 널리 퍼진 에스프레소 기계를 발명한 나라이기도 하다. 농도 짙은 에스프레소(espresso)는 ‘고속의’, ‘빠른’ 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형용사다. 이탈리아에서는 카페에서(엄밀히 말하면 bar에서) 에스프레소를 달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그냥 ‘카페(커피)’를 달라고 한다. 그러면 에스프레소를 한잔 준다. 이곳에서 커피는 곧 에스프레소다.
나폴리에는 ‘카페 소스페소’ 문화가 있다. 소스페소(sospeso)란 ‘매달린’, ‘걸려 있는’, ‘미루어진’이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다. 즉 카페 소스페소란 ‘맡겨둔 커피’라는 뜻으로,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가난해서 마시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누는 행위다. 혼자 와서 두잔을 시킨다거나, 두 사람이 와서 석잔을 시킨다거나 하는 식으로, 누군가를 위해 ‘달아놓는’ 것이다.
소스페소 문화는 커피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가령 미용실에서도, 피자를 파는 피제리아에서도 소스페소 문화가 있다. 돈이 없는 누군가를 위해 피자값을 낼 수도, 머리를 자를 비용을 달아놓을 수도 있다. 그것이 잘 지켜질까? 하는 의심부터 드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적용되기 힘들 것 같다. 문화적인 힘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소스페소 문화는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산업이 발달한 북부에서는 개발이 덜 되고 농업 위주인 남부의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한다. 남부와 북부의 소득 격차가 커서,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남부를 먹여 살려야 하느냐고 불만을 가진 북부인들도 많다. 남부인들은 그런 북부인들이 정이 없다고, 심장이 없는 냉혈한이라고 한다.
나폴리 거리에서는 식사하고 있거나 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항상 구걸하거나 꽃이나 라이터를 판매하는 잡상인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는 법을 익혔다. 그러나 추위에 떨며 구걸하는 노파를 볼 때면 마음이 약해진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노숙인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 나폴리 고고학박물관 맞은편에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 이불을 두고 노숙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와 큰 목청을 돋우며 노래하거나, 구걸하더라도 주인이 쫓아내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원래 식당과 함께 제공하는 서비스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한국이라면 영업에 방해된다며 내쫓았을 상황인데도 그렇지 않다. 이 모든 게 공생의 정신, 다 같이 함께 먹고 살자는 정신에서 오는 것이다.
나눔, 연대와 관련해서 나는 솔직히 그다지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가진 게 없는 쪽이었고, 내가 누군가에게 나눈다는 생각을 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나폴리에 머물면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환대와 도움을 받았고, (물론 이방인을 속이려는 사람들도 없진 않았다) 이 감각은 나 또한 한국을 찾은 이방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확신으로 굳어졌다. 한국에서도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나누는 소스페소 문화를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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