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은 모든 사람들한테 있다. 관객들 두 주인공의 친구 되길”···전주영화제 찾은 다르덴 형제
아프리카 난민 아이들 이야기
어른들 세상의 더러움에 맞서
단단하고 고결한 우정 빛나
“한국 관객뿐 아니라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토리와 로키타의 친구가 된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외국인(이주민)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이주민을 겁내는 사람들도 많다. 저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빛과 우정이다. 우정은 모든 사람들한테 있는 요소다. 이 영화를 보며 (주인공) 둘을 적이 아닌 친구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뤼크 다르덴)
장피에르·뤼크 다르덴 형제가 한국을 찾았다. 다르덴 형제의 최신작인 <토리와 로키타>가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한국에서 최초로 상영됐다. 27일 개막식에 앞서 전주 완산구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뤼크 다르덴은 이같이 말했다.
<토리와 로키타>는 아프리카에서 벨기에로 건너온 토리(파블로 실스)와 로키타(졸리 음분두)의 이야기다. 벨기에로 오는 동안 서로를 알게 된 두 사람은 남매처럼 서로에게 의지하며 쉼터에서 함께 지낸다. 토리는 체류증을 받아 학교를 다니지만 로키타는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다. 로키타는 카메룬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부치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체류증이 없어 합법적인 일을 할 수 없다. 마약을 운반하며 근근이 돈을 벌지만 번번이 브로커가 나타나 돈을 뜯어간다. 어느 날 마약상은 시키는 일을 하면 위조 체류증을 주겠다고 로키타에게 제안한다. 체류증을 얻을 방법이 없는 로키타는 석 달 동안 혼자 갇혀 지내는 것을 감수하고 대마 농장에서 일하기로 한다. 카메라는 88분 동안 주인공들 곁을 따라다니며 이들이 처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감독들은 한 신문기사를 읽고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날 장피에르 다르덴은 “수백명의 미성년자 이주민 아이들이 유럽으로 온 뒤 알게 모르게 사라져버린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이들이 음성적으로 계속 사라지고 있으며, 미래가 어둡다는 내용이었다”며 “현대사회에서 어린아이들이 계속 사라져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영화를 만든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토리와 로키타는 어린이인 동시에 난민이다. 보호자나 연고도 없다. 마땅히 이들을 보호해야 할 세상은 이들에게 매섭게 군다. 뺨을 때리고, 성적으로 착취하며, 가장 고되고 어려운 노동으로 이들을 몰아낸다. 뤼크 다르덴은 “(토리와 로키타는)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어린이 자체도 약자인데 이주민이라는 점이 이들을 더 심한 상태로 몰고 있다”며 “두 이주민 아이가 어른 앞에 있을 때 어떤 어려움에 봉착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만의 세상과 아이들만의 우정이 어른들 세상의 어떤 더러움보다도 고결하다는 것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연약한 아이들이지만 이들의 우정은 무엇보다 단단하고 빛난다.
영화에서는 대마 농장의 전경과 대마를 키우는 과정에 투입되는 노동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이는 두 감독의 취재를 바탕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뤼크 다르덴은 “저희 친구들 중 경찰 마약반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그들이 대마 재배지에서 갱단을 잡았을 때 찍은 사진을 몇 장 보여줬다. 사진을 바탕으로 대마 농장 세트를 만들었다. 실제 대마 재배지와 흡사하다”고 했다. 토리 역의 파블로 실스와 로키타 역의 졸리 음분두는 모두 영화에 처음 출연한 비전문 배우다. 토리와 로키타는 한 노래를 따로 또 같이 여러 차례 부른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노래다. 장피에르 다르덴은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 토리와 로키타가 이탈리아나 시칠리아어로 된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시칠리아에서 온 이민자 2세를 통해 두 배우에게 이 노래를 연습시켰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어릴 때 부모님의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처음 배우는 노래라고 한다”며 “또 이 노래는 오래된 이민자들의 노래이기도 하다. 스페인에 살던 유대인들이 이 노래를 개사해 설움을 담아 불렀다고 한다. 영화를 찍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라고 했다.
두 감독은 가난한 사람, 노동자, 이민자 등 사회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을 주인공으로 꾸준히 영화를 만들어 왔다. 장피에르 다르덴은 “저희가 그리는 인물들은 사회에서 벗어나 있거나 숨겨진 사람들이다. 이들이 저희를 선택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저희는 세랑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한때 광산업과 철강업으로 부유했지만 이내 굉장히 가난해진 곳이다. 이 도시의 사람들과 도시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내용의 영화들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번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2020년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올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방한이 무산된 뒤 영화제 측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올해 전주를 찾았다고 한다. 다르덴 형제는 개막식 외에도 마스터 클래스, 관객과의 대화(GV) 등을 통해 영화제에서 시민들과 만날 계획이다. 이후 서울에서도 여러 차례 GV를 가진다. 두 감독은 이 영화로 지난해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75주년 특별기념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한국에서 내달 10일 개봉한다.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06011831001
“유럽에서도 포퓰리즘, 특히 극우 포퓰리즘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당연히 느낄 수 있는 난민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중략) 우리의 대륙을 지배하는 부당한 법들에 우리는 여전히 대항해 싸울 수 있다.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고 우리는 이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
- 장피에르 다르덴, 2022년 10월26일 칸영화제 인터뷰에서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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