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절벽' 마주한 비대면 진료…유지냐 고사냐, 운명의 갈림길
의료법 개정 안 되면 시범사업 한다지만
초진부터 vs 재진 중심, 여전한 쟁점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첫 시범사업 이후 몇 차례 시도가 이어졌지만 그동안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됐다. 안전에 대한 우려와 기술적 한계 등이 이유였는데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예상치 못한 반전의 계기가 됐다. 전화나 화상, 컴퓨터 등을 이용해 의료기관 외부에 있는 환자를 진찰하고 처방하는 '비대면 진료' 이야기다.
코로나19 대유행 때 의료진과 환자의 안전을 위해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가 완전한 일상 회복과 함께 종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속되기 위해서는 의료법 개정이 필요한데 국회에서 개정안 통과는 힘들어진 상황이다. 의료계와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간 갈등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의료계는 오진과 환자 안전을 우려해 "비대면 진료는 보조 수단이며 재진과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들은 "초진을 제외한 재진 중심 진료는 새로운 규제"라며 "지난 3년간 인구 4분의 1에 달하는 환자들이 이용한 서비스가 고사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효용성 일부 입증했지만 종료 시계 '째깍째깍'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감염병예방법에 포함된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등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가 '심각' 이상일 때만 가능하다. 의료법은 의료기관 내에서만 의료업을 하도록 규정했는데, 코로나19 유행을 감안해 예외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그해 2월 시작된 비대면 진료는 지난해 말까지 1,379만 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복지부가 지난달 내놓은 '한시적 비대면 진료 현황'에 따르면 2020년 84만 명이었던 이용자는 지난해 1,272만 명으로 15배 이상 늘었다.
코로나19 재택 치료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비대면 진료는 3년간 736만 건이었다. 재진이 600만 건(81.5%), 초진은 136만 건(18.5%)이었다. 진료 후 처방까지 이뤄진 것은 514만 건(69.8%)이다. 질환별로는 고혈압(117만 건)이 15.8%로 가장 많았고 급성 당뇨병(55만7,000건)이 뒤를 이었다. 연령별로는 736만 건 중 만 60세 이상(288만 건)과 만 20세 미만(111만2,000건)이 각각 1, 2위였다. 참여 의료기관도 2020년 9,397개에서 지난해에는 1만5,596개로 증가했다. 3년간 참여한 총 의료기관은 2만76개이고, 종류별로는 의원이 1만8,790개로 93.6%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10월 설문조사에서는 '비대면 진료에 만족한다'(62.3%), '향후 활용 의향이 있다'(87.9%)는 응답률이 높았다. 이 같은 비대면 진료 성과와 설문조사 등을 근거로 복지부는 "보완 장치를 마련해 제도화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위해서는 의료법에 관련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 3년 넘게 이어진 위기경보 단계 '심각'이 다음 달 초 '경계'로 하향되면 비대면 진료는 종료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도 제도화를 위해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신현영 의원, 국민의힘 이종성 김성원 의원 등이 각각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혜영 신현영 이종성 의원 안은 재진 중심이고, 김성원 의원 안은 초진도 가능하도록 했다.
지난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제1법안심사소위를 열었지만 비대면 진료 관련 법안은 논의도 되지 않았다. 3년 넘게 한시적으로 시행된 비대면 진료는 내달 초 중단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복지위는 쟁점이 많아 추후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내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의료법 개정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국회 안팎의 관측이다.
"산업 논리일 뿐, 환자 안전이 우선" vs "의료 사각지대 해소, 세계적 흐름"
비대면 진료 입법이 가물가물해졌는데 쟁점은 그대로다. 특히 초진의 비대면 진료 포함 여부를 놓고 갈등이 치열하다. 의료계는 의사가 환자를 처음 대면해 진찰하는 초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의 표정, 걸음걸이, 동작부터 진찰이 시작되고 시진·청진·촉진·문진·타진을 거쳐 혈액·영상 등 추가 검사를 통해 최종 진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진료는 건강과 생명에 직결됐고 비대면 진료로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책임은 의료진이 지게 된다"며 "초진이 아닌 재진부터 적용을 해 보고 안전성에 대해 면밀히 따져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대면 진료 3년간 이용자 1,379만 명에 대해서는 "대부분 전화로 이뤄져 진료로 보지 않는다"면서 "환자 본인 확인도 어려운 전화는 가장 위험성이 높은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닥터나우 등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들이 모인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는 플랫폼 이용자의 대부분은 감기, 소화불량, 알레르기, 생리통 등 경증질환으로 비대면 진료를 이용했다고 반박했다. 생명과 직결되는 긴급한 증상이나 혈액검사 등 정밀한 진찰이 필요한 질병은 대면 체계를 유지하되 진단이 용이하고 처방이 명확한 질환은 비대면 진료가 대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지역별 의사 수 불균형,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과 노인 등 취약계층의 의료 사각지대 해소, 바쁜 일상으로 병원 이용이 어려운 이들의 접근성 개선, 대면 진료 예약과 방문에 필요한 시간 및 비용 절감 등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강조한다. 원산협 관계자는 "플랫폼 이용자 99%가 초진 환자라 재진 중심의 비대면 진료는 거의 모든 이용자의 서비스 접근을 막게 된다"며 "세계 기준을 따라가기도 늦은 상황인데 뒷걸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대면 진료 연장할 산소호흡기 '시범사업'
복지부는 법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시범사업으로 비대면 진료를 유지할 계획이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라 복지부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24일 국회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시범사업 범위와 기간 등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으로서는 시범사업의 앞길도 험난하다. 국회에서는 '법률을 무력화하는 입법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재진 중심으로 진행되면 스타트업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의료계도 시범사업의 내용부터 따져 본 뒤 참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시범사업을 준비 중"이라고만 밝혔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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