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고립’ 녹여야 사회가 건강”…‘연결’ ‘교류’도 사회서비스
서울 광진구 중곡동에서 홀로 사는 60대 남성 ㄱ씨는 알코올에 의존하며 지냈다. 2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뒤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하는데, 체력적·경제적 어려움이 있다. ㄱ씨는 한번 시작하면 밥이나 안주 없이 하루에 술을 5~6병씩 15일 동안 마신다고 했다. 광진구 구의동에 홀로 사는 50대 남성 ㄴ씨도 자주 술에 의지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습관이 됐다.
서울 중곡종합사회복지관의 홍유라, 박소연 두 주민활동가는 ㄱ씨와 ㄴ씨를 만나 각각 6개월, 1년여간 여러 야외활동을 함께했다. 이들이 술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매달 등산·소풍·영화관람·보드카페 등 다양한 활동을 체험했다. 그 결과 ㄱ씨는 “알코올을 절제하는 기간이 3개월에서 6개월로 소폭 늘었다. 위암 수술 후 여가생활 경험이 거의 없었는데 ‘문화누리카드’ 활용법도 알게 됐다”고 했다. ㄴ씨도 “주민활동가와 1년간 함께 하는 동안 한 번도 알코올 문제가 없었다. 건강에 더 신경 쓰게 됐고 스스로 행정복지센터의 복지 서비스를 검색해 신청하는 것도 가능해졌다”고 했다.
27일 열린 ‘2023년 서울시 사회적 고립 연결 포럼’에서 공유된 고립가구 지원 사례다. 주민활동가와 고립가구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자립 의지를 높일 수 있었던 건 중곡종합사회복지관이 지역 내 공공·민간·의료기관, 시민단체 등과 연계해 고립가구 지원 활동을 진행한 덕이다. 복지관은 지역 안에서 ‘50∼64살 저소득 중장년 1인 가구 남성’을 대상으로 이들이 집 밖에 나와 활동하고 기존 복지망에 연결 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복지관의 이유정 팀장은 “지역 안에서 1인 가구가 많은 곳을 조사한 뒤 주거취약계층이 밀집한 고시원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고립가구를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고립가구라고 해도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물품을 사러 나올 것이란 데 착안해 지역상점에서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을 활용했다. 지역상점을 여러 번 이용하도록 유도하면서 일단 집 밖으로 나와 상점 직원과 느슨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서울 마포구 성산종합사회복지관도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임대아파트나 다세대 지역에 거주하는 고립가구원을 직접 발굴하고 서로 관계망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40∼64살 저소득 주민들을 모아 만성질환 주민모임, 중장년 남성모임 등도 시작했다. 노인 2명이 한 조가 돼 노인 1명을 돌보는 ‘노노케어’ 프로그램도 2019년 시작했고, 이들이 65살 이상 독거노인 가구 등을 꾸준히 방문하도록 했다. 마포구에서 34년을 살았다는 주민활동가 박미자씨는 “혼자 사는 이웃을 직접 방문해 인사를 건넨 뒤 이후에 지속적으로 안부를 묻고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등 교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고립’은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적 문제가 됐다. 2021년 기준 서울시의 1인 가구는 149만명으로 전체의 36.8%다. 그해 고독사 건수는 1139건으로 전년(978건)에 견줘 16.4% 늘었다. <고립의 시대> 저자 노리나 허츠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는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 문제가 “신체 건강을 위협하고, 경제적 위기를 불러오는” 문제일 뿐 아니라 “분열을 조장하고 극단주의를 부채질하는 정치적 위기로서 우파 포퓰리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징후”라고 본다.
이런 고립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면 대 면’으로 사람을 만나고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시 사회적고립가구지원센터의 이수진 센터장은 “(앞으로) 고독사가 ‘제로’가 될 가능성은 없다. 예방하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며 “뛰어난 한 사람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연결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센터는 올해 관악·광진·도봉·마포구에서 ‘고독사 예방협의체 구성 지원’ 사업을 시범 운영한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김용득 성공회대 교수는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왕래, 교류, 연결이 이뤄져야 한다”며 “지금까지는 취약한 사람들의 어떤 욕구에 집중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대인 사회서비스가 이뤄져 왔다. (고립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서비스가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계망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기존의 접근과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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