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곧 국력, 韓 첨단기술 확보에 민관 의기투합 절실"
세계 질서가 첨단기술을 쥔 나라와 쥐지 못한 나라로 재편되고 있다. 이른바 기술패권 시대의 부상이다. 세계 각국이 첨단기술을 안보·경제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과학기술 경쟁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를 위해 민관이 원팀을 꾸려 양자기술과 같은 미래 혁신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인들과 과학기술 기반 혁신기업 전문가들은 27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23 키플랫폼'(K.E.Y. PLATFORM 2023) 특별세션1: 대전환의 시대, 도전과 기회'에서 기술패권 시대 한국의 생존전략에 대해 이같이 공감했다.
정병선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은 이날 "과학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기술패권 시대가 도래했다"며 "대내외적인 여건을 고려한 과학기술 혁신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ISTEP에 따르면 미·중 패권경쟁 중심에는 과학기술이 있다. 미국은 지난해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of 2022)에 따라 R&D와 인력 육성 등에 527억달러(약 70조5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인공지능(AI)과 양자기술 개발에도 5년간 1700달러(약 225조원) 투자를 결정했다.
중국은 미국 주도 국제질서 탈피 목적으로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8대 산업, 7대 전략기술 육성을 공언했다. 중국은 지난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 및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과학기술 예산 3280억위안(약 63조4000억원)을 확정했다.
정 원장은 과학기술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업이 R&D(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도록 세액공제와 전방위적 규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R&D 투자를 활성화하도록 세제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신성장 원천기술과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 R&D에 대한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특히 KISTEP은 10년 내 한국 사회에 변혁을 불러올 분야로 '데이터 보안'을 꼽았다. 데이터 보안 10대 유망기술로 △자율 무인이동체 보안기술 △인공지능(AI) 기반 지능형 사이버 보안 관제·대응 기술 △5G(5세대)·6G(6세대) 네트워크 보안 기술 △제조 공급망 및 시스템 보안 취약점 진단 기술 △동형암호 등 기능형 암호와 응용기술 △메타버스 사용자 보호 기술 △양자암호기술 △사이버범죄 예방·추적기술 △클라우드·엣지 보안 기술 △암호화폐 신뢰성 보장 기술 등을 꼽았다.
김재수 KISTI(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원장은 이날 세계 각국이 양자기술 확보전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KISTI에 따르면 미국은 2018년 '국가양자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산학연이 기술을 공동개발하고 국제표준을 주도한다는 내용이다. 중국도 2017년 국립양자과학연구소 설립에 13조원을 투자했고 일본은 2016년 양자기술을 인공지능(AI), 바이오와 함께 3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했다.
양자기술은 더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 최소단위인 양자 성질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기존 상용 컴퓨터는 0과 1로 이뤄진 비트(Bit)로 정보를 처리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정보처리 단위가 큐비트(Qubit)로 중첩·얽힘 특성에 따라 0과 1을 중첩해 나타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컴퓨터가 기존 암호체계를 풀려면 100만년 이상이 걸리지만 양자컴퓨터가 개발되면 몇 초 내로 풀 수 있다.
김 원장은 "양자기술은 중국과 미국의 연구활동이 매우 강하며 한국은 논문수가 점진 증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며 "주요국 논문수 비중은 중국 21%, 미국 16%, 독일 7%, 일본 4%, 한국 2%로 집계된다"고 분석했다.
김 원장은 "양자기술은 복합적인 기술이 요구돼 단기간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므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양자기술에서 우리나라의 성과가 미약하고 아직 산업화 초기 단계이나 향후 우주항공, 국방, 의료, 금융, 자동차 분야 등에서 수요가 급속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양자기술은 이어달리기 아닌 함께달리기 전략이 필요하다"며 "기존 R&D는 대학·연구기관이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이 이를 상용화하는 이어달리기 방식이었지만 양자기술은 딥테크(오랜 과학적 연구나 이전에 없던 공학 기술)이므로 시작부터 기업과 함께달리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훈 KISTI 양자정보응용연구팀장은 이날 양자컴퓨터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전달했다. 그는 "양자 컴퓨터는 갈 길이 멀지만 가능성 있다"며 "양자컴퓨터를 써서 특정 문제를 해결하려면 큐비트의 품질이 보장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키플랫폼에선 스웨덴의 '애그테크'(AgTech·농업과 기술의 결합) 기술이 소개됐다. 빅토르 요한슨 스웨덴 애그테크2030 프로젝트 리더는 "애그테크는 2050년 100억 명의 인구를 위한 식량을 생산하는 근간이 될 것"이라며 "식량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농작물 수확량을 최적화하고 폐기물을 줄이는 등 농업의 환경적 영향을 줄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애그테크2030은 수확량, 연료 소비량 등을 기록해 효율적으로 농사지을 수 있는 모바일 앱을 개발했다. 요한슨 리더는 유럽의 농업 현장에서 애그테크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도 설명했다. 그는 애그테크의 핵심 키워드로 △자동화 △빅데이터 △연결성 △디지털화 등을 꼽았다.
타코 반 소메렌 PAL-V 부사장은 이날 세계 최초의 비행 자동차 상용화 계획을 발표했다. PAL-V는 접이식 프로펠러를 탑재한 플라이 드라이브 차량으로, 속도는 최대 180㎞/h(도로 170㎞/h), 비행 가능한 거리는 400~500㎞(도로 주행 시 1300㎞)에 달한다. 평균 185m 길이의 활주로만 있으면 이륙할 수 있으며 일반 차량과 마찬가지로 주차도 가능하다.
소메렌 부사장은 "집에서 나와 운전하다가 비행할 수 있는 곳에서 비행한 뒤 착륙해서 원하는 도착점으로 가면 되는 것"이라며 "이동시간의 2~3배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28년 이후 2030년부터 완전한 자율 비행이 가능해질 걸로 보고 2세대 제품들도 고려해 준비하고 있다"며 "연료도 이퓨얼로 대체하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85퍼센트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 항공 모빌리티는 20년 이내에 새로운 대규모 시장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모건스탠리는 첨단 항공모빌리티 시장이 2040년까지 1조 5000억 달러에서 2조 9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키플랫폼에 참여한 과학기술 전문가들은 한국이 양자기술부터 애그테크, 첨단 항공 모빌리티 등 첨단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한국이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과 의기투합해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유재희 기자 ryuj@mt.co.kr,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김효정 기자 hyojhyo@mt.co.kr, 홍순빈 기자 binihong@mt.co.kr, 남미래 기자 futur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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