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與 퇴장 속 野 강행 처리…尹대통령 또 '거부권' 행사하나

안재용 기자, 민동훈 기자, 안채원 기자 2023. 4. 27.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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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한 민형배 의원이 27일 오후 제 405회 국회(임시회) 제5차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3.4.2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 등에 대한 규정을 의료법에서 떼어 내고 간호사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이하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의료와 관련되지 않은 중범죄를 저질러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의사의 면허를 최대 5년간 제한하는 '의료법 개정안'(이하 의료법)도 통과됐다.

간호사와 의사, 간호조무사 등 직역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의료 현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여당의 반대에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됐다.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쌀 의무매입법'(양곡관리법 개정안)처럼 결국 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회는 27일 본회의를 열고 간호법을 재석 181인 중 179표의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반대는 0표, 기권은 2표가 나왔다. 의료법은 재석 177인 중 154표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반대는 1표, 기권 22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때 당론으로 퇴장하며 간호법, 의료법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 등에 대한 규정을 기존 의료법에서 분리하고 간호사의 처우를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간호사의 역할과 업무를 의료법이 아닌 별도의 법으로 규정한다는 점 때문에 의료·보건 직역 단체 간 갈등이 첨예하다. 간호법 1조인 '모든 국민이 의료 기관과 지역 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는다'는 조항이 핵심 쟁점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간호사들이 지역사회에서 의사 없이도 단독으로 병원을 개원하려는 포석이라고 의심한다.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 일부 직역 단체들 역시 "간호사들이 소수 직역의 영역을 잠식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대한간호협회 측은 고령화가 빨라지는 만큼 지역사회에도 간호인력을 배치해 고령 인구 돌봄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현행법에 따라 간호사의 단독 개원은 불가능하며 간호사 면허 범위 내에서 업무를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간호법과 관련해 앞서 여러 차례 중재안을 제시했으나 간호협회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의료법은 의료 관련 법을 위반하지 않더라도 살인, 성범죄 등 중범죄를 저지르고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의사의 면허를 최대 5년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면허 취소된 후 재교부 받았음에도 또 다시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을 경우 면허취소와 함께 10년간 재교부를 금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의료법과 관련해 '모든 범죄' 대신 의료 관련 범죄와 성범죄, 강력범죄로 결격사유 대상을 축소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행정기본법이 자격 정지와 관련해 업무와 실질적 관련성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일반 범죄 전과를 이유로 의사 면허를 박탈하는 것이 가혹하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 방송법 개정안 등의 표결에 소속 의원 전원이 불참했다. 야당이 의석 수로 밀어붙이는 법안에 절대 동의하지 않겠다는 항의의 표시다.

야당은 간호법 등에 대해 윤 대통령에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우리 당과 함께 직역 간 갈등을 조정해야 할 입장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타협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민주당이 끝내 강행 처리를 한다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드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당의 건의대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간호법 또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같은 절차를 거쳐 폐기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가 재의결을 통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재석 인원의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여야 의원들이 모두 본회의에 참여할 경우 200표 이상이 필요하다. 앞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함에 따라 다시 국회에서 표결했지만 찬성표를 200표 이상 얻는 데 실패해 최종 폐기됐다.

이처럼 실제 시행 가능성이 낮음에도 민주당이 간호법 등을 밀어붙이는 것은 전략적으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더해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까지 불거진 민주당 입장에서 입법 공세를 통해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란 해석도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에 앞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에서 "민주당은 우리 당과 함께 직역 간 갈등을 조정해야 할 입장에 있으면서도 지금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국민을 갈라치고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주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한편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대책 가운데 하나인 '지방세기본법 개정안'(지방세법)을 재석 281인 중 찬성 280표, 기권 1표로 가결했다. 지방세법은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가도 부과된 지방세보다 세입자 전세금을 먼저 변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안채원 기자 chae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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