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전 일시멈춤’ 단속 일주일, “뭐가 위반이냐” 항의에 경찰도 ‘난감’
27일 오후 2시20분,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사거리로 달려오던 흰색 벤츠 차량이 언주로를 따라 우회전하자 호르라기 소리가 ‘삑삑’ 울렸다. “선생님,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하셨습니다.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강남경찰서 소속 박상도 경장이 빠르게 따라붙어 단속하자 운전석에 앉은 이모씨(40)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창문을 내렸다. “대체 뭐가 위반이라는 거에요? 하, 진짜 바빠 죽겠는데….”
10분 후, 흰색 정지선 앞에 멈춰 있던 승용차를 앞지른 오토바이 운전자 김찬우씨(58)도 단속에 걸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앞차가 왜 서 있는지도 몰랐단 말이에요. (횡단보도에) 건너는 사람도 없어서 가도 되는 줄 알았죠.” 퀵서비스 배달 일을 한다는 김씨는 “계도 기간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직접 단속 현장을 경험한 적은 처음”이라며 “(우회전 일시멈춤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갑자기 단속에 걸리니) 너무 황당하다”고 했다.
‘우회전 일시정지’ 본격 단속이 시작된 지 6일째인 이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도산공원 사거리 단속현장에서만 총 23건의 차량이 경찰 단속망에 걸렸다. 범칙금을 물진 않았으나 계도 조치를 받은 차량도 50건 이상이었다. 이날 경찰 단속에 걸린 운전자들은 “(제도가) 바뀐 지 전혀 몰랐다” “알긴 했는데 습관이 안 들었다” “15년 운전했는데 범칙금은 처음이다” 등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단속에 나선 경찰도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휴대용 단말기에 운전자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있던 박 경장은 “바뀐 제도를 모르는 운전자가 너무 많다”면서 “당분간은 단속을 너무 엄격히 하기보다는 계도 위주로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옆에 서 있던 김호영 경위는 “두 시간 가량 단속을 진행한 결과, 평균 10건 중 7건의 차량은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21일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계도기간이 종료되면서 교차로의 우회전 차량은 직진 방향 신호가 빨간불이면 무조건 ‘일시멈춤’ 해야 한다. 보행자가 있든 없든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계를 ‘0km’로 떨어트렸다 가는 게 핵심이다.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실제 운전을 하다 보면 멈춰야 하는지, 그냥 가도 되는지 헷갈릴 때가 많아 ‘우회전 신호등’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도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단속이 진행된 도산공원 사거리 일대에는 조만간 우회전 신호등이 시범 설치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우회전 신호등을 모든 교차로에 설치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오히려 교통체계에 더 큰 혼란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김영찬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신호등을 추가로 설치한다는 것은 규제의 수준을 더 높인다는 의미”라며 “이왕이면 우회전 신호등 없이 적응하는 게 낫다”고 했다. 김 교수는 “우회전 일시정지는 유럽, 북미 등 대부분 국가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통법규”라며 “선진적인 교통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했다.
우회전 일시정지에 따른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횡단보도의 형태를 일부 바꾸는 방식으로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정영제 서울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7월 발간한 내부보고서에서 ‘ㅁ’자 모양으로 설치된 교차로의 횡단보도 4개를 지금보다바깥 방향으로 각각 10m 가량 떨어트리거나 대각선 횡단보도를 설치하면 정체 현상을 개선할 수 있다고 했다. 정 연구원은 “우회전 교통량이 많은 1차로 구간에서는 횡단보도를 서로 떨어트려서 우회전 차량의 대기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매 신호바다 보행량이 아주 많은 교차로에서는 ‘x자’ 횡단보도가 일부 개선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0251445001
도로 위에선 볼멘 소리가 이어지고 있으나 교통체계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성장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조한선 한국교통연구원 도로교통연구본부장은 “교통도 일종의 문화이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적극적인 홍보·계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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