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고마운 라이벌 '슬램덩크', 亞 애니 힘 갖길" [인터뷰]①
"韓 영화 각본력에 충격…'부산행'·'엑시트' 인상깊게 봐"
"내 발밑 세계 바라보며 만든 작품, 세계가 봐주니 놀라워"
"다음 작품도 재난소재? 관객들이 질릴듯…다른 테마 생각"
지난 3월 내건 300만 관객 돌파 공약을 지키러 한 달 반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500만 돌파를 앞두고 밝힌 소감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27일 오후 ‘스즈메의 문단속’의 300만 관객 돌파를 기념해 한국을 재방문, 서울 용산구 노보텔스위트앰배서더 용산에서 한국의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난달 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우연히 재난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소녀 ‘스즈메’가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재난들을 막기 위해 신비로운 청년 ‘소타’와 함께 필사적으로 문을 닫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로 국내에서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일본 애니계의 거장,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내놓은 신작이다. 일본에서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특히 한국에서 2030 관객들을 중심으로 신드롬적 인기를 끌며 일본 영화 최초 기록을 경신했다. 올해 초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너의 이름은.’(2016)을 제치고 7년 만에 새롭게 쓴 국내 개봉 일본 영화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44일 만에 재경신한 것.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내건 300만 공약을 지킨 오늘(27일)을 기준으로 ‘스즈메의 문단속’은 5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아픔을 그린 지극히 일본적인 이야기에 바다 건너 한국의 관객들이 열광하는 현상을 바라보며 고무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많은 분들이 ‘스즈메’를 봐주실지 몰랐다”며 “지난 달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흥행할 자신이 솔직히 없었다. 전작 ‘너의 이름은.’ 같은 경우는 혜성의 재해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스즈메’보다 훨씬 알기 쉬운 엔터테인먼트였다. 반면 ‘스즈메’는 12년 전 일본에서 발생한 재해를 그린 영화이기 때문에 한국 분들이 이 작품을 즐겁게 봐주실지 확신하지 못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다행히 한국의 많은 젊은 관객분들이 호응해주신 덕에 이번에 한국에 방문할 때는 친구 집에 놀러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며 “제 자신이 생각해도 이 현상이 신기하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 자체가 특별히 한국에서 인기를 끈 이유가 무엇인지는 자신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한국과 일본이 오랜 기간 꾸준히 콘텐츠로 소통해온 지난 행보들이 ‘스즈메’란 작품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제가 일본에서 20년동안 애니를 만들었다. 2004년 이후 신작을 선보일 때마다 한국을 찾았다”며 “그 20년간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좋을 때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안 좋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저희는 작품이 나올 때마다 매번 한국을 찾고 한국의 관객들과 소통했다. ‘스즈메’의 성과는 그 오랜 소통의 소중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자신 역시 한국 실사 영화 및 드라마의 강렬한 스토리(각본)에 매료된 적이 많다고 고백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한국의 실사 영화들은 각본이 매우 강력하다”며 “개봉 당시에 비해 시간이 좀 흘렀지만, 개인적으로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과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를 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연출과 영상미도 뛰어나지만 이야기가 매우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다만 “뛰어난 각본을 개발하는 힘이 있는 한국인들이라 애니로 만들어져도 히트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한국의 애니는 실사 영화들에 비해 세계에서 히트한 작품이 없는 것인지 의아할 때도 있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재난 3부작’이라 불리는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은 모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2011년 접한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개인적 기억과 충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그는 “10년간 제 발밑의 세계를 바라보며 작품들을 만들었는데 그 이야기들을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공감하며 봐주시는 게 신기하다”면서도, “어쩌면 계속해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레 타인의 마음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길로 이어지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도 든다”고 최근의 깨달음을 전했다.
자신이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인 만큼, 차기작도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다만 그는 “배경을 일본으로 하되, 일본인이 아닌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애니를 만든다면 어떨까 싶다. 그게 요즘 현실의 리얼리티와도 가까운 거 같다”고 귀띔했다. 이어 “10여년 간 동일본대지진을 계속 잊지 못하고 있지만, 다음 작품도 재해를 소재로 한 작품이면 관객들이 질려하실 것 같다”며 “차기작은 다른 테마로 도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기록을 제쳐 솔직히 기뻤던 마음도 내비쳐 웃음을 안겼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사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렇고 최근엔 중국에서도 우리 작품이 개봉해 ‘슬램덩크’와 라이벌 관계”라며 “다만 한국에서 ‘슬램덩크’가 먼저 개봉해 좋은 인상을 줬기 때문에 ‘스즈메’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선 ‘슬램덩크’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또 “반대로 중국에선 우리 영화가 먼저 개봉해서 1위를 하고 있는 상황에 ‘슬램덩크’가 개봉해 열심히 쫓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쫓기는 상황”이라고 덧붙여 폭소를 자아냈다.
최종적으로는 일본을 넘어 한국, 중국 등 아시아의 애니메이션이 세계에서 힘을 가지고 파급력을 발휘하길 소망한다고. 그는 “아시아의 애니가 대단하다는 평가를 세계에서 받았으면 한다”며 “그런 점에서 더 많은 애니들이 나오길 바라며, 한국에서도 더 좋은 애니들이 많이 선보여지길 기대할 것”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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