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계 숙원 ‘복수의결권’ 도입···기대만큼 우려도 크다
비상장 벤처·스타트업에 1주당 최대 10개의 ‘복수의결권’을 허용하는 벤처기업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업계는 경영권 위협 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길이 열렸다고 반색하지만, 소액주주 권리를 침해하거나 세습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국회는 27일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60명 중 찬성 173표, 반대 44표, 기권 43표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대규모 투자 유치 과정에서 창업주가 지분율 30%를 밑돌거나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할 경우 발행주식 총수 75% 이상 동의를 얻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의결권 한도는 주당 최대 10개다. 경영권 위협과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걱정 없이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부작용에 대비해 각종 ‘보완장치’도 뒀다. 복수의결권 존속기한은 최대 10년이다. 보유기간 안에 상장할 경우 3년 유예기간을 거쳐 보통주로 전환되도록 했다. 창업주가 복수의결권 주식을 상속·양도하거나 이사에서 사임하는 경우, 또는 해당 기업이 ‘대기업(공시대상기업집단)’에 편입되는 경우에는 보통주로 즉시 전환된다. 감사 선임과 해임, 이사 보수 결정, 배당 같은 사안에는 보통주와 같이 1주 1의결권만 인정한다.
복수의결권은 일찍이 여야 가리지 않고 추진해온 사안이다. 2020년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이었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였다. 2020년 6월 개정안이 처음 발의됐지만 ‘상법의 1주 1의결권 원칙에 위배된다’는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날 본회의에선 표결 직전 여야 의원 8명이 치열한 찬반 토론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 오기형·이용우 의원이 반대, 같은 당 김병욱·김경만 의원이 찬성 토론자로 나서 야당 내에서도 의견 차이를 보였다. 이 의원은 “소액주주에 대한 보호장치가 취약한 국내 환경을 같이 봐야 한다”며 반대했다.
숙원을 풀어낸 벤처업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논평에서 “이번 법안 통과로 벤처기업들은 경영권 위협 없이 대규모 투자유치를 통해 세계시장으로 도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20년 12월 정부안을 발의한 중소벤처기업부는 “‘투자유치 대 경영권 불안’이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벤처기업들에게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고 평했다.
시민사회는 시장에 미칠 악영향을 경계하면서 보완장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장은 “벤처기업 상장 시 복수의결권이 보통주로 전환되면 급격한 소유구조 변화를 일으켜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결국 보통주 전환을 연기해달라거나 일몰규정을 없애달라는 소리가 나오고 전체 기업에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라는 요구로 이어져 재벌 세습을 제도화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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