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가결, 파업 예고한 의료계…대규모 의료공백 현실화되나
간호법 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 문턱을 넘은 가운데, 적지 않은 후푹풍이 예고된다.
국회는 27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을 모두 의결했다. 간호법 제정안(대안 수정안)은 전체 300석, 재석 181석 가운데 찬성 178명, 기권 2표를 받아 가결됐다.
두 법안은 양곡법과 함께 4월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이었다. 특히 간호 인력의 면허와 자격, 업무 범위, 처우 개선 등을 정한 간호법 제정안은 간호사 대 의사·응급구조사·임상병리사 등 비(非)간호사 사이의 직역간 갈등으로 번지며 시작부터 진통을 겪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전부터 간호법 저지를 위해 국회 앞 릴레이 시위를 전개하며 강도 높은 투쟁을 이어왔다.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열린 임원 연석회의에서는 법안 통과 시 △공동대표의 무기한 단식투쟁 △대통령에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요구 △13개 단체 공동 총파업 실행 등의 내용이 담긴 결의문을 발표했다.
의협 간호법·면허박탈법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7~19일 회원들을 대상으로 간호법 저지를 위한 총파업 찬반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3%가 파업에 찬성했다. 박명하 의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의협을 비롯한 13개 의료연대는 무기한 단식 투쟁에 돌입하는 동시에 파업 시기, 방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간호법 제정을 주장해온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12일 전국 62만 간호인과 간호법제정추진범국민운동본부(이하 간호법범국본)는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대로에서 '간호법은 부모돌봄법입니다', '간호법=부모돌봄법, 가족행복법입니다'라는 현수막과 민트색 손피켓을 들며 세(勢)를 과시했다. 정부·여당(국민의힘)이 지난 11일 국회 본관에서 민기존 간호법을 '간호사 처우 등에 관한 법'으로 변경하고 1조(목적) 조항에 '지역사회' 문구를 삭제하는 내용의 중재안을 내놨지만 김영경 대한간호협회장은 간담회장을 박차고 나가며 간호법 제정에 대한 변함 없는 의지를 분명히 내비쳤다.
앞서 의협을 필두로 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지난 13일 국회 앞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는 간호법과 의료인면허박탈법 강행처리를 중단하고 여야가 이해관계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처리해달라"고 강력히 호소하며, "우리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간호법과 의료인면허박탈법을 통과시킨다면 보건의료체계를 지키기 위해 총파업 투쟁에 돌입하겠다"며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이 연대에는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 등 13개 단체, 400만 회원이 포함돼 있어 의료계에선 대규모 의료공백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간호법이 통과해도 '병원 내'에서 간호사의 업무에 대한 즉각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 31개 조문으로 이뤄진 간호법 제정안의 내용이 대부분 선언적인 의미이고 새로운 내용도 많지 않아서다. 다만, 목적 조항에 의료기관 외 '지역사회'가 포함된 만큼 취약계층 대상의 방문 건강 관리나 가정 간호 등 병원 밖 지역사회 기반의 간호 업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의료계의 분위기다. 이날 표결에 앞서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발언한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사는 병원 안에서만 진료하지만, 아픈 환자는 병원 밖에서도 환자"라며 "집으로 찾아오는 환자가 절실하지만 의사가 과연 올 수 있나? 의사와 같은 의료진인 간호사가 환자에게 올 수 있게 하는 게 간호법"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병원 밖 지역사회에서 재택 방문 의료에 간호사의 출장 의료 행위가 가능해질 것이란 해석이다.
이번 법안 자체가 지역사회 통합돌봄체계 구축을 위한 숙련된 간호 인력 충원의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 간호사의 권리 및 처우 개선 내용이 담긴 제21조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 간호사를 고용하는 기관이 각각 간호사의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게 될 전망이다.
문제는 간호법 제정이 '시작'일 뿐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에서 담기 어려운 실질적인 내용이 시행령 개정을 통해 더해질 때마다 이번과 같은 직역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현재도 간협은 시행령 등 하위 법령 제정을 통해 법안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각 의료단체 간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시행령이 추가될 경우 의협 등 비간호사 단체가 '독소 조항'이라며 반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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