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감정 배제하는 현대음악 거부… 내면의 울림따라 왔다"
"나에게 음악은 감정… 감정이 흐르는 대로 작곡하면 좋은 곡 나와"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작곡가 케빈 퍼츠
2023년 그래미 어워즈 현대음악 작곡상을 받은 케빈 퍼츠(1972~)는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바쁜 작곡가로 손꼽힌다. 그는 2011년 오페라 '고요한 밤'을 미네소타 오페라 무대에서 초연하며 현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이듬해 퓰리처 음악상을 받아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고요한 밤(Silent Night)'은 1914년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프랑스군과 독일군 병사들이 한 때 휴전을 선포하고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던 사실을 기반으로 작품을 그렸다.
이미 이전부터 캘리포니아 오케스트라, 애틀랜타 심포니, 카프릴로 현대음악 페스티벌 등에 위촉되어 굵직한 작품들을 남겨왔던 그의 이름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 오페라)에서 '더 아우어스(The Hours)' 초연 공연이 매진되면서였다.
팬데믹 기간, 티켓 수익이 500억 원 이상 줄어들었던 메트 오페라는 전통 레퍼토리를 과감히 버리고 현대 오페라로 시즌을 기획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인 제이크 헤, 앤서니 데이비스 등과 함께 그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지난해 6월, 찰스 양(바이올린)·닉 켄달(바이올린)·레난 메이어(더블베이스)로 구성된 타임포쓰리와 지안 장/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녹음한 음반이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솔로 연주상을 받으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음반은 '미래를 위한 편지'를 제목으로 한 제니퍼 히그던(1962~)의 '협주곡 4-3'과 케핀 퍼츠의 '콘택트(Contact)'를 담았다. 퍼츠 자신도 음반에 수록된 '콘택트'로 현대음악 작곡상을 받게 되었다.
그래미 어워즈 수상을 축하하며 그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나누었다. 꾸준히 수많은 악단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수 있는 그만의 비법을 묻자, 그는 "나의 감정이 흐르는 곳을 따라 작곡하면 된다"라고 답했다. 2006년부터 피바디 음악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가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이 답변과 결이 비슷하다. "제자들에게 대중이 원하고 존경하리라 생각하는 음악을 쓰지 말고, 본인이 관심 있는 음악을 작곡할 것을 강조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이메일로 나눈 일문일답이다.
-먼저, 2023 그래미 어워즈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을 말해 달라. 이번 수상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쟁쟁한 후보자들 때문에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을 못 타더라도 잔뜩 들떠있는 12살 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에 그래미 어워즈 행사장에 함께 갔다. 뜻밖의 수상이 정말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준 것 같아 매우 기쁘고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기사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당신을 소개하고 당신의 음악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다. 당신이 음악을 시작했던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순간은 언제인가?
"부모님은 베토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을 오디오로 자주 틀어두셨다. 음악가는 아니셨지만, 음악을 너무 사랑하시는 분들이다. 부모님은 내가 계속 음악을 할 수 있게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셨고,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셨다. 하지만 한 번도 강압적으로 하시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즐겨 들었던 음악은 무엇이었나?
"영화 '스타워즈' '슈퍼맨' 'E.T.' 등의 음악을 작곡한 존 윌리엄스를 좋아했다. 어린 나이에도 이러한 강렬한 음악에 감동하였었고, 그 감동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작곡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은 언제인가?
"이스트만 음악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전문 작곡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작곡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것 같다. 그 의미는 훨씬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그 의미를 깨달았던 순간은 언제인가?
"이스트만 음악원 재학 당시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했다. 라흐마니노프,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은 작곡가들의 대규모 피아노 협주곡을 모두 연습하며 큰 만족감을 느꼈다. 어느 순간, 이러한 것들을 뒤로하고 발견되지 않은, 백지의 상태에서 곡을 쓰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음악은 동시대성을 띠고 있지만, 대중에게 낯설지 않은 어법으로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나는 모더니즘적인 이상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의 모든 음악을 들여다보았고, 그 시선을 토대로 나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서사 전개와 밀접하게 관련된 '다중양식'에 관심을 두고 있다."
-초기작 마림바 솔로를 위한 '캐니언(Canyon)'과 클라리넷·바이올린·첼로·피아노를 위한 '시마쿠(Simaku)'의 단순한 리듬과 반복되는 패턴은 어딘가 스티브 라이히와 존 애덤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포스트미니멀리즘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있지만, 특정 작곡 형식은 제한된 재료에서 작곡하는 것이기에 그보다는 더 자유로운 방식이 나에게 맞는다고 느낀다. 형식이 아닌, 음악의 그 다음 순간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
-'네오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조성 음악이 다시 각광받는 가운데, 당신의 음악은 음악 사조 중 어디쯤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엇이든 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수 세기 전에 일어난 소위 낭만주의 또는 고전주의 등의 부흥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낀다. 당시 작곡가들은 매우 제한된 작곡법을 선택해야 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내 음악을 듣고 "이 작곡가는 누구인가?", "그의 음악 스타일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 구식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
-초기 작품에서 벗어나 자신의 음악이 조금 더 깊어졌다고 느꼈던 때는 언제인가?
"이스트만 음악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칠 때쯤, 더 넓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열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현악 4중주를 위한 '어둠의 철야(Dark Vigil)'과 박사 학위 논문으로 썼던 교향곡 1번이다. 마림바 협주곡 역시 이전 스타일의 한 예시이다. 여전히 학생 때의 작품이지만, 나의 스타일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당신의 다양한 작품 중 피아노 5중주 '도미'가 눈에 들어온다. 슈베르트의 '숭어'와 같은 편성이자, 악장 하나를 '주제와 변주'로 구성한 것도 닮아있다. 송어가 아닌 도미라니, 마치 클래식 농담 같기도 한데, 이 작품을 작곡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이스트만 음악원에 재학 중일 때 로버트 프리먼 교장이 위촉한 곡이다. 그는 도미를 유통하는 생선 기업의 주문으로 슈베르트 '숭어'와 같은 악기 편성의 작품을 남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고, 시인 잭 브래넌에게 물고기에 대한 시를 쓰도록 의뢰했다. 그 시를 기반으로 변주곡을 넣는 식의 작곡을 했다. 웃기는 아이디어였지만, 프리먼 교장은 항상 그런 생각으로 서로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함께 모으곤 했다."
-교향곡 2번 '결백의 섬(Island of Innocence)', 3번 '야행성의(Vespertine)' 등과 같이 영감의 소재가 된 주제들이 대부분 교향곡의 제목이 되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이 작곡에 어떠한 이점이 있으며 제목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가?
"제목을 붙이는 게 멋지다고 생각한다.(웃음) 사실, 대형 교향곡 편성의 작품을 쓰려면 특정 제목과 같은 동기나 영감이 필요한 것 같다. 교향곡 2번은 9·11 테러 이후에 작곡되었다. 작품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한 그쯤 나는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미국 아카데미에서 지냈는데,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비요크의 음반 '야행성의(Vespertine)'를 듣고 관객과 그 공감대를 음악으로 나누고 싶었다."
-마림바 협주곡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당신의 애정을, 관현악곡 '영감의 베토벤(Inspiring Beethoven)'은 교향곡 7번 1악장을 작곡하는 베토벤의 여정을 표현한 것이다. 유명 작곡가의 작품에서 선율을 발췌해 변주하거나 악장을 발전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신의 작품은 작품 자체에 대한 감상이 음악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이러한 작품의 작곡 방식이 궁금하다.
"다른 작곡가의 선율을 차용하거나 인용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에게 음악은 감정이다. 작곡가로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작품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지난 세기의 많은 작곡가가 과거의 음악을 바탕으로 음악을 쓰기 위해 취했던 감정적 메마름과 구성주의적인 접근 방식에는 관심이 없다. 마치 위대한 조각품 주위를 걸으면서 감탄하며 그 특징에 대해 지적으로 언급하는 것 외에는 어떤 식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나는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는 현대음악계에 속하고 싶지 않다. 나의 감정이 흐르는 곳으로 함께 가고 싶다."
글 월간객석 임원빈 기자
사진 케빈 퍼츠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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