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방패' 복수의결권 얻은 벤처업계…투자숨통 트이나
기사내용 요약
벤처기업법 계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경영권 위협없이 안정적인 기업 운영
투자혹한기 상황에 자금 유치도 숨통
[서울=뉴시스] 배민욱 기자 = 벤처기업계의 숙원이 풀렸다. 비상장 벤처기업·스타트업에 복수의결권을 부여하는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 개정안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가 2020년 12월 법 개정안을 발의한 지 2년4개월여 만이다.
벤처기업은 창업자 지분 희석에 따른 경영권 위협을 걱정하지 않고 투자받을 수 있게 됐다. 투자 혹한기를 맞은 벤처·스타트업 업계의 자금 유치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복수의결권은 비상장 벤처·스타트업 창업주에게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차등의결권이라고도 불린다.
법안은 비상장 벤처기업을 창업한 경영자의 지분율이 30% 미만이 되면 주주들의 동의를 받아 정관을 변경해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존속 기간은 최대 10년이다. 1주당 최대 10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복수의결권은 창업자가 투자 유치 과정에서 경영권 위협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게 해준다. 적대적 M&A(인수합병) 위협이 발생했을 때 효과적으로 기업을 지킬 수 있다.
벤처·스타트업은 성장을 위해 외부 자본투자가 필요하다. 복수의결권은 창업자가 투자를 유치해 지분이 희석돼도 경영권 위험 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방어장치인 셈이다.
해외에서는 복수의결권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 일본, 인도, 싱가포르 등은 1주 1의결권을 원칙으로 하지만 예외적으로 복수의결권을 허용하고 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메타) 등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도 복수의결권을 활용하고 있다.
벤처기업계는 투자혹한기에 복수의결권 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연구개발(R&D)에도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경영권이 방어됨에 따라 투자 유치 활동에도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혁단협)는 "복수의결권이 도입되면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는 외부 자본 조달 과정에서 지분 희석과 적대적 인수합병 걱정 없이 경영 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도 "스타트업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해 기업공개(IPO) 이후에도 본래의 창업 가치와 성장을 지속하는데 복수의결권은 중요하다"며 "위축된 투자에 활기를 불어넣어 스타트업이 꾸준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다만 몇몇 의원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최대주주가 경영권을 독점하고 불합리한 지배력을 강화할 것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실제로 이날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260명이 표결에 참여해 찬성 173명으로 통과됐다. 반대는 44명, 기권도 43명으로 적지 않았다.
찬반 토론에서도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은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을 반대한다. 1주 1의결권 원칙을 바꾸는 예외를 적용하는 것"이라며 "세습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선 안된다. 복수의결권은 부의 편법적 세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용우 의원도 "복수의결권을 가진 창업주가 본인의 이익을 위해서 자본거래를 했을 때, 다른 주주의 손실을 끼쳤을 때 교정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며 "벤처창업자의 경영권 방어장치는 충분하다. 일반법을 우회해서 편법으로 법을 만드는 법체계상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 역시 "상장기업이나 대기업의 세습에 악용될 소지가 큰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 관점에서 벤처업계 발전을 저해한다"며 "이 법안은 제한요건이 없으면 상장기업과 대기업 세습에 직행하고 우려사항 때문에 지금처럼 제한요건으로 경영권 방어라는 목적을 이루지도 못한다. 실익은 없고 잠재적 해악은 지대한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부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황제경영을 정당화하는 법안이다. 복수의결권은 우리나라 회사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개정안은 지금 벤처기업이란 외피를 쓰고 있지만 나중에는 재벌에 대한 특혜라는 본래의 목적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벤처기업법 개정안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법안에는 보완장치도 담겼다. 창업주가 복수의결권주식을 상속하거나 양도한 경우, 이사의 직을 상실한 경우, 주식회사인 벤처기업이 증권시장에 상장된 경우 등에는 복수의결권주식이 보통주식으로 전환된다.
복수의결권주식의 존속기간 변경을 위한 정관 변경, 이사의 보수, 이사의 회사에 대한 책임의 감면, 감사의 선임과 해임, 이익배당에 관한 사항 등을 결의하는 경우에는 복수의결권주식도 1주마다 1개의 의결권만 가지도록 했다.
벤처기업계는 충분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강조했다. 혁단협은 "그동안 상임위와 업계 등 치열한 논의를 통해 제도적 안전성을 충분히 마련한 법안이다. 비상장 벤처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특례법이다. 재벌기업은 원천적으로 이 법안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타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은 반대를 위한 구실일 뿐 법률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코스포는 "일각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그동안 치열하게 논의해 안전장치도 촘촘히 만들었다"며 "복수의결권 법안은 벤처기업에 한해서만 제도를 운영하고 대기업집단의 총수나 특수관계인은 원천적으로 대상이 될 수 없도록 발행요건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mkba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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