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리퍼블릭 주식 '휴지조각' 전락…또 붕괴 사태 오나
"자산 매각 추진"…실현 가능성 미지수
"당국 개입 외에 선택지 없다" 진단도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 중소 지역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둘러싼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다. 주가가 2거래일 연속 폭락하며 거의 휴지조각 수준으로 전락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은 대형 은행들을 대상으로 자산 매각을 적극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뜻대로 이뤄질지는 불확실하다. 이로 인해 은행권을 둘러싼 불안은 재점화하는 분위기다.
퍼스트리퍼블릭 또 30% 폭락
26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이날 뉴욕 증시에 상장된 퍼스트리퍼블릭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29.75% 급락한 주당 5.6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역대 최저다. 퍼스트리퍼블릭 주식은 장중 한때 거래가 중단됐을 정도로 투매에 시달렸다. 전날 50% 가까이 폭락한 이후 또 출렁인 것이다. 퍼스트리퍼블릭 주가가 2017년 이후 줄곧 100달러 안팎을 지켜 왔다는 점에서 현재 가격은 거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퍼스트리퍼블릭 위기설은 이미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때부터 불거졌다. SVB가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탓에 파산하자, 퍼스트리퍼블릭 같은 일부 지역 은행들까지 공포가 번진 것이다.
당국의 발 빠른 조치 이후 잠잠해지는 듯했던 불안감이 다시 커진 것은 지난 24일 실적 발표 이후부터다. 퍼스트리퍼블릭은 올해 1분기 말 현재 총예금이 1044억7400만달러(약 140조원)를 기록했다고 밝혔고, 그 이후 2거래일간 주가는 폭락했다. JP모건체이스 등 11개 대형 은행들이 긴급 구제용으로 예치한 300억달러를 빼면(744억7400만달러), 지난해 12월 말(1764억3700달러) 대비 예금이 57.79% 급감했기 때문이다. 불안에 떤 고객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을 인출한 것이다.
시장은 재기를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퍼스트리퍼블릭은 이번 실적 발표 이후 공언한 △임원 보수 절감 △사무실 공간 축소 △인력 감축 등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만큼 ‘전략적인 옵션’이 뒤따라야 그나마 생존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대형은행에 자산 ‘강매’ 모색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자산 매각이다. 블룸버그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최대 1000억달러의 자산을 매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CNBC는 “퍼스트리퍼블릭은 대형 은행들을 대상으로 자산을 시장가보다 높게 사달라고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은행들이 자산을 비싸게 사면 손실을 보기는 하겠지만, 퍼스트리퍼블릭이 무너져 은행 규제가 강화된다면 관리비용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로 설득하고 있다. 사실상 ‘강매’에 나선 것으로 읽힌다.
CNBC에 따르면 퍼스트리퍼블릭이 일부 자산을 매각하는데 성공하면 곧바로 증자(주식 발행을 통한 자본금 증가)에 돌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곧 기존 주주들의 주식 가치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TD코웬의 재럿 세이버그 분석가는 “300억달러를 예치한 대형 은행들이 퍼스트리퍼블릭의 구조조정을 이끌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계획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대형 은행들이 신뢰가 깎일 대로 깎인 은행의 자산을 또 비싸게 사들이는 것 자체가 부담이어서다. 투자회사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수석시장분석가는 “이미 돈을 예치해 놓은 은행들이 또 개입할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다”며 “퍼스트리퍼블릭의 운명은 절망적으로 보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에 이날 JP모건체이스(-1.77%), 뱅크오브아메리카(BoA·-1.46%), 씨티그룹(-2.17%), 웰스파고(-2.74%) 등 미국 4대 은행의 주가는 모두 하락했다.
게다가 당국은 이번 구제금융 과정에 개입하기를 꺼리고 있다고 CNBC는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SVB처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밑으로 모든 자산과 예금을 이전시키는 관리 체제로 들어갈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당국 조치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관측 역시 있다. 고든해스켓 리서치의 돈 빌슨 분석가는 “FDIC의 개입이 주중일지, 아니면 주말일지가 유일한 문제”라고 했다.
이런 와중에 FDIC는 퍼스트리퍼블릭이 연준 할인창구 혹은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을 활용하는 것을 제한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FDIC가 퍼스트리퍼블릭에 대한 평가 등급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실제 등급이 낮아지면 연준 대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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