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뺑소니’에 가장이 죽었다, 12세 딸은 그렇게 조문객을 맞았다
“사람 쓰러져” 목격자인 척 거짓신고
“아이고.. 내새끼 어떡해.”
‘음주 뺑소니’ 사고로 숨진 A씨(40)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27일 빈소 밖으로 새어나왔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A씨의 빈소에는 오전 9시부터 그의 지인들 수십명이 다녀갔다. A씨와 30년을 알고 지낸 친구들도 하나둘 빈소를 찾았다. A씨의 어머니와 아내,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조문객을 맞았다. A씨의 영정 앞에는 생전 축구를 즐기던 고인의 축구화가 놓였다.
A씨는 지난 23일 새벽 1시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이면도로에서 만취 운전자 B씨의 차량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B씨는 당시 A씨를 차로 친 것을 알고도 달아났다. 뺑소니를 친 그는 이후 집에 주차를 하러 가면서 “술에 취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며 목격자인 척 거짓 신고했다. 이후 현장으로 돌아와 출동한 경찰과 태연하게 대화를 나눴다. A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나흘간 의식을 찾지 못하다 지난 26일 끝내 숨졌다. 경찰은 B씨의 혐의를 도로교통법 위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에서 ‘도주치사’로 바꿔 수사하고 있다.
A씨는 20여년 간 동대문 원단시장에서 원단 배달 업무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왔다고 한다. 능력을 인정받아 밤늦게까지 밀린 주문을 직접 처리하기도 했다. 지인인 김영린씨(62)는 기자와 만나 “업무상으로 몇 번 얼굴을 본 적 있는데 일을 정말 잘해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애를 가지고도 열심히 살아왔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A씨는 한쪽 손목 아래가 없는 선천적 장애가 있었지만 늘 밝은 표정으로 주변 이들을 대했다고 한다.
A씨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운동을 즐겼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매주 축구 동호회 활동을 했다. 빈소에서 만난 한 지인은 “사고가 나기 직전 일요일에도 축구동호회에 나오셨다. 활동을 엄청 열정적으로 하셨던 분”이라고 했다.
A씨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이때 만난 친구 10여명과 30년 넘게 우정을 이어왔다. 이들이 함께 있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는 사고 직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오갔다. 고인과 30년 지기인 장모씨(40)는 “학창시절 운동도, 공부도 잘했다. 항상 밝은 모습이라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인식 못 할 정도였다”며 “직장에서 일도 잘하고, 쉬는 날마다 함께 놀러 가는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었다”고 회상했다.
장씨는 “내가 군대 갈 때 부모님께 오실 필요가 없다고 하고 혼자 훈련소에 입소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래도 들어가는 모습 직접 보셔야 하지 않겠냐’며 직접 우리 부모님을 차에 태워 훈련소까지 함께 왔다”며 “그 정도로 남의 일도 다 자신의 일처럼 챙기던 친구”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주 수요일에도 친구 생일파티 때 모여서 웃고 떠들던 친구를 이제 못 본다는 생각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A씨는 친구들과 여행도 자주 다녔다고 한다. 경기 가평, 강원 철원 등지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날 때 운전대를 잡는 사람은 A씨였다. 친구 하태환씨(40)는 “늘 분위기를 잘 맞춰줘 어디를 놀러 갈 때든 꼭 같이 가던 친구였다”며 “코로나도 끝났으니 친구들이 각자 가족들과 다 같이 모여서 해외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오자고 했었는데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씨는 “처음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아 계속 사고 영상을 돌려봤다. ‘약한 애도 아닌데 왜 그렇게 누워있냐’라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파 3박4일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이어 “가해자가 바로 신고를 하고 보호조치를 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이 가장 화가 난다”면서 “이번 사건도 금방 잊힐까 걱정이 된다.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아예 제도를 바꿔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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