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자수] 꽃보다 그녀 ‘세월을 수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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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 출판사가 함께 기획하고 돌아가며 출판하는 '아무튼, 시리즈', 7년째 50여 권의 책이 출간될 정도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원피스 패턴을 자수로 그대로 살린 것이 신의 한 수.
이곳에선 담뱃불에 구멍 난 등산복이나 다림질하다 태운 엄마 한복도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새것이 됩니다.
"그때는 한복, 양장 뿐 아니라 이불, 배게 같은 침구류에도 자수가 정말 많이 들어갔거든요. 그때는 진짜 일감이 쏟아져서 직원들도 두고 일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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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 출판사가 함께 기획하고 돌아가며 출판하는 ‘아무튼, 시리즈’, 7년째 50여 권의 책이 출간될 정도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아무튼, 양말’, ‘아무튼, 문구’, ‘아무튼, 여름’ 등등처럼 저자가 좋아하고 흥미 있는 뭔가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식입니다.
이번 연재도 ‘아무튼’의 힘을 빌려봅니다.
‘뭐가 어찌 됐든 간에 우리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한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깊고 넓게 다룹니다.
“끼이익” 미닫이 철문이 마찰음을 내며 손님의 방문을 알립니다.
이곳을 찾는 손님은 열이면 아홉, ‘아끼는 옷’이나 ‘실수로 못 입게 된 옷’을 들고 오죠.
일반 수선집에서 소생 불가 판정을 받고 물어, 물어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소매가 찢어져서 고민’이라며 원피스를 들고 온 젊은 손님은 육거리 시장 골목을 한참 돌았다며 연신 부채질입니다.
옷을 받아든 주인은 “까다로운 부분이네” 하며 잠깐 고심하는 듯 하더니 재봉틀 앞에 앉습니다.
그리고 ‘드르륵 드르륵’, 한 치의 망설임 없는 재봉질.
야무진 손끝이 바쁘게 움직이길 십여 분.
찢어져서 너덜거리던 소매가 감쪽같이 수선됐습니다.
원피스 패턴을 자수로 그대로 살린 것이 신의 한 수.
이곳에선 담뱃불에 구멍 난 등산복이나 다림질하다 태운 엄마 한복도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새것이 됩니다.
‘기계 자수’ 리폼의 신세계를 선보이는 이순임 씨의 이야기입니다.
도심은 누가 더 높이 쌓나 내기라도 하는 듯 하루가 다르게 건물들이 올라가지만,
시간이 멈춘 듯 이 가게는 40년째 같은 이름으로 골목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습니다.
빛바랜 간판을 보면 ‘영업을 하는 건가’ 싶지만, 전국에서 택배로 리폼 의뢰가 올 정도로 그녀의 기술은 입소문이 났습니다.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그녀는 여간해서 ‘안 된다’는 말을 하는 법이 없죠.
자신감의 원천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숙련해 온 기술.
어디든 응용 가능한 도안은 40년간 쌓아온 노하우입니다.
‘아들에게 선물 받은 앞치마’, ‘결혼 예복으로 산 정장’... 차마 버리지 못하는 옷들에 담긴 각각의 사연도 그녀의 능률을 올리는 요소입니다.
“얼룩진 곳에 꽃을 피워주면 그걸 받은 손님 얼굴에도 꽃이 펴요. 그럴 때 뿌듯하죠.”
그녀가 재봉틀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건 스물다섯.
결혼 후 부업 삼아 연 자수집은 성업을 이뤘습니다.
명절을 앞두고는 재봉틀에 엎드려서 자야 할 정도였죠.
“그때는 한복, 양장 뿐 아니라 이불, 배게 같은 침구류에도 자수가 정말 많이 들어갔거든요. 그때는 진짜 일감이 쏟아져서 직원들도 두고 일을 했어요.”
그렇게 일에 흠뻑 빠져 살던 시절, 이순임 씨는 그 기술을 인정 받아 기능 경기 대회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죠.
“예전 같을 순 없겠지만, 손님이 오는 날까지 계속할 거예요.”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인 것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위안이 되죠.
자신의 솜씨를 믿고 찾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일까요.
그녀는 이따금 찾아주는 손님을 기다리는 일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40년 세월을 수놓은 세 평 남짓한 가게,
이순임 씨가 이곳에서 앞으로 보낼 시간은 가장 예쁜 꽃으로 수놓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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