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외교와 국내정치

이진명 기자(lee.jinmyung@mk.co.kr) 2023. 4. 2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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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치용' 홍보 소홀한 尹
국내보다 외신 인터뷰 우선
외교적 성과 불구 지지율 낮아
외교의 목적은 국민 위한 것
'국민눈높이' 외교 홍보 필요

지난달 한일정상회담 직후 일본 정부는 현지 언론들에 '독도 문제가 논의됐고,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추후에 이 발언은 상당 부분 왜곡되고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총선을 앞둔 일본의 '국내 정치용' 발언으로 치부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으로 제3자 변제 방식을 제시하면서 통 큰 양보를 했는데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원전 오염수 방류, 위안부 피해자 합의 복원 등 민감한 현안에 있어서 거의 물러서지 않았다. 이 또한 기시다 총리의 일본 국내 여론을 의식한 행동으로 평가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여러 가지 외교적 실패를 겪었다.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한미관계도 기대할 것이 없었다. 중국에서는 혼밥 논란이 있었고, 체코 대통령이 없는 체코 방문으로 빈축을 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미·북정상회담에서는 소외됐다. 하지만 당시에 '탁현민 쇼'로 불렸던 탁월한 국내 정치용 홍보로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견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서는 아직 '국내 정치용' 발언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썩 괜찮은 외교 성과에도 불구하고 늘 박한 평가를 받는다. 이번 한미정상회담도 예외가 아니다. 12년 만의 국빈방문과 한미정상회담에서 워싱턴 선언이라는 결과물을 손에 쥔 것은 역대 대통령들이 이뤄내지 못한 진전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지속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핵잠수함 전개와 핵협의체 신설 등 확실한 핵 방어 약속을 받아낸 것은 박수받을 일이다. 충분히 국민들 앞에 자랑하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함구했다. 백악관에서 먼저 미국 언론을 대상으로 워싱턴 선언과 그 내용을 공개했다. 대통령실은 그제서야 부랴부랴 백악관의 설명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대통령실이 함구할 동안 우리 언론과 국민들은 윤 대통령의 한미외교 성과를 알 길이 없었다. 서울과 워싱턴은 13시간의 시차가 있다. 그래서 한미정상회담은 한국시간으로 자정에 이뤄졌다. 백악관이 먼저 공개하지 않았더라면 미국 언론과 미국 국민들이 다 아는 한미외교의 성과를 우리 국민들은 반나절이 지나서야 알 뻔했다. 국내 정치를 먼저 생각하는 정치인이었더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처다.

윤 대통령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로이터통신, 워싱턴포스트, NBC와 인터뷰를 했다. 지난 한일정상회담 즈음에는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국내 언론과는 올해 초 대표적 보수 언론과 단 한 번 인터뷰한 것이 전부다. 윤 대통령이 미국인, 일본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면 영어, 일본어로 된 외신이 아니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가 먼저였어야 했다.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는 "일본에 100년 전 일로 무릎 꿇으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을 향해 외교적 소신을 전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이었다. 예상대로 국내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윤 대통령이 "누가 뭐라고 하든 올바른 길을 가면 언젠가는 인정받을 것"이라는 말을 종종 했다. 하지만 참모들은 국내 정치용 홍보를 해야 한다. 외교의 과정은 상대가 있지만, 외교의 결과는 우리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이 1년 이내로 다가왔다. 여당이 총선에 패하면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국내 정치용' 대처는 안 하겠다고 고집할 일이 아니다. 총선 투표권은 미국인, 일본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에게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진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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