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전세사기대책 내놓았지만…‘이것’ 빠졌다

조문희 기자 2023. 4. 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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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기준에 형평성 논란…정부 “개별 사례 추후 반영”
대책위 “피해자 지원법이 아니라 걸러내기 위한 법안”
‘깡통전세’ 경고음 울리는데 관련 피해는 ‘사각지대’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정부가 2년 한시 특별법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를 구제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피해자 유형을 '매수희망자'와 '거주희망자'로 나눠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거나 공공임대주택에 장기 거주할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이 같은 지원을 받으려면 정부가 정한 6가지 기준을 통과해야하는 데다 그 기준도 엄격한 수준이라 형평성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 최근의 경기 흐름상 전국 각지에서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겪는 피해 임차인이 늘 수 있는데도 관련 대책은 포함되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가 27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 지원 받으려면 6가지 조건 충족해야

27일 국토교통부 등 정부 관계부처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지원방안이 담긴 특별법은 2년간 적용되는 한시법이며,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에 특별법을 발의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전세사기 피해 최소화에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라, 특별법 처리는 속전속결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마련한 지원대책은 주택을 낙찰 받길 희망하는 피해자에겐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고 각종 금융‧세제지원으로 낙찰자금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낙찰받길 원하지 않는 피해자에겐 공공임대로 재공급하는 게 핵심이다. 아울러 전세사기 피해를 자연재해에 준하는 재난으로 취급해 생계비와 의료비, 주거비 등을 지원한다.

단 지원 대상이 되려면 6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①확정일자를 받아 대항력을 갖추고 ②경·공매가 진행 중이며 ③서민 임차주택이어야 하고 ④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되어야 하며 ⑤피해자가 다수일 것으로 예상되고 ⑥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 될 우려가 있어야 한다. 피해자 여부는 국토교통부 내 '피해지원위원회'를 통해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된다.

이를 두고 "까다로우면서 모호한 조건"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1~3번 조건은 비교적 요건이 명확하지만 4~6번은 해석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피해 전세금 규모나 면적 등을 명확히 한다는 입장이지만, 전세사기 피해자 여부를 가려내는 단계에서는 모호한 조건 때문에 각종 분쟁이 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의 유형이 너무 다양하고 피해자들의 요구사항도 너무 다양한데 이를 일일이 법에 담으려고 하면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행정력이 낭비된다"며 "기본적 전세사기라는 큰 원칙만 정하고, 세부 사항은 위원회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시행령을 마련할 때는 더 다양한 개개인 사례를 담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전세까지 구제 못 해"…"공권력 행사 최소화해야"

특히 동일주택에 거주하더라도 피해자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 관련 피해대책위 측은 "특별법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피해자가 극히 드물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대책위는 "특별법은 피해자들의 현실과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 보여주기식"이라며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걸러내기 위한 법안처럼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또 해당 조건에 따르면 단순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역(逆)전세' 현상으로 전세 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겪은 경우는 지원이 불가능하다. 집값 하락 국면의 장기화로 전국 곳곳에서 집주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본격화하는 상황인 만큼, 이들 세입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선 2021년 부동산 값 최고점에 계약된 전세 만기가 도래하는 올해 하반기에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아파트에 비해 전세 사기에 취약하다고 알려진 빌라나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전세 포비아'가 번지면서 벌써부터 세입자 구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와 시민사회대책위가 26일 국회 앞에서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전세 사기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인 만큼, 단순 보증금 미반환 사고에 대해선 개입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라는 매우 예외적인 대상에 대해서만 국가가 개입해야 된다라는 게 원칙"이라며 "공권력의 발동 그리고 사적인 권리 관계의 국가의 개입과 우선권 행사는 최소화하는 게 헌법 정신이고 시장 원리이고 국민들의 합의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함 실장은 "주택경기 위축과 공급과잉 이슈로 역전세가 발생한 사례나 임대인의 기망 의도를 찾기 어려운 경우는 특별법 혜택을 받지 못할 전망"이라며 "과거 체결된 전세사기 계약 만료가 도래해 당분간 전세사기 피해자가 지속될 수 있는 만큼, 시장에 대한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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