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만연한 ‘집단적 성적 모욕’…오프라인 피해자 삶 위협하는 N차 가해자들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찾는 것이 (최근 한국) 디지털성범죄의 양상이자 본질이에요. 가해자들은 ‘누군지 찾아보자’라는 놀이처럼 말하지만 피해자를 집요하게 스토킹하는 것과 다름없죠.”
한 성폭력상담소 관계자 A씨는 서울시여성가족재단 김홍미리 연구위원이 2021년~2022년 진행한 디지털성범죄 연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디지털성범죄가 소라넷·웹하드카르텔 등을 통한 불법촬영물 유포에 국한됐다면 최근에는 우울증갤러리·N번방 사건에서 보듯 온라인 성범죄가 오프라인 성범죄로 이어지는 양상이 보인다. 온라인에서 확보한 신상정보를 바탕으로 오프라인에서까지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여성연구소와 호주 모나쉬대학 성·가족폭력예방센터는 27일 ‘디지털성폭력변화의 양상과 쟁점’ 온라인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집단적 성적 모욕’은 학술회의 주제 중 하나였다.
이날 발표를 맡은 김 연구위원은 ‘집단적 성적 모욕’의 패턴이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1차 가해자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피해자의 증명사진을 ‘00학교 00학과’라는 개인정보를 ‘00녀’라는 별칭과 함께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고, 그 중 일부는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추적하기도 한다. 소위 ‘신상털기’다. 이와 함께 개인정보·허위정보·모욕적 이미지와 댓글을 확산시키는 N차 가해자들이 등장한다. 추적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오프라인에서 피해자 혹은 피해자 주변인을 협박하는 이가 생긴다.
A씨는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다 보면 카카오톡 아이디와 실명을 공개하고, 함께 테러해달라며 공격을 유도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2022년 연구에서 성적모욕성 게시물 유포를 당한 한 20대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고소를 한다고 하자 아이디를 구글링해서 대학, 학번, 사진을 보내오며 게시판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고 했다. 또 이후 모르는 사람들이 커뮤니티의 이름을 대면서 연락해와 전화번호와 이메일 아이디를 바꿨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은 타겟이 된 피해자는 홀로 신상이 공개되고, 다수의 가해자들은 익명으로 피해자를 둘러싼 채 성적인 테러를 저지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이를 통해 가해 집단은 그릇된 연대감과 권능감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은 “피해자 신상털기는 N차 가해자들에게는 놀이이고 타겟을 지정한 1차 가해자에게는 피해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파워 과시”라며 “클릭 몇 번, 댓글 몇 번으로 멤버십을 획득하는 그릇된 연대의 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불법 촬영물을 지워주거나 피해자 상담 정책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수위가 처벌될 만큼 충분히 높지 않아서’ ‘피해촬영물인지 확인이 어려워서’ ‘해외 플랫폼 수사가 어려워서’ 등 켜켜이 다양한 이유로 법이 방임한 피해자들이 많다”고 했다. 현행법과 수사기관의 대응이 디지털성범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적 성적 모욕’은 모든 플랫폼, 모든 연령층에서 확대되는 추세다. 김 연구위원은 “통신매체이용음란죄 피의자 연령이 저연령화되고 있다”며 “가해자들의 양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법적인 제도개선을 하는 것도 중요한 한편, 아동청소년에 대한 제대로 된 성교육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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