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 “북한과 외교 의지 재확인”···대화·협상과 거리 먼 현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북한과의 외교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한다”며 북한에 협상 복귀를 촉구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을 겨냥해 직접 “정권 종말”을 거론하고 윤 대통령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통한 평화”를 외친 상황에서 북한이 호응해 나올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에서의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북한과의 외교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며 북한이 협상으로 복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북한과의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협상 복귀를 촉구한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현 상황에서 한·미의 대북 외교·협상 의지는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 비핵화 정책은 뒷전으로 밀렸고 핵 대 핵으로 대결하는 구도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동성명은 북한에 “대화의 길이 여전히 열려있다”고 밝혔지만 이번 공동성명은 북한과 관련해 ‘대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나 동맹, 파트너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공약을 확인하며 북한이 핵공격을 감행하면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북한 핵 공격 시 정권 종말’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북한도 핵무력 고도화를 달성하기 위해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를 활용한 군사적 대립이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동성명에서 “대한민국의 ‘담대한 구상의 목표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지만 담대한 구상의 실현 가능성은 낮다. 윤 대통령조차 지난 25일 공개된 NBC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과 관련해 북한과의 협상을 당장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나흘 만에 거부했다.
윤석열 정부가 북한 핵 위협 억제와 대북 제재·압박을 우선시하는 상황에서 한·미 공동성명도 북한 핵·미사일 개발 규탄에 초점이 맞춰졌다. 한·미는 “희소한 자원을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투입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한·미 동맹에 심각한 안보적 도전을 야기하는 것을 규탄한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양 정상은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규탄하며 이러한 개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북한인권 관련 표현 수위는 높아졌다. 지난해 공동성명에서는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했지만 이번 공동성명에는 “북한이 북한 주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노골적으로 침해”라는 내용이 담겼다. 한·미는 “북한 내 인권을 증진하고 납북자, 억류자,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문구도 담았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26일 질 바이든 여사에게 “북한 인권문제는 한·미 양국이 관심을 가져야 할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으며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등을 만나 북한인권 문제와 개선 방향을 논의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공약을 재확인하고 북한의 핵실험이 국제사회의 강력하고 단호한 대응에 직면할 것임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최근 발간한 통일백서 등에서 ‘북한 비핵화’ 표현을 주로 쓰는 것과 달리 ‘한반도 비핵화’ 용어가 명시된 것이다. 미국이 핵협의그룹(NCG) 신설 등 한국에 대북 확장억제력 제공을 강화하며 한국 내 핵무장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을 겨냥해 도발적 군사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던 북한은 27일까지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종 준비를 지시한 군사정찰위성 첫 발사와 태평양을 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가능성 등이 거론돼왔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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