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반도체법 원론적 입장만 확인...얻어낸 건 뭐?[한·미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 경제 분야의 주요 안건이었던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에 대해선 원론적인 협의 차원에 그쳤다. IRA로 인해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고, 반도체법으로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은 초과이익 공유나 회계자료 제출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번 회담으로 달라진 건 안 보인다.
업계에선 정상회담에서 추가 ‘구제책’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미완의 진행형’으로 마무리된 모습이다.
다만 IRA로 인한 피해는 한시적이라 치명적이지 않고, 한·미 배터리 업계 간 업무협약 체결 등은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한국이 취약한 최첨단 반도체·첨단 패키징(포장)·첨단 소재 같은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 양국 기업이 협력키로 한 건 긍정적인 성과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을 통해 “IRA와 반도체법이 기업 활동에 있어 예측 가능성 있는 여건을 조성, 상호 호혜적인 미국 내 기업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한국 기업이 IRA와 반도체법으로 우려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질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기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며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미국이 어떻게든 안 좋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점을 이해할 것”이라고 여지는 남겼다.
양 정상은 긍정적인 표현을 내놨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내놓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는데 2025년 가동 예정이다. 그 전까지는 세액공제 형태의 7500달러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받을 수 없다. 현대차그룹은 공장 완공 일정을 당긴다는 입장이지만 1년 이상은 보조금 혜택에서 제외된다.
다만 정부는 일본차나 독일차 등 경쟁업체 차종도 빠져 있고, 시기도 한시적이라 크게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 후 현지 브리핑에서 “IRA의 경우 우리 기업이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양이 아주 미미하고, 현대차는 내년 하반기에 미국 내 공장이 완공되기 때문에 훨씬 더 세액공제 대상이 늘어났다”며 “배터리의 부품·광물 요건이 적용되면서 우리 배터리 업계는 굉장히 수혜를 받는 업종이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IRA는 세부 사항인 시행령까지 발표된 상황이라 이미 손을 대기는 어려운 상태라며 ‘예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자국을 뺀 대부분의 나라를 제외시켰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었다.
또한 IRA 조항으로 인한 추가 피해가 정부 설명만큼 작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BMW나 벤츠 같은 외국 기업들은 중저가의 전기차를 주력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다”며 “똑같이 IRA 적용을 받더라도 중간 가격대의 전기차를 판매하는 현대차그룹이 더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미 산업·에너지 양해각서(MOU) 체결식’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등 12건 MOU 체결이 있었다는 점을 기회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IRA는 정상 간에 거래를 하거나 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미국의 의도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면서도 “한국과 미국 배터리 업계가 MOU 체결을 통해 실무 핫라인이 구축된다는 점은 기회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최첨단 반도체·첨단 패키징(포장)·첨단 소재 등 차세대 반도체 3대 분야에서 공동 기술개발에 나서기로 하는 등 긴밀하게 협력키로 한 점은 성과로 꼽힌다. 한국은 실리콘(Si) 기반의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는 강국이지만 이들 3대 분야의 기술 수준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이번 협력으로 인공지능(AI)·뉴로모픽(뇌 신경망을 모사한 프로세서) 등의 반도체 설계 기술과, 서로 다른 칩을 붙여 하나의 칩으로 만드는 포장 기술, 실리콘카바이드(SiC)·질화갈륨(GaN)·산화갈륨(Ga2O3) 같은 차세대 소재 기술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미국이 반도체법에 따라 설립을 추진 중인 국가반도체기술센터(NSTC)에 한국의 첨단반도체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다만 국내 반도체 업계가 당면한 각종 현안에 대해서는 미국의 확답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한계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미국 첨단 반도체 장비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면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중국 공장에 한해서는 1년간 이를 유예했다. 이들 기업이 중국 공장을 계속 운영하려면 매년 이 조치를 유예받아야 한다.
업계에서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과의 담판을 통해 ‘유예 조치 연장’이란 확답을 받아내길 원했지만, 이번 회담에서 명확한 답을 받지 못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향후 우리 기업에 대한 장비 공급에 차질 없도록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면서 “큰 틀에서만 (정상 간에) 합의하고 미 상무부 장관과 우리 산업부 장관 간 논의해 나가면서 불확실성을 해소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 반도체법의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초과이익 공유’ ‘회계자료 제출’ ‘시설 접근 허용’ 등에서 직접적 성과가 없었다. 대신 “상호 호혜적인 미국 내 기업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긴밀한 협의를 지속한다”는 원론적인 내용만 나왔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과 패키징 시설 건설을 추진 중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미국의 보조금을 받기위해서는 미 국방부 등 안보기관의 반도체 시설 접근을 허용해야 하고, 회계자료 등 민감한 정보를 미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미국 상무부의 담당국장이 ‘한국은 동맹이기 때문에 동맹 상호 간의 이익의 공유나 이런 부분들에 대해 존중한다’는 발언하면서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며 “여러분들이 걱정하시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요한 현안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면서도 “양국 정상이 이 문제에 대해 교감을 한 만큼 앞으로 (이 문제가) 상당부분 진척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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