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비빔밥… 1만원으로 먹을 게 없는 야속한 시절
냉면집 줄줄이 가격 인상
1만원 이하 외식 점점 줄어
고정비 상승 자영업자도 신음
냉면 한 그릇 1만6000원, 비빔밥 1인분 1만원. 고물가가 그려낸 외식 가격이다. 서민음식이라 불리던 자장면마저 평균가격 70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갑 가벼워진 서민들이 기댈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가격을 끌어올리는 식당들을 탓할 수도 없다. 자영업자들도 고물가에 시름하고 있는 건 우리와 똑같아서다.
# 평소 '냉면 마니아'라 자칭하는 김준섭(가명)씨는 최근 가족과 동네 맛집으로 통하는 한 냉면집을 방문했다. 아내, 아이와 나눠 먹으려 물냉면과 비빔냉면을 각각 곱빼기로 주문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냉면 두 그릇과 함께 계산서가 그들의 테이블에 전달됐다. 2만1000원.
이 가게의 냉면 가격은 2021년 초까지만 해도 7000원이었다. 하지만 그해 여름을 앞두고 500원 인상했고, 이후 두차례에 걸쳐 500원씩 더 올려 현재의 8500원이 됐다. 곱빼기 추가금액도 10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라 2만1000원이라는 금액이 나온 거였다.
# "곱빼기 가격으로 얼마를 받아야 할까요?" 최근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냉면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 글의 주인공은 그동안 추가금액 없이 곱빼기를 제공해왔는데 원재료 가격이 상승해 더 이상은 부담스럽다며 의견을 구했다.
"인상폭을 500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그의 글에 "요즘엔 대부분 2000원씩 추가금액을 받는다" "500원을 올려도 남는 게 별로 없을 것"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는 "그동안 무료로 제공해왔는데 갑자기 가격을 많이 올려서 받으면 손님이 떨어질 것 같다"면서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외식물가 상승세가 멈추질 않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외식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7.5% 상승했다. 지난해 1분기 6.1% 오른 이후 7~8%대 상승률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집계하는 8대 외식 품목(김밥ㆍ김치찌개백반ㆍ냉면ㆍ비빔밥ㆍ삼겹살ㆍ삼계탕ㆍ자장면ㆍ칼국수)도 모조리 오름세다(서울 기준).
1년 전과 비교해 김밥과 자장면 평균가격은 각각 10.3%, 16.3% 상승했고, 삼겹살과 삼계탕도 12.1%, 12.7% 뛰는 등 오르지 않은 품목이 없다. 더군다나 1만원으로 사 먹을 수 있는 품목이 8개 중 6개에서 4개로 줄었다. 1년 사이 냉면 평균가격이 9962원에서 1만692원으로 오르고, 비빔밥이 9385원에서 1만192원으로 오른 탓이다.
그중 점점 고급음식으로 변모하고 있는 냉면을 보자. 냉면은 지난해 4월 평균가격이 1만원대를 돌파한 이후 줄곧 오름세를 이어오고 있다. 유명 냉면집 가격을 보면 한 그릇(평양냉면 기준)에 1만5000원을 넘는 곳도 이미 숱하다.
'서울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평양냉면집'인 우래옥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냉면'이란 별칭도 갖고 있다. 올해는 가격을 인상하지 않기로 했지만 지난해 이미 1만6000원으로 올라 여전히 가장 비싼 냉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외식업체 벽제가 운영하는 봉피양도 올해 2월 가격을 인상하며 1만6000원 냉면 대열에 합류했다. 봉피양은 2021년 1만4000원, 2022년 1만5000원, 올해 1만6000원 등 해마다 1000원씩 올리고 있다. 필동면옥 역시 2년 연속 가격을 1000원씩 끌어올려 현재 냉면 가격은 1만4000원이다. 을밀대는 지난해 동결했다가 올해 초 2년 만에 가격을 1만3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인상했다.
냉면은 왜 이렇게 쉼 없이 가격이 오를까. 하나씩 따져보면 사실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주원료인 메밀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운영하는 가격정보 사이트 KAMIS에 따르면 2020년 ㎏당 평균 2950원이던 수입밀 도매가격은 2022년 4691원으로 59.0% 치솟았다.
올해는 1월에 4798원을 기록했고, 4월 현재 그보단 다소 하락해 4575원에 거래되고 있다. 여전히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수확량이 감소한 탓이다.
고명과 육수로 사용하는 재료들 가격도 올랐다. 오이 10㎏ 도매가격은 2020년 2만5255원에서 올해는 평균 4만7628원으로 두배 가까이 올랐고, 달걀과 무 가격도 내려올 줄 모른다. 게다가 유명 냉면집들의 경우, 한우로 육수를 낸다는 것도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재료 가격이 점점 오르니 냉면집들도 가격을 해마다 올리고 있는 거다.
비빔밥도 이런 영향으로 올 1월 평균가격이 1만원대에 진입했다. 죽과 비빔밥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본아이에프는 비빔밥 메뉴 21개 중 곤드레비빔밥(9000원)과 본나물비빔밥(9000원)을 제외하곤 모두 1만원 이상이다. 지난해 2월과 6월, 올 2월 가격을 올린 결과다.
문제는 원재료만 오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기료, 가스요금, 인건비 등 다른 고정비도 지속적으로 치솟고 있다.
한자리에서 30년째 냉면집을 하고 있다는 김정희(가명)씨도 이런 문제 때문에 여름을 앞두고 결국 가격 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원재료 가격이 오른다고 가짓수를 빼거나 양을 줄이면 손님들이 바로 알아차린다. 그러다 자칫 손님이 끊길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가격을 올리는 게 낫다. 전기료와 가스요금도 부담도 사실 꽤 크다. 그런데 그건 또 줄일 수가 없는 거라 고민 끝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알바를 정리했다. 바쁜 시간엔 입대를 앞둔 아들이 일을 돕고 있다."
무섭게 오르는 외식비. 냉면뿐만 아니라 서민음식으로 불리는 자장면과 칼국수, 국수 등도 원재료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오름세가 꺾이질 않자 '누들플레이션(누들+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다 1만원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건 김밥밖에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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