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전자약의 현재와 미래
최근 전자약, 디지털 치료제 등 신개념 의료기기가 관심을 부추기고 있다. 전자약은 인체에 전류를 직접 가해서 치료 효과를 얻는 데 목적을 둔 의료기기다. 2013년 글로벌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전자(Electronic)와 약(Phamaceutical) 합성인 '전자약'(Electroceutical) 개념으로 소개했다.
전자약은 치료가 필요한 신경을 직접 자극하기 때문에 약물처럼 혈관을 통해서 몸 전체로 전달되지 않는다.
부작용 위험을 덜고, 음식물 섭취 능력과 무관하게 사용 가능하다.
또 정보기술(IT) 도움으로 실시간 측정 및 자극이 가능해 증상에 더욱더 빠른 대처가 가능하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심장박동조절기, 파킨슨병이나 뇌전증 완화를 위한 뇌심부자극기 등이 오래전부터 사용됐다. 최근에는 우울증·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관절염·편두통·안구건조증 완화 등 새로운 응용처들이 나오면서 전자약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있다.
글로벌 전자약 시장은 2020년 약 25조원에서 매년 7.2% 성장, 2030년 약 51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체내에 삽입되는 침습형(이식형), 체외 또는 피부에 붙여서 자극하는 비침습형 전자약 시장이 6 대 4 정도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표]글로벌 전자약 시장 규모
바이오 의료 시장은 크게 의약품과 의료기기 시장으로 나뉘는데 전자약은 이 두 가지 성격을 모두 띠고 있다. 기존 제약 시장 규모가 의료기기 시장보다 더 크며, 시가총액에서도 제약사 1위인 존슨앤존슨이 605조원(2022년 기준)으로 의료기기 1위인 애보트의 260조원보다 크다. 참고로 시가 총액 국내 1위인 삼성전자는 약 438조원으로 의료기기와 제약 성격을 모두 띠는 전자약 시장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안전이 최우선인 의료 성격상 새로운 기술에 보수적이었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원격의료, 디지털 치료제 등과 함께 전자약이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인증제도, 평가기준, 수가 구조, 기술 인지도 등 측면에서도 문제들이 해결되고 있다. 기존 전자약 시장에 대형 업체들이 이미 상당수 진출했지만 질환별 치료 방법 등 차이와 신기술 도입 등으로 신규 진출 가능성이 큰 블루오션 성격을 띤다. 제약업계같이 거대 독과점 기업이 아직은 없는 상황이어서 글로벌 시장 선점 가능성이 있으며, 국내에서도 스타트업 중심으로 우울증·ADHD·편두통·비염 완화를 위한 비침습 전자약 제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몸 상태와 무관하게 정해진 자극을 계속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우울증 등 부작용 위험이 있는 기존 전자약의 단점을 완화하기 위해 센서를 통해 환자 상태를 수집하고 이를 기반으로 필요한 전기 자극의 위치·범위·세기 등을 조절하는 적응형 전자약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센싱-판단-자극'의 과정이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폐루프(closed-loop) 방식은 자율주행이나 로봇과 같은 분야에서도 신기술로 도입되고 있다. 새로운 센서, 인공지능(AI) 기반 연산, 가변적인 자극 기술, 초소형 저전력 회로 등 고도화된 기술 도입은 필수다. 이러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국가가 향후 전자약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에서도 전자약 시장 중요성과 기술 개발 필요성을 인식하고 2022년 4월 정부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필두로 바이오헬스 분야에 많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 규모, 의료 분쟁 가능성으로 대기업들의 본격적인 시장 진출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아 해외 거대 기업들과의 경쟁이 여의치 않다. 현재 위험이 덜한 비침습 전자약을 위주로 스타트업들이 고군분투 중이다.
기술이 고도화된 우리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 중심으로 연구개발(R&D) 투자가 중요한 상황이다.
필자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통해 최근 6년여 동안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뇌공학융합연구센터 중심으로 파킨슨병 완화를 위한 적응형 뇌심부자극기를 개발했다. 파킨슨병은 흑질에서의 도파민 생성이 원활하지 않아 발생하는 퇴행성 뇌질환으로, 뇌심부를 전기로 자극해서 도파민 생성과 유사한 효과를 볼 수 있다.
기존 뇌심부자극기는 전기 자극을 계속 가하기 때문에 부작용 위험이 있다. 환자 상태가 좋지 못한 때만 선택적으로 자극하는 폐루프 적응형 뇌심부자극기 기술이 효과적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진은 도파민 농도 자체를 측정하는 화학 센서, 전기 반응을 측정하는 전기적 센서, 큰 잡음 속에서도 미세한 신호를 습득할 수 있는 뇌신호처리 기술, 효과적인 전기 자극 파형 기술 등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 기술을 개발했다. 전자약 대상 질환에 따라 장난감 레고처럼 필요한 센서 및 자극기를 선택적으로 장착할 수 있도록 했다. 개발된 기기의 검증을 위해 설치류와 영장류 실험도 수행했다. 이를 통해 고민감도 측정 반도체 회로 기술, 신규 전기 및 화학 바이오마커 분석 기술 등에서 우수성과 차별성을 인정받아 국제 저명 학술지 발표 및 기업 기술 이전 실적도 올리고 최우수 평가 결과도 얻었다.
이렇게 개발한 침습형 전자약은 파킨슨병 이외에도 뇌전증, 알츠하이머 등 중추신경계 질환과 관절염, 과민성 방광 증후군 같은 말초신경계 질환 등에 두루 적용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진다.
지난 6년여간의 기술 개발을 통해 많은 것들을 몸소 체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전자약 개발은 다양한 분야의 협업이 필수다. 고감도 센싱 및 고성능 자극 디바이스, 초소형 저전력 회로 기술, 환자 상태 정보를 알려주는 바이오마커 AI 분석 기술 등 IT와 함께 신경과학·인지과학·생화학·동물실험·통계학 등 다학제 R&D가 필수이며, 전임상 및 임상을 위한 병원과의 협업 또한 중요하다.
침습형 전자약 R&D 및 검증을 위해서는 오랜 기간과 많은 자원이 필요해 소규모 스타트업이 시도하기에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우리 연구진도 정부 지원 아래 6년여 동안 많은 이의 노력과 적지 않은 연구비를 투입할 수 있었지만 아직 시작품 검증 단계를 거치고 있으며, 장기적 연구 및 지원이 추가 투입돼야 실제 제품화가 가능하다. 외국의 거대 의료기기 회사들이 전자약 시장을 독과점해 과거와 같이 변방의 빠른 추격자 위치로 머무르지 않으려면 정부의 마중물 투자를 적재적소에 투입할 수 있는 전략적 판단이 중요하다.
우리 전자약 산업 규모가 크지 않은 현 상황에서 전자약 기술 개발을 전공한 학생들도 학계나 연구계 진출이 대세로 업계로의 진출 길이 많지 않고, 그나마 외국 대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이다. 새롭게 태동해서 신규 진입 기회가 열려 있는 전자약 산업의 활성화와 R&D 인력 확보가 선순환 관계가 돼 우리 산업의 새로운 동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최지웅 DGIST 뇌공학융합연구센터장(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
〈필자〉 최지웅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는 DGIST 뇌공학융합연구센터장이기도 하다. 서울대 전기공학부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과정을 마친 뒤 실리콘밸리 마벌세미컨덕터에서 근무했다. 유무선 통신 및 신호처리 기술을 전공했다. DGIST에 부임하면서 뇌공학,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차량용 네트워킹 및 보안 등 다양한 융·복합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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