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핵 방아쇠’ 낯선 이름에 담긴 뜻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소련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고르바초프처럼 비친 적이 있었다. 2018년과 2019년 두 해 동안이다. 이 기간에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남북 정상회담 세 차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북·미 정상회담을 세 차례 가졌다. 그는 회담 때마다 세상의 관심을 끌었고, 다소 파격적인 말과 행동을 내보이기도 했다.
2018년 당시 김 위원장은 불과 1년 전인 2017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2017년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핵 단추 크기 경쟁을 하며 정면으로 충돌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고조되고, 코리아 리스크(Korea risk)는 커져가기만 했다. 이때 김정은 위원장 모습에서 냉전 시기에 미국과 대결하던 ‘소련의 브레즈네프’를 연상할 수 있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참가를 계기로 한반도에는 봄이 왔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연속해서 열렸다. 김정은 위원장은 수령제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최고 존엄’이라는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북한은 오랫동안 세계 최강인 미국에 의해 안보 위협을 느낀다고 주장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 여론은 북·미 정상회담을 주목했다. 회담에서 담판을 지으면 한국전쟁 이후 수십 년간 묵혀온 한반도 긴장 상태를 해소할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겼다.
2019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3년이 흘렀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은 핵 무력 사용을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를 비롯한 미국의 전략 자산이 북한의 핵 무력을 억제하기 위해 한반도에 출현하고 있다. 이렇게 겹쳐지는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3년 만에 한반도는 혹한기로 접어든 것이다. 고르바초프처럼 비춰지기도 했던 김정은 위원장이 지금은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쌍벽을 이루고 있다. 푸틴과 함께 핵무기 사용을 서슴없이 말하는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북한은 지난해 9월에 ‘핵무력정책법’을 만들고 스스로를 ‘책임 있는 핵보유국’이라 선언했다. 핵무기 관련 국제법인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르면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북한은 스스로를 핵보유국으로 선언했지만, 국제사회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NPT 체제 밖에서 핵을 보유한 ‘셀프 핵보유국’일 뿐이다.
인정받지 않은 핵 국가이지만 북한은 핵 능력을 계속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월16일에는 ‘괴물 ICBM’이라 불리는 화성-17형도 발사했다. 사정거리가 1만5000㎞ 이상이다. 미국 본토 어디든지 사정거리에 들어간다. 탄도미사일뿐만 아니라 전략순항미사일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북한은 한반도에 봄이 왔던 2018년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으나 이제는 파기된 상태다. 지난해 10월에는 전술핵 운용부대 훈련도 하고, 올해 3월에는 새로운 전술핵무기 실험도 했다고 한다. 저수지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기도 하고, 수중에서 폭발하여 해일을 일으키는 핵어뢰 실험도 공개했다. 500m와 800m 상공에서 공중 핵폭발 실험도 했고, 군사위성 발사도 임박했다. 북한은 ‘신박’할 정도로 기발하게 핵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아직은 ‘짝퉁’이라는 평가가 대세다.
왜 ‘핵 단추’라고 하지 않았을까
북한은 핵 능력 강화를 자위적 국방력 건설과 한·미 군사훈련 대응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한·미 양국은 지난 3월부터 4월 초까지 북한의 핵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을 고려할 때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우려되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나 육상의 군사분계선(MDL)상에서 우발적 충돌이나 확전 가능성을 예상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러한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이 기간에 북한은 자신의 핵 능력을 한층 더 강화했다. 북한의 핵 무력이 ‘짝퉁’ 수준이라면 그것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핵 선제 사용을 공공연하게 위협하는 북한이 스스로 핵무기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뜻밖의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이 지난 3월18일부터 이틀간 김정은 위원장이 참관하여 ‘국가핵무기종합관리체계 정보화기술상태’를 검증했다. 북한은 이 핵무기종합관리체계를 ‘핵 방아쇠(Haekbangashoe)’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렀다.
핵 방아쇠라는 신조어는 핵 단추(nuclear button)와 얼핏 비슷해 보인다. 북한이 핵 방아쇠를 영어 표현인 ‘nuclear trigger’라고 하지 않는 것은 실체가 있는 북한의 핵무기종합관리체계를 표현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2017년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핵 단추 크기 논쟁을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핵 단추는 실체가 없는 상징이다.
미국의 경우 핵 단추를 누른다는 것은 대통령이 핵 가방에 있는 암호 코드를 가지고 미군 사령부에 핵 발사 명령을 내리는 것을 뜻한다. 이 암호 코드가 핵무기에 있는 암호코드장치(PAL)와 일치할 때 핵무기 발사 절차가 시작된다. 미군의 모든 핵무기에 있는 PAL에 코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핵무기를 발사할 수 없다. 핵무기 사용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위한 절차이다. 1960년대 초반에 케네디 대통령이 이 절차를 만들었다. 핵 가방에는 암호 코드가 있지, 핵 단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핵지휘통제체계는 핵무기를 원하는 시점에서 정확하게,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함이다. 핵보유 못지않게 핵지휘통제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미국의 경우 1945년에 핵무기를 사용했지만, 지휘통제체계는 그로부터 15년가량이 더 지난 후에 구축했다. 통상 핵무기 보유 이후 10년은 더 걸린다고 한다.
북한이 핵 방아쇠의 ‘정보화기술상태(IT basis)’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핵무기 발사 과정에서 일종의 C4I 체계(합동지휘통제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번 한·미 합동군사훈련 기간에 국가핵무기종합관리체계인 핵 방아쇠를 검증했다면 북한의 핵 능력은 분명 또 다른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북한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를 공개한 것이다.
〈노동신문〉을 살펴보면 핵 방아쇠는 핵 반격으로 전환하는 절차, 핵 공격 절차 등 두 가지 절차에 대한 관리통제체제이다. 지난해까지 한·미 합동훈련이 ‘반격 후 공격’이라는 개념에 따라 진행한 것을 모방한 듯 보인다. 두 가지 절차에서 모두 공격 명령을 인증하고 발사를 승인하는 것에 대한 기술적 점검이 이뤄졌다. 이후 발사와 폭발이 뒤따랐다. 이러한 절차는 케네디 대통령이 구축한 미국의 핵지휘통제체계를 답습한 듯하다. 물론 북한의 이런 체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노동신문〉 보도 말고는 입증된 것이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 같은 체계 구축에 대해 “그 언제든, 그 어디에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영원히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하고 우세한 핵 무력이 공세적인 태세”를 갖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후발 핵 개발 국가들도 핵지휘통제체계를 구축하는 데 노심초사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명령에서 발사까지 가는 기술적 절차보다 어떤 세력이 핵무기 통제권을 관리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군부와의 갈등 때문에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북한은 다양한 핵무기들의 공격성을 높이는 기술 체제를 검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대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장악력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 교리는 다른 어떤 핵보유국보다도 공격적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가 북한의 핵무력정책법에 대해 “상상 가능한 거의 모든 정치군사적 상황에서 핵무기의 선제적, 적극적, 임의적 사용을 규정하고 있다”라고 평가할 정도다. 세계에서 핵무기가 없어질 때까지 가장 강력한 핵무기를 가지겠다는 북한의 이 역설은 한·미·일 삼각 군사협력과 맞물리면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북한의 공격적인 전략은 2019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시작되었다. 북한의 노련한 외교관인 김계관은 하노이 회담을 두고 “미국에 속았다”라고 말했다. 하노이 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세 차례 백두산을 찾았다. 북한 주민들이 믿는 김일성의 백두산 혁명 신화에 의존해서 하노이 좌절을 극복하겠다는 의도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협상이 결렬되자 대신에 할아버지를 택한 것이다. 2019년 10월에는 백두산에서 ‘웅대한 작전(Great operation)’을 구상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웅대한 작전은 이후 ‘정면돌파, 자력갱생’이라는 구호로 나타났다. 이 고색창연하기만 한 구호가 웅대한 작전이라면 그것은 웅대하지도 않고 작전이라 하기에도 민망하다. 북한이 웅대한 작전으로 이름 붙인 것은 그것이 대외전략의 대전환이었기 때문이다.
‘물망초 작전’에서 ‘무소의 뿔 작전’으로
하노이 회담 이전까지 북한의 대외전략은 ‘긴장 조성→주목 끌기→협상력 높이기’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이를 ‘벼랑 끝 전술’이라 하기도 하고, 협상카드를 쪼개서 잘게 만들어낸다는 차원에서 ‘살라미 전술’로 불리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표현하자면 ‘물망초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망초의 꽃말은 ‘나를 잊지 마세요’이다. 협상을 위한 자산이 부족한 북한이기 때문에 잊히는 것은 협상력이 바닥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과거에는 도발적 행위 뒷면에 북한의 대화 손짓이 숨겨져 있음을 읽어야 했던 것이다.
웅대한 작전은 물망초 작전을 ‘자력갱생, 정면돌파’로 전환했다. 미국과 협상하지 않고 독자 생존해 힘을 키우겠다는 의도다. 북한판 ‘무소의 뿔 작전’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전략이 이렇게 변했다. 여전히 물망초 작전에 입각하면 북한의 의도를 정확하게 진단하지 못한다. 최근 대표적인 분석 오류는 3월16일 화성-17형 발사이다. 대부분 언론에서 윤석열 대통령 방일에 맞춘 발사라고 했다. 북한은 3월18일, 3월19일 이틀에 걸쳐 ‘핵 방아쇠’ 검증 훈련을 했고, 이러한 일정에 따라서 화성-17형을 발사한 것이다. 다만 발사 일정과 윤석열 대통령 방일 일정이 겹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만일 윤 대통령의 방일 일정과 맞춘 북한의 도발이라면 ‘핵 방아쇠’ 검증 훈련도 방일 일정에 따른 것이라는 어이없는 분석을 해야만 한다.
북한은 ‘정면돌파, 자력갱생’을 군사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2021년부터 시작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앞으로도 전술핵무기와 ICBM 성능 향상,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전략핵무기 개발, 극초음속 미사일과 군사위성 등 군사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갈 것이다.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이미 지난 4월13일 고체연료 ICBM인 화성-18형 발사 실험을 하여 북한 미사일 능력은 또 다른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력 강화를 막을 방법이 당분간은 묘연하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튼튼한 국방과 한·미 확장 억제력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국민과 대통령에게 ‘평화적 통일의 사명’을 부여하고 있다. 정전체제에는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안전핀도 있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은 2023년에 정전체제가 만든 안전핀을 뽑아내지 말아야 한다. 이런 다차원적 정책 구사 능력이 바로 국가 경영 능력이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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