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변성기’ 60대 이후 온다…평생 3번 바뀌는 목소리
말하는 능력은 안전하게 숨 쉬려는 노력에서 시작
중년부터 목소리 톤 높아지는 남성, 낮아지는 여성
몇 년 전부터 오디오북을 즐겨 듣습니다. 책은 눈으로 읽어도 좋지만, 그윽한 목소리의 소유자가 조곤조곤 읽어주는 소리를 듣는 것도 꽤 기분 좋은 일입니다. 특히 집안일이나 운전할 때처럼 눈을 책에 고정할 수 없을 때, 오디오북은 좋은 친구이자 졸음을 쫓는 도우미가 돼줍니다.
오디오북을 듣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리만으로 상황을 모두 전달해서인지, 등장인물의 나이에 따라 약간은 과하게 전형적인 목소리가 나오곤 합니다. 혀짤배기소리가 들리면 어린아이, 쥐어짜는 듯한 쉰 목소리가 들리면 노인이라는 식으로요.
그러고 보니 오디오북뿐 아니라 연극과 영화, 드라마 등 많은 영상매체에서도,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이의 배역을 맡으면 반드시 과하게 갈라지고 쉰 목소리로 연기합니다. 어딘가 숨이 부족한 듯한 목소리가 노인의 상징처럼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기 울음소리가 찌를 듯 높은 이유
목소리 노화를 알아보기 전에 일단 숨을 골라봅시다. 코로 깊게 들이마신 공기는 비강을 타고 인두를 거쳐, 후두를 지나 기관을 통해 폐로 들어갑니다. 폐로 온몸을 여행하고 되돌아온 공기를 내뱉을 때는 이 루트를 정확히 반대로 거쳐 돌아나오고요. 이때 폐로 들어가는 숨길(기도)의 가장 윗부분을 후두(喉頭, Larynx)라고 합니다. 후두는 연골과 인대, 점막으로 구성된 원통형의 장기입니다.
후두를 구성하는 여러 개의 연골 중 가장 큰 것이 갑상연골입니다. 목 앞쪽을 손으로 훑어내릴 때 약간 튀어나온 부분이 바로 갑상연골입니다. 갑상연골은 남자에게 두드러져 ‘애덤스 애플’(Adam’s Apple)이라는 별명도 붙었지요. 그래서 ‘울대는 남자에게만 있다’거나 ‘울대뼈가 목을 눌러 남성의 목소리가 더 낮다’는 속설이 있지만, 사실 울대의 본체인 갑상연골은 남녀 모두에게 있습니다. 다만 이 연골의 돌출부 각도가 여성은 120° 정도로 완만한데 남성은 90°로 가팔라 피부 아래로 더 도드라져 보일 뿐이죠.
앞서 언급했듯 후두는 연골로 이뤄진 일종의 통로입니다. 애초에 들숨 날숨이 지나다니는 길이기에 속이 비어야 하지만, 그 입구가 언제나 열린 것은 아닙니다. 마치 수도관 내부는 물이 통하기 위해 비어 있어야 하지만, 끝에는 수도꼭지가 달려야 물의 흐름을 조정할 수 있는 것처럼 후두 입구에도 일종의 개폐장치가 있어서 공기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 개폐장치는 생명 유지에 매우 중요합니다. 폐로 공기 외의 다른 것이 들어가면 위험하거든요.
그래서 공기를 원활하게 소통하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로 이물질이 넘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고 이는 후두의 주요 역할 중 하나입니다. 진화 과정에서 생명체의 후두에 개폐장치가 생긴 것은 이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물 밖에서도 숨 쉴 수 있는 물고기인 폐어(Lungfish)의 후두에는 일종의 괄약근이 있어, 물 속에선 괄약근을 조여 폐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고 물 밖에선 이를 이완해 폐로 공기가 들어갈 수 있게 조절합니다.
이후 생명체가 뭍으로 나와 본격적인 공기호흡을 하면서 후두는 연골로 모양을 유지하고, 후두 안쪽으로 정교하게 후두를 여닫는 주름 조직이 발달하게 됩니다. 그냥 ‘후’ 입바람을 불면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지만, 입술을 오므리고 숨을 내쉬면 휘파람 소리가 나는 것처럼 후두를 여닫는 주름 조직 사이로 숨이 들고 나니 여기서 소리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인간이 나타납니다. 후두 주름에 자리잡은 성대 조직을 정교하게 진동시켜 만들어낸 소리를 입술과 혀, 구강 내부의 움직임으로 다양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구현해 음성언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는 존재가 말이죠. 그러니 우리가 다양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머나먼 옛날, 우리의 생물학적 조상이 좀더 안전하게 숨 쉬려고 노력하면서 시작된 셈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하나의 몸으로 살아가지만, 성대만큼은 세 가지 변신을 합니다. 첫 번째는 짧고 가늘고 단순한 성대입니다. 바로 갓난아기의 성대죠. 아기의 폐가 첫 숨을 들이켜는 건 탄생하는 그 순간입니다. 드디어 닫혀 있던 아기의 후두가 열리고, 여린 성대가 처음으로 떨리는 순간이죠. 그 첫 소리는 높고 가냘픈 울음소리입니다.
신생아는 체구가 작은 만큼 후두도 작고 좁기 때문에, 성대도 짧아서 그 길이가 약 3㎜에 불과합니다. 성대가 짧으면 같은 양의 공기가 지나가더라도 더 많이 진동하기에, 더 높은 주파수의 음을 만들어낼 수 있지요. 그래서 아기의 울음소리는 매우 높아 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사춘기에 급격히 길어지는 성대
아기의 성대는 짧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구조도 단순합니다. 신생아의 성대는 단층 구조로 아직 대부분이 부드러운 점막으로 구성됐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울 수 있어도 의미 있는 말은 할 수 없지요. 어설프게나마 아기가 말할 수 있는 건 얼추 생후 1년은 지나야 합니다. 성대에 층이 생기고, 후두에 연골이 발달해 좀더 단단해지고, 구강이 넓어져 혀가 움직일 충분한 공간이 생긴 뒤에야 말이죠. 하지만 여전히 이를 조절하는 능력은 부족해서, 말을 튼 뒤에도 몇 년간이나 어린아이 특유의 혀짤배기소리를 냅니다. 그게 또 엄청 귀엽긴 하지만요.
유아기를 지나, 성대는 성장 속도에 맞게 서서히 자랍니다. 그러다가 사춘기에 들어서면 성대는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겪습니다. 바로 ‘변성기’죠.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시기, 성대도 극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가장 큰 것은 길이 변화입니다. 이전보다 성대의 성장 속도가 빨라져 목소리가 낮아집니다. 변성기 이전 아동의 성대 길이는 평균 9㎜지만, 이 시기를 겪으면서 급격히 길어져 대략 남성은 17~21㎜, 여성은 11~15㎜로 늘어납니다(평균 수치로, 성별에 상관없이 이보다 더 짧거나 긴 성대를 가질 수 있습니다).
성대는 짧을수록 진동수가 커서 높은 소리를 내고, 길수록 낮은 소리를 냅니다. 남성은 성대의 길이가 두 배 가까이 길어지므로, 변성기를 거치고 나면 앳된 얼굴의 소년이 목소리만 근엄하게 변하는 언밸런스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요.
이 과정을 거쳐 성대는 완전히 성숙하는데, 성숙한 성대는 서로 다른 5개 층으로 구성된 복합 구조를 가집니다. 가장 안쪽의 단단한 근육층을 중심으로 상대적으로 덜 부드러운 두 층의 인대가 이를 팽팽하게 잡고, 제일 바깥쪽에는 부드러운 점막 표층과 상피층이 감싼 구조입니다. 이렇게 성장·성숙한 성대는 20대가 되면 완전히 안정되고 40대까지 그 상태가 유지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의 목소리, 음색, 어투, 말씨가 하나의 아이덴티티(정체성)로 굳어지는 시기입니다.
목소리 톤 높아지는 남성, 낮아지는 여성
그렇게 안정된 상태로 계속 가면 좋으련만, 나이 먹고 신체적 노화가 시작되면 성대 역시 영향받습니다. 50대를 지나 조금씩 불안정해지는 성대는 60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변화합니다. 성대가 마르지 않게 늘 점액을 분비하던 점막층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점막이 말라 뻣뻣해지고, 성대 인대의 유연성이 줄어 탄력이 떨어지고, 근육조직은 퇴화하고 지방조직은 두꺼워지고 후두연골에 칼슘화가 일어나 딱딱해지면서 성대가 둔해지죠.
전반적으로 호흡 기능이 약해지면서 성대를 힘차게 울리도록 숨을 강하게 내쉬기도 어려워지고요. 이로 인해 노인은 말할 때 떨림, 쉬고 갈라짐, 발화의 어려움, 강도 저하, 숨참, 목에 더욱 힘줌 등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흥미로운 점은 노화에 따른 성대 변화도 남녀가 약간씩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남성은 노화로 성대의 위축이 잘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지요. 여성에게는 성대의 부종이 흔합니다. 성대가 부으니 이전보다 커져서 목소리 톤이 오히려 낮게 들립니다.
학자들은 이런 남녀 차이가 50대 이후 갱년기에 들면서 남성·여성 호르몬의 분비량 변화에 따른 것으로 추론합니다. 호르몬 변화가 성대에도 영향을 미쳐 굵고 나직하던 소리는 더 가볍게, 높고 가볍던 소리는 더 무겁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음성언어로 의사소통한다는 것, 다시 말해 말한다는 것은 인간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언젠가 심한 후두염에 걸렸습니다. 그보다 위쪽인 인두에 염증이 생겼을 때는 그저 목소리가 변하고 쉰 소리가 났을 뿐이지만, 후두에 염증이 생기니 아무리 말하려 애써도 의미 있는 음성은 나오지 않고 목구멍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만 나더군요.
엉뚱하지만, 인간의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내준 인어공주가 처음 사랑하는 왕자를 다시 만나 자신이 누군지 말하려 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답니다. 다행히 며칠 지나 후두염이 낫자 목소리는 서서히 돌아왔지만, 이후 목이 아플 때면 그때가 생각나 얼른 병원에 갑니다. 갑자기 말할 수 없게 되는 느낌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으니까요.
침묵, 소리 지르지 않기, 충분한 수분
나이 들면 목소리도 나이를 먹습니다. 때로는 성대에 세월의 펀치가 직격으로 다가와 음성장애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 64살 이상 미국인의 5분의 1이 음성장애를 겪는다고 보고했습니다. 음성장애는 원활한 의사소통에 걸림돌이 되기에 원만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줍니다.
음성이 삶의 질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조사한 연구 결과, 음성장애가 없는 이들의 경우 평균점수가 6점에 불과했지만, 경도의 음성장애가 있으면 25점, 심각한 음성장애가 있으면 51점으로 대답해 음성장애 정도가 심할수록 스스로 생각하는 삶의 질이 매우 떨어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위축된 성대에 보철물을 주입해 복원하는 수술적 치료 요법도 개발됐습니다.
성대가 나이 드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도, 약간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그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금연과 혈압 조절, 충분한 수분 섭취, 억지로 큰 소리 지르지 않기, 침묵으로 성대에 쉬는 시간 주기, 폐기능 유지하기는 성대 노화를 늦추는 좋은 방법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할 말은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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