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입니다"...MZ세대 열풍 '거지방' 직접 참여해 보니[이슈 산책]
"술 먹고 택시 탔다"에 "반성하세요, 빨리 거지 마인드 돌아가라" 질책
지출 내역 공유하며 자기 통제, 유머와 위트로 웃음까지 유발
"자기 관리가 젊은 세대 중요 키워드"..."의지 통해 절약 생활 실천력↑"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사치입니다. 반성하세요”
최근 MZ세대들 사이에서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자는 취지의 채팅방인 일명 ‘거지방’ 개설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 욜로(YOLO·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추구하던 MZ세대의 소비 트렌드가 ‘거지방’으로 대표되는 절약의 생활화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인데, 전문가들은 MZ세대들이 재미를 동반한 방식의 절약 실천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27일 카카오톡 검색창에 ‘거지방’을 검색하면 족히 수백 개가 넘는 채팅방이 나온다. 거지방은 엄지손가락으로 빠르게 ‘끌어 놓기(drag and drop)’를 해도 한참이 걸릴 정도로 많이 개설돼 있으며, 많게는 수백 명에서 천여 명의 인원 제한을 둔 방들도 이미 정원이 거의 다 찬 상태다.
그중 최근에 개설된 한 거지방에 입장한 기자가 “어제 술 먹고 택시 탔어요. 전철 아슬아슬해서. 택노각(‘택시 노예가 될 것 같다’의 뜻)...”이라는 글을 남기자 곧바로 “반성하라”며 따끔한 질책이 날아온다. 기자가 다시 “그럼 전철 끊기는 역까지라도 (전철을) 탔어야 할까요”라고 다시 묻자 “이미 탄 거 돌이킬 수 없어요. 다만 빨리 다시 거지 마인드로 돌아가야 합니다”라며 기자를 각성시킨다.
거지방에서 이용자들은 지출 시마다 자신의 지출 내역을 공유했다. 한 이용자는 “‘점심(컵누들+계란 구이) -3500원’, ‘아샷추(아이스티에 샷 추가) -4400원’, 오늘 벌써 7900원이나 썼네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해당 이용자가 비이성적으로 큰 사이즈의 ‘아샷추’ 사진을 찍어 올리자 기자가 “텀블러에 담아 내일까지 드세요”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목말라서 벌써 절반 마셨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가 이에 “사치스러운 목을 가지셨네요”라고 다시 언어유희를 행하자 참여자들은 “ㅋㅋㅋㅋㅋㅋ...”라며 세상 떠나갈 듯 까르르 웃는다.
거지방 참여자들은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과한 지출을 했다 싶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치”라며 채찍질을 가한다. 그렇지만 거지방의 대화 방식은 유쾌한 소통에 기반한다. 절약 정신은 강조하되 MZ세대만의 유쾌한 위트와 유머로 참여자들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유머로써 웃음을 자아내고 소비를 억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내는 셈이다.
가령 “물 -500원”이라고 누군가 지출 내역을 공유하자 “오후에 비 온다는데 좀 더 기다리지 그랬어요”라는 답이 올라오고 참여자들은 깔깔거리고 웃는다. 최근에 한 거지방 참여자가 “버블티를 사 먹느라 4700원을 썼다”라는 글을 올리자, “플라스틱 컵에 검은색 동그라미 스티커를 붙여 버블티 마시는 기분 내세요”라는 댓글이 올라왔고 이 대화 내용은 금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짠테크’, ‘무지출 챌린지’가 놀이문화와 결합....“‘거지방’ 통해 공감대 형성”
지난해 급격한 고금리·고물가 여파로 인한 ‘짠테크(짠돌이+재테크)’, ‘무지출 챌린지(지출을 전혀 하지 않는 도전)’ 열풍이 불었던 것이 올해엔 일종의 놀이문화와 결합하면서 거지방 개설 대유행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사회·경제적 어려움의 반증이기도 한 거지방 개설 열풍은 자기 관리를 중요하시는 MZ세대의 세태를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거지방 열풍은) 자기 관리가 젊은 세대의 중요 키워드임을 시사한다”며 “기성세대에게 ‘절약하라’는 훈계를 듣기보다는 또래의 젊은 세대들에게서 조언과 피드백을 받겠다는 것으로, 이를 통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고 공감대 형성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방법론적 측면에서 무겁지 않은 재미를 동반한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절약 의지와 습관을 기르기 위한 실용적 훈련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그동안엔 욜로라고 해서 명품 등을 막 자랑하고 그랬다면 이젠 현실이 너무 어려우니 정신 차리고 ‘절약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인데 절약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며 “거지방을 만들어 절약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는 너무 장난스러운 것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오히려 심각하게 얘기하면 서로 부담스러워 거지방을 떠나게 된다”며 “가벼운 방식의 소통을 통해 스스로 절약하는 힘도 얻고 다짐도 하고 실천력도 높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연호 (dew90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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