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산정무한] 지리산 끝자락 간미봉에서 만난 진달래
2023년 계묘년이 시작된 지 석 달이 지나고 벌써 4월로 접어들었다. 지난 1월에 여섯 차례, 2월에 일곱 차례, 3월에 여섯 차례의 산행을 한 데 이어 4월 2일에는 지리산 자락 서쪽 끝 줄기에 다시금 솟아오른 구례 간미봉(728.4m)을 등반했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남덕유산으로 함양에 들어와 영취산-월경산-봉화산-고남산을 거쳐 여원재에 이르고 그 산줄기는 다시 수정봉을 지나 고리봉을 통해 만복대-종석대-노고단을 경유해 반야봉-세석고원-장터목-천왕봉까지 이어진다.
종석대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시암재를 거쳐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간미봉艮美峰에 이르러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흘러 지초봉(601.6m)으로 솟았다가 까치절산(295.7m)에서 마무리하고 또 한 줄기는 흘러 흘러 광의면 방광리에 이르러 대장정의 흐름을 멈춘다.
구례군에서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지리산 정원'에는 야생화 생태공원과 야생화 테마랜드, 숲속 수목 가옥, 생태숲 방문자센터 등의 시설과 지초봉까지 오르내리는 모노레일을 설치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다.
인산연수원 내 웰니스 호텔 4층 죽림칠현 카페에서 방문객과 함께 차를 마시며 환담한 뒤 오전 10시쯤 아내와 함께 승용차로 구례 '지리산 정원'으로 이동해 생태숲 방문자센터 위 임도의 공한처에 주차한 뒤 10시 40분, 산행을 시작했다.
15분가량 걸으니 광의면 난동마을에서 시작한 지리산둘레길 제20구간 길을 만나고 굽이굽이 산모랭이를 도는, 임도로 이뤄진 그 길을 따라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한 시간 남짓 산길을 오르다가 어느 길모퉁이에 다다라 그곳에 놓여 있는, 돌을 정교하게 깎아서 만든 돌의자에 앉아 탁여현 농주로 목을 축인 다음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걷기 시작해 낮 12시 15분, 난동마을에서 산동으로 넘어가는 구리재에 다다른다.
간미봉과 지초봉 사이에는 두 개의 고개가 있는데 하나는 차가 넘나들 수 있는 임도의 정점에 자리한 구리재이고 또 하나는 구례 수목원과 연결된 납재이다.
구리재에서 비탈진 산 능선길을 따라 30여 분 오르니 납재전망대에 당도하고 그곳을 지나 내리막길을 10여 분 더 걸으니 낮 12시 57분, 납재 삼거리에 다다른다.
구리재와 납재전망대 사이의 능선길에는 길가에 분홍빛 진달래가 만개해 마치 산행객을 반가이 맞이하는 듯한 자세로 서서 손을 흔들며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인다.
숨을 고른 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점점 경사도가 심해지는 비탈진 능선길을 오르고 또 올라서 낮 1시 25분, 마침내 간미봉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사방이 나무숲으로 둘러싸여 탁 트인 전망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숨차고 힘든 오르막을 다 올랐다는 안도감으로 인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내리막 능선길 한쪽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150ml 잔에 가득 부은 탁여현을 단숨에 들이켜 심한 갈증을 해소하고 아내가 손수 지은 찰밥을 '죽염 김'으로 말아서 만든 김밥으로 느긋하게 점심을 먹은 뒤 배낭을 베고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지리산 끝자락의 간미봉 정상에서 주위 사방에 피어나 미소를 짓는 진달래와 줄지어 늘어선 소나무 숲 사이로 간간이 불어오는 미풍에 스민 완연한 봄의 생기生氣를 만끽하는 '호사를 누린' 시간이었다.
점심 식사 시간을 포함해 1시간가량의 휴식을 마무리하고 배낭을 다시 꾸려 둘러멘 뒤 남쪽의 광의면 방광리 쪽으로 뻗은 능선길을 따라 하산길에 나섰는데 누군가 양쪽 나무 사이의 무릎 높이에 줄을 치고 빨간 글씨로 쓴 '출입 금지'라는 푯말을 걸어놓았다.
산불 방지 등의 출입 금지 사유와 법적 근거를 밝히고 기간을 정해 게시한 여느 '출입 금지' 푯말과는 사뭇 다르게 누가 무슨 이유로 걸어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법적 근거도 안 밝힌 데다가 공감할 만한 합리적 이유도 제시하지 않아 출입 금지 조치의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공연히 산행객의 마음을 불쾌하고 불안하게 할 뿐이어서 재고再考의 필요성이 높아 보인다.
더구나 간미봉 정상에서 남녘의 방광리 쪽으로 100여 m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지리산 정원'으로 내려가는 길은, 잘 개척해 놓고도 사람이 다니지 않아 다시 키 작은 관목과 가시덤불로 얽혀서 길 찾기도 어렵고 다니기도 불편하게 변모했다.
길을 뒤덮은 풀숲을 헤치며 어렵게, 어렵게 길을 찾아 한 시간가량 걸어서 마침내 지리산 둘레길을 만나 그 길을 따라서 조금 오르다가 길가 공한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20분쯤 더 걸어서 출발했던 지점에 도착했다.
온 산의 길에 마치 비 내리듯 흩날리는 꽃잎을 보면서 문득 지리산에서 출가해 오랜 세월 지리산에 머문 바 있는 조선 중기의 고승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선사, 일명 서산대사의 봄 정취를 읊은 시구詩句가 떠오른다.
지는 꽃향기 골짝에 가득하고
우짖는 새 소리 숲 너머 들려온다
절은 어디메 있는가
봄 산은 절반이 구름일레
落花香滿洞낙화향만동
啼鳥隔林間제조격림간
僧院在何處승원재하처
春山半是雲춘산반시운
지리산의 봄이 무르익으면서 벌써 지는 꽃의 향기가 온 산골짜기마다 가득 차곤 한다. 어젯밤 비바람에 또 얼마나 많은 꽃잎이 온 산의 산길을 뒤덮으며 '덧없음無常의 법칙'을 보여주고 떠났는가. 청허 휴정 선사는 이 시를 통해 무언無言의 '자연설법自然說法'을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봄의 정취'를 즐기며 '봄날의 생기'를 만끽한 이날의 간미봉 산행은 지리산 둘레길, 능선길, 임도를 포함해 모두 7.2km에 달하는 거리를 5시간 40분 걸어서 오후 4시 20분에 모두 마무리되었다.
인산가 김윤세 회장
인산가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였던 인산仁山 김일훈金一勳 (1909~1992) 선생의 유지를 펴기 위해, 차남인 김윤세 現 대표이사이자 회장이 1987년 설립한 기업이다. 인산 선생이 발명한 죽염을 비롯해 선생이 여러 저술을 통해 제시한 물질들을 상품화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2018년 식품업계로는 드물게 코스닥에 상장함으로써 죽염 제조를 기반으로 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김윤세 회장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내 안의 의사를 깨워라〉, 〈내 안의 自然이 나를 살린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노자 사상을 통해 질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삶을 제시한 〈自然 치유에 몸을 맡겨라〉를 펴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