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원희룡 “전세사기에 세금으로 ‘피해금 대납’ 선례 남겨선 안돼”
“전세사기, 매우 예외적인 대상에만 국가 개입해야”
“처음부터 속일 의도의 ‘사기’라는 점 입증하기 어려워”
“모니터링한 부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담을 것”
“누가 봐도 ‘보증금 미반환’일 경우는 전세사기 아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을 공공이 우선 보상해야 한다는 야당 측의 ‘선(先) 보상 후(後) 구상권 청구’ 주장에 대한 반대 입장을 다시 한번 못 박았다.
원 장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 방안’을 발표하면서 “예를 들어 주가조작 또는 보이스피싱 등 사기 피해를 국가 세금으로 피해금을 먼저 대납, 반환하고 나중에 채무자나 경매 절차에서 물건에 대한 가격을 환수하는 경우는 현재까지 없다”면서 “이런 선례를 남겨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원 장관은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것은 국회의 권한이라 존중하지만, 실행 가능한 방안으로 만들어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 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 주택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등 6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한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에 대해 원 장관은 “앞으로 현재 예측하지 못한 피해 유형들이 나오더라도 사회적 합의상 억울하고, 국가의 사법 체제를 동원해서라도 구제해야 할 부분이라면 가급적 넓게 적용할 것”이라면서도 “경매로 들어가면 절반 이상 건질 수 있는데 전부 사기라고 고발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진짜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들이 뒤로 밀릴 수 있어 거르는 장치를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원 장관과의 일문일답.
―'선 보상 후 구상권’ 방안은 안 들어갔는데 국회 상임위에선 계속 얘기될 것으로 보인다. 추후 특별법에 담길 경우 정부 입장이 달라질 수 있는가.
“상임위에서의 논의는 국회의 권한이니 존중하겠지만 실행 가능한 방안으로 만들어 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암묵적 공감대가 있었다. 상임위가 열리면 정부의 안과 야당에서도 반대하지 않는 부분을 우선 신속히 통과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 피해자들이 보증금 회수를 가장 원하기 때문에 국가가 먼저 보상하고, 집주인에게 받아오든지 경매를 하면 될 것 아니냐는 주장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주가조작 또는 보이스피싱 등의 사기 피해의 경우 국가가 세금으로 피해금을 먼저 대납, 반환해 주고 나중에 이 부분을 채무자나 경매 절차에서 물건에 대한 가격을 환수해 오는 일은 현재까지 있지도 않고, 이러한 선례를 남겨서도 안 된다고 본다.
더 구체적으로 서울 강서구 피해 상황의 경우 피해자들이 국세 빼고는 담보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경매 절차를 대신 해주고 나중에 경매 대금으로 돌려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국세 채권 안분을 이번에 법에 넣으면서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천 미추홀구의 사례는 선순위 근저당 때문에 경매하더라도 후순위 채권자인 세입자들에게는 돌아갈 돈이 없다. 이미 추심업체들로 채권이 넘어간 경우들도 있다. 추심업체와 캠코의 현재 운영제도로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니 10% 이하 또는 최대의 경우에도 20% 이하의 평가액이 나온다. 피해자들이 설명을 듣고는 10%나 20%의 매입 가격을 주고 채권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라고 얘기한다. 이는 우선변제금액인 2800만원보다도 낮은 가격이다.”
―정부에서 제시한 전세사기 피해자의 여섯 가지 기준 중 ‘전세사기 의도, 보증금 상당액 미반환’ 등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요건들이 있어 보인다. 피해 구제 대상이 실제 피해 대상보다 상당히 제한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전세사기의 유형이 너무나 다양하다. 각각의 채권, 채무 관계의 내용과 피해자들이 처한 요구사항도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일이 법에 규정하고 진행하려고 하면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행정력이 낭비된다.
이 때문에 기본적인 전세사기라는 큰 원칙만 정하고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해 형평성과 신속 구제가 가능한 법을 취했다. 시행령, 시행규칙 등 지침에 대해서는 조금 더 개개인 사례들을 담은 내용들을 바로 후속 입법할 예정이다. 국회가 아니라 행정부 내에서 하는 부분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충족하려면 여섯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선별 구제하는 것 아닌가.
“보증금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인 간의 채권·채무 관계에서 시작된 것이다. 선순위 저당권자가 있냐, 없냐에 따라 또는 국세 채권이 들어가 있냐, 없냐에 따라서 권리관계가 다르다. 피해자가 실제로 회수할 수 있는 보증금의 규모도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전세사기라는 매우 예외적인 대상에 대해서만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대신 법원에서 전세사기로 확정된 경우로 한정하면 (구제 대상이) 너무 좁아지고 증거가 없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거나, 처음부터 속일 고의가 있어 ‘사기’라는 점을 입증하기 어렵다. ‘하다 보니 안 됐다. 미안하다. 사기 칠 의도가 없었다’ 이렇게 빠져나가면 대상이 너무 좁아진다.
그래서 전세사기라는 명백한 범죄에 준하는 경우로 한정해야만 경매에 국가가 개입을 할 수 있다. 특정인에게 우선매수권을 주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우선매수하는 것은 사실 (다른 채권자의 권리를) 빼앗아 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권력의 발동, 그리고 사적인 권리관계에 국가의 개입과 우선권을 행사하는 것 최소화하는 게 우리의 헌법정신이자 시장원리이고 국민들의 합의사항이라고 믿는다.”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 중 ‘면적·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 주택’의 기준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접수된 사례들을 보면 보증금은 3억원, 전용면적 85㎡ 정도면 대부분 포괄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서울인지 지방인지, 가족 수가 몇 명인지에 따라서 면적이나 가액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일률적으로 정해놓으면 본의 아니게 제외되는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어 내부적으로 그 정도의 기준을 서민주택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경계선 효과 때문에 억울하게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탄력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피해지원위원회 의결기구에 넘기려 한다. 대신 의결기구의 심의 기준으로 큰 예외 사항이 없으면 3억원 또는 전용면적 85㎡라는 기준을 지키도록, 달리 적용해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만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한다. 정말 억울한 경우로 인정될 경우 포괄 범위를 넓히기 위해 규정한 것이다.”
―특별법을 2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세채권 안분이 상시화될 가능성이 있나.
“2년으로 정한 것은 대부분의 임대계약이 2년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이미 지난해부터 사기전세에 대한 예방대책이 시행되고 있다. 전세가율 보증 대상 기준을 낮춘다든지, 악성 임대인에 대한 정보를 현재 공인중개사가 알리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강도 높게 돼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체결되는 계약이 문제가 대거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
국세 안분이라는 제도가 이번에 처음으로 도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행해 보고 과연 일반화시켜도 되는지, 아니면 다른 형평성이나 국세 주권에 있어서의 문제가 생기는지 등에 대한 부분 시행 결과를 보고 판단하도록 하겠다.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요건 중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조건이 포함됐는데, 개인이나 소수가 피해 대상이 됐을 경우에는 지원받을 수 없나.
“보통 1대 1 계약의 경우 사기로 인정되기에는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고 보고 일단 다수라는 최소한의 거르는 장치를 넣었다.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보증금의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배제하기 위해 넣은 요건이라기보다 엄격한 의미의 사기를 적용하다 보면 해당이 안 되는 부분까지 포괄하기 위한 요건으로 이해해 달라.
모니터링한 부분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담을 것이다. 지금 애매하다고 해서 ‘내가 대상인데 빠지는 것이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앞으로 현재 예측하지 못하는 피해 유형들이 나오더라도 우리 사회적 합의상 정말 억울하고 국가의 사법체제를 동원해서라도 구제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가급적이면 넓게 적용하려고 한다.
다만 누가 봐도 보증금 미반환일 경우, 예를 들어 5~6년 동안 잘 살다가 결국은 문제가 생기는 부분이나 경매로 들어가면 절반 이상 건질 수 있는데 전부 사기라고 고발하는 부분들까지 처리하다 보면 진짜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들이 뒤로 밀리거나 도움의 밀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거르는 장치를 넣은 것이지, 경계를 지어서 숫자를 줄이려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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