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발품 팔아 위기 이웃 직접 발굴”
[서울&] [자치소식]
동별 5~8명 참여, 지난해 10월 꾸린 뒤
집중 캠페인 펼쳐서 30여 가구 찾아내
3월 간담회에서 발전방향 함께 모색
동 여건 맞춰 지속…구는 홍보 지원
지난 12일 차복자(68)씨가 성북구 월곡1동 동네 골목 집 대문 틈새에 안내문을 끼워 넣었다. 도움이 필요한 복지 위기 가구를 찾으면 알려달라는 내용이다. 차씨는 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복지관 사회복지사 등 3명과 함께 ‘언제든지 전화 주세요!’라며 상담 번호가 적힌 자석 스티커를 우편함에 붙였다. 우편물이 쌓이거나 오래 미납된 고지서가 있는지 유심히 들여다봤다.
이들은 골목을 나와 인근 가게에 들어갔다. 10년 전부터 장갑공장을 이삿짐센터로 바꿔 운영해온 가게다. 차씨는 “손님 중에 어려운 분이 있거나 아는 분이 있으면 전해주세요”라며 가게 주인에게 안내물을 건넸다. 가게를 나오며 차씨는 “가전제품 등 중고물품이 생기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가끔 필요한 게 있어 가지러오는 주민도 있다”고 귀띔해줬다. 이들은 동네에서 오랫동안 장사해온 식료품 가게, 세탁소 등도 들렀다.
차씨는 이날 ‘월곡1동 구석구석발굴단’ 이름으로 위기 가구 발굴 활동을 하는 중이다. 발굴단에는 주로 통반장, 동 지역사회 보장협의체 등 동네 사정에 밝고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주민들이 참여한다. 임정선 성북구 복지정책과장은 “위기 가구를 돕는 활동은 예전에도 해왔지만, 복지 사각지대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며 “주민 중심의 인적 관계망을 활용해 위기 가구를 찾아내자는 취지로 발굴단을 구성해 집중 캠페인을 펼쳤다”고 했다.
성북구는 지난해 10월 구석구석발굴단 122명을 꾸렸다. 20개 동마다 5~8명이 참여했다. 60대가 다수이고, 70%가 여성으로 대개 동네에서 40년 넘게 산 주민들이다. 발굴단 이름은 김미경 성북구 돌봄지원팀장이 지었다. 김 팀장은 “주민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 촘촘한 복지 안전망을 만들고 싶은 바람을 담았다”고 했다.
한 달 기간으로 시작한 캠페인은 발굴단원의 높은 참여도와 적잖은 성과에 올해 2월까지 이어졌다. 그사이 30여 건의 신고나 제보가 들어왔다. 장위2동에 사는 한 주민은 오랫동안 외출하지 않는 세입자가 걱정돼 상담 번호로 전화해 알렸다. 한 노모는 안내물을 보고 50대 아들이 사업 실패 뒤 우울증을 앓고 있어 극단적 선택을 할까 두렵다며 신고해, 동 주민센터 담당자가 집을 찾아가 상담을 진행했다.
발굴단 활동으로 상담과 지원이 이뤄진 대상자의 연령대는 30~80대로 폭넓었다. 60%가 1인가구이고 질병이나 정신 건강 문제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가 많았다. 맞춤형 급여 등 지원제도 안내나 후원 물품, 성금 등의 연계가 이뤄졌다. 김미경 팀장은 “도움을 요청한 4명 중 1명이 공공기관에 처음 전화할 정도로 지원제도를 몰라 어려움 겪는 이들이었다”며 “골목마다 돌아다니며 찾아내는 발굴단 활동의 의미가 큰 것 같다”고 했다.
12일 월곡1동 구석구석발굴단원 8명은 발굴단 활동에 앞서 동네 어린이 놀이터 옆 휴게 공간에서 열린 ‘찾아가는 복지상담소’ 운영에 함께했다. 지역 종합사회복지관(생명의전화 위탁운영)과 월곡1동 주민센터가 관심을 보이는 주민들에게 혈압과 혈당 검사, 복지 서비스 안내와 상담을 해준다. 지난해 첫 운영에 하루 200여 명이 찾아 올해 또 열었다. 발굴단원들은 안내문을 나눠주며 위기 징후 이웃에 관심을 부탁했다.
복지관의 사회복지사인 김지연씨는 발굴단이 지속돼서 이웃의 문을 두드리는 역할을 이어가길 기대했다. 김씨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도움을 요청하기는 어려울 수 있기에 같은 주민으로서 덜 부담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며 “이웃을 살피고 다가가는 발굴단 활동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발굴단원 가운데 가장 젊은 석은주(48)씨는 생활지도사로 일하면서 발굴 활동에 참여한다. 석씨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분들은 이웃이 관심을 갖고 한 번이라도 더 두드려봐야 찾아낼 수 있는 것 같다”고 경험을 말했다.
지난 3월20일 구석구석발굴단의 향후 활동 방향을 찾는 간담회가 구청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발굴단원, 동 주민센터 담당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사전 설문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눴다. 설문조사나 간담회에서 동 특성을 살려 발굴단 활동을 지속하자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김미경 팀장은 “4월부터 동 여건에 맞게 활동할 수 있는 지원 사업을 하게 됐다”고 했다. 구는 안내문 등 홍보물을 제작해 동 발굴단에 보내주고, 여름과 겨울에는 20개 동 발굴단이 동시에 집중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다.
성북구는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해 발굴단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구는 안내문과 상담 번호 자석 스티커 배포 이외에 동네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방안을 더 고민하고 있다.
임정선 복지정책과장은 “동네 안에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등 다른 단체들과 활동을 연계해 발굴 뒤 지원 활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발굴단이) 촘촘하게 (위기 가구를 찾아내는) 활동을 해 여러 성과가 있었다”며 “이웃이 이웃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살피는 복지생태계가 잘 조성될 수 있게 행정도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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