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파이’ 열창 윤 대통령, 영어 연설은 ‘어그레시브’하게?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각·한국시각은 28일 자정) 오전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30분간 영어로 연설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은 한국 대통령으로서 7번째다. 이승만·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연설했고,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어로 연설했다. 지금은 대통령의 영어 연설에 큰 거부감이 없지만, 과거에는 한국 대통령이 영어로 연설하는 것을 두고 시각이 엇갈리기도 했다. ‘대통령은 국가적 자존심을 위해 자국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제사회에 호감을 주며 실익을 챙기자’는 주장이 맞붙었다. 또 연설 뒤 영어 연설 실력을 두고도 평가가 엇갈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평소 영어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 의회 연설에서도 자신이 평소 즐겨 쓰는 표현대로 영어 실력을 ‘어그레시브’(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하게 발휘할까.
노태우·김대중 “우리말이냐 영어냐”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10월18일 미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영어로 연설했다. 1954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영어로 연설한 뒤 35년 만이다 보니 국내에서는 연설을 앞두고 꼭 영어 연설이 필요하냐는 의문이 나왔다. <조선일보> 1989년 10월14일치 3면에는 이러한 논란을 의식해 ‘우리말이냐 영어냐’는 워싱턴 특파원의 칼럼이 실리기도 했다. ‘연설이 국내정치용이라면 우리말로 해야 하지만, 미국 정치인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한 기회로 생각한다면 영어가 효과적이다’는 시각이었다. 다만 칼럼은 “노 대통령의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별개의 문제지만”이라고 끝맺으며 대통령의 영어 연설에 대한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당시 언론보도와 여론을 살펴보면, 영어 연설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달라도 ‘잘 못 하면 어떡하냐’는 우려는 공통으로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미 의회에서 한국어로 연설해서 이러한 논란이 가라앉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6월 미 의회에서 영어 연설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한겨레> 1998년 6월10일치 25면을 보면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서 한국말을 쓰는 것을 본 적 없다’와 ‘국익을 위해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맞붙었다. <동아일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 의회 연설에 대한 평가를 묻는 ‘여론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동아일보가 11일 한솔PCS와 함께 개인휴대통신 가입자를 대상으로 김 대통령의 영어 연설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4백47명의 응답자 중 ‘김 대통령의 국제감각과 미국에 대한 친근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는 대답이 우세했다. 60.9%. 그러나 ‘리셉션 등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몰라도 공식행사에서 영어로 연설한 것은 어색했다’는 의견도 34.9%로 적지 않았다.
-<동아일보>1998년 6월12일치
한국어 연설한 MB “자부심”
영어교육을 강조하고, 영어표현을 자주 사용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10월 미국을 국빈 방문해 미 의회에서 ‘한국어’로 연설했다. 그는 이후 2015년 1월에 낸 회고록을 통해 “연설은 한국어로 하기로 했다. 외국 정상의 자국어 사용은 그 나라 자부심이 걸려 있는 문제라 여겼기 때문이다”며 “대개 외국 정상들의 미 의회 연설은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 같은 강대국들의 경우 자국어로, 개도국의 경우 영어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미 의회 한국어 연설 이유를 밝혔다.
영어를 자주 사용했던 이 전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당시 대통령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국제행사에서 외국어 연설을 활발하게 한 박 전 대통령을 ‘자부심이 없는 정상’이라며 저격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영어·중국어·스페인어·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8일 미 의회에서 영어로 연설했다. 영어 연설에 대한 찬반 논란이 노태우·김대중 전 대통령 때보다 더 뜨겁게 온라인을 중심으로 벌어졌고 영어 실력에 대한 평가도 엇갈렸다. 일부 언론은 전문가, 원어민 교사 등의 평가까지 보도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어그레시브’한 ‘영어 사랑’
윤 대통령의 영어 연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10년 만이다. 영어 연설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고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취임 뒤부터 영어표현을 자주 써서 눈길을 끌었다.
“(용산 시민공원 이름을) 영어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는데 국립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어서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로 이름을 지으면 좋겠다.”
- 2022년 6월 10일,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점심 모임
“2023년에는 그야말로 다시 대한민국, 도약하는 그런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더 아주 어그레시브(aggressive·공격적으로)하게 뛰어보자.”
“정부의, 거버먼트 인게이지먼트(Government Engagement·정부 관여)가 바로 레귤레이션(regulation·규제)이다.”
- 2022년 12월21일 제12차 비상경제 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국가 정상화란 이 나라를 일류국가로 만드는 것”, “이를 위해 조급하게 미시적인 제도들을 만들거나 바꾸기보다는 체인지 싱킹(change thinking), 생각 바꾸기가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 2023년 1월25일 국무회의
“올해부터는 체인지 싱킹, 즉 금융시장의 선진화를 위해 직접금융시장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 203년 1월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특히 국책은행이 어그레시브하게 금융투자를 선도해 달라”
- 2023년 2월28일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전략 회의
미 의회 연설에서 평소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할 지 관심이 쏠린다. 윤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 이후 열린 국빈 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돈 맥클린의 친필 사인이 담긴 통기타를 선물 받자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 한 소절을 영어로 불렀다. 미 의회 연설을 앞둔 몸풀기였을까.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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