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디플레이션 현실화하나…"진입 안 했지만, 주의 필요"
"세금 감면, 보조금·소비 바우처 등 소비 촉진책 나와야"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중국 당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금융권에 현금을 대거 푸는가 하면 연이어 금리를 인하·동결하는데도 물가가 정체하거나 하락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통화 공급 급증과 물가 하락이라는 '특이한 조합' 속에서 기업은 신규 투자를 꺼리고 가계는 소비보다는 은행 저축을 택하는 이런 상황이 디플레이션의 '전조' 아니냐는 것이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26일 '중국에 장기적 디플레이션이 닥칠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아직은 아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디플레이션에 진입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차이신은 현재 상황을 약한 단계의 경제 회복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가전제품 등 내구재 상품 가격 하락이 지속되는 상황을 볼 때 이미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 시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중국은 2020년 이후 소비자 물가지수 성장률이 1% 미만의 저(低)인플레이션 상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의 배경에 중국 경제 성장 둔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당국이 이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도 했다.
중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의 류위후이 교수도 최근 중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면서 "침체(recession) 구간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짚었다.
사실 중국의 디플레이션 우려는 지난 11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를 발표하면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실제 3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0.7% 상승에 그쳐 전달인 2월(+1%)보다 떨어졌고, 2021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설정한 올해 3%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의 이런 추세는 미국의 5% 수준, 그리고 유럽연합(EU)과 영국의 8.3%, 10.1%와는 확연히 다르다.
중국의 PPI 추이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공장이 도매상에 건네는 가격을 반영하는 PPI가 2월 -1.4%에서 3월 -2.5%로 오히려 하락 폭을 늘렸다. 6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의 돈 풀기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 말 헝다(恒大·에버그란데)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시작으로 지난해 내내 부동산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은 중국은 같은 해 10월 제20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계기로 부동산 시장 살리기에 주력해왔다.
우한시 등 일부 지방정부 차원에서 2주택 구매를 허용하는 등의 부동산 투자 유인책이 나왔고 유동성 공급 조치가 이뤄졌다.
미국·유럽 등의 금리 인상과는 달리 중국은 금리 인하·동결, 은행 지급준비율 인하 등의 방법으로 돈을 풀었다.
실제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달 27일부터 시중은행에 적용하는 지준율을 0.25%포인트 내렸다.
지난해 4월과 12월 각각 0.25% 포인트 인하한 데 이어 3개월 만의 조치였다. 이로써 약 5천억위안(약 95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 효과가 난 것으로 평가됐다.
인민은행은 지난 20일에도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를 8개월 연속 동결했다. LPR 1년 만기는 연 3.65%, 5년 만기는 연 4.30%로 유지한 것이다. 인민은행은 1년 만기 LPR은 2021년 12월과 지난해 1월, 8월에 연이어 내렸고, 5년 만기 LPR은 작년 1월과 5월, 8월에 각각 인하했다.
중국 당국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그 규모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이를 통해 엄청난 자금이 풀렸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이전과는 달리 유동성 위기의 기업들에 자금을 직접 지원하지는 않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중앙에서 풀린 자금을 이용해 부채 상환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철통 봉쇄 목적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방역 비용 증가와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국가 소유 토지 판매 부진으로 재정난에 휩싸였던 탓에 부채 상환을 우선순위에 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과 소비자는 '미래 불안'을 느끼는 기색이 역력하다.
중국 당국은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작년 동기 대비 4.5%를 기록해 '선전'했다고 밝혔으나, 이전의 개혁개방 고도 성장기와는 달리 중국 경제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3%에 그쳤고, 미래 핵심 산업인 인공지능(AI)·첨단반도체 등에 대한 미국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포위망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중국 경제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년 넘게 하락세를 보이던 70개 도시 대상의 신규 주택 가격지수가 2월(+0.3%)에 반등한 뒤 3월(+0.4%)에 약간 더 올랐으나, 앞으로 '의미 있는' 상승세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은 많지 않다.
불안한 미래 탓에 중국 소비자들이 은행 저축으로 향하는 발길을 주택 투자로 돌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때문인지 컨트리가든(碧桂園·비구이위안)이 지난 25일 저장성 항저우에서 28억위안(약 5천400억원) 상당의 토지를 사들인 것을 빼면 중국 부동산기업들이 주택·상가용 건물 건축을 위한 토지 구매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실업률도 문제다. 중국의 3월 16∼24세 청년 실업률은 19.6%로 1∼2월(18.1%), 작년 12월(16.7%)보다 올랐다.
3월 청년 실업률은 춘제(春節·설) 연휴 이후 구직자 증가 탓에 원래 상승하는데 올해는 시장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충격에서 벗어났는데도 반등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당국은 인프라 투자 확대로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으나, 효과를 볼 수 있는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블룸버그는 중국의 31개 성·시·자치구 가운데 올해 지출 계획을 공개한 21곳의 자료를 분석해 이들 지방정부가 올해 12조2천억위안(약 2천339조원)을 투입했으며, 이는 전년보다 17% 늘렸다고 전했다.
인프라 투자로 고용을 늘려 소비 지출을 유도하겠다는 중국 당국의 의지가 읽히지만, 이로써 중국 소비자의 지갑을 열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인민은행 자문위원을 지낸 리다오쿠이(李稻葵) 칭화대 경제학과 교수는 5천억 위안(약 96조6천억원) 규모의 소비 쿠폰을 나눠줄 것을 촉구했다.
차이신은 "내수 부양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일본의 장기적 디플레이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면서 "세금 감면, 보조금·소비 바우처 지급 등의 조처로 소비 촉진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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