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론만 하지 않았을 뿐 中 행태 비판한 한·미 정상회담…중국 반발할 듯

이귀전 2023. 4. 2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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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반발 의식해 직접 거론 안 했지만 美 등에서 비판한 내용 담겨
‘일방적 현상 변경 반대’,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 등 中 겨냥
中 보복 대응 반도체 공급망 등 국가 안보 보장 적절 조치 취하기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가장 반발하는 대만 문제에 대해 중국을 특정하지 않으면서 ‘현상변경 강력 반대’를 주장했다.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시도를 견제하되 중국의 반발 여지는 줄이기 위한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만, 남중국해 문제 등에서 문재인정부 당시 미·중 사이 균형을 추구하던 입장에서 중국을 강도 높게 견제한 내용이 담겨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양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 매립지역의 군사화 및 강압적 행위를 포함해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며 “남중국해 및 그 이원 지역을 포함한 지역에서의 방해받지 않는 상업,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 해양의 여타 합법적 사용을 보존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건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와 함께 “역내 안보와 번영의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전제했다.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을 뿐 그동안 미국과 서방이 대만,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을 견제하며 비판해왔던 내용이 담겼다.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은 2016년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불법으로 판결났지만 남중국해 약 90%가 자국 영해라는 중국의 주장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남중국해 수중 암초를 매립해 요새화한 인공섬화하고 있다. 인공섬에 무기고, 항공기 격납고, 레이더 시스템 등을 배치해 군사기지화하고 있다. 강압적 행위란 필리핀, 베트남 등 남중국해 영유권이 공유하는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무력 행태를 말한다.

또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는 대만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을 뿐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 등과 관련 있다. 

윤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해협 긴장 상황에 대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후 중국은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비외교적 언사로 강한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또 중국은 쑨웨이둥(孫衛東)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정재호 주중대사에게 전화로 ‘엄정 교섭’을 제기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공동성명에서는 중국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 대만이라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바꾸고 ‘힘’ 대신 ‘일방적’이란 표현으로 교체한 것이다. 하지만 내용상 중국을 지칭하는 상황이어서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성명에선 한국의 미국의 동맹 움직임에 대한 지지 의사도 담겨 있어, 중국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극력 반발해온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에 대해 “윤 대통령은 오커스 출범을 포함해 역내 평화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미국의 협력적 노력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고 소개했다.

경제 영역에서는 중국의 경제 보복 조치를 염두에 둔 내용이 담겼다.

성명은 “양국이 경제적 강압, 그리고 외국 기업과 관련된 불투명한 수단의 사용을 포함한 경제적 영향력의 유해한 활용에 대해 깊은 우려를 공유하고, 반대를 표명하며,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해 유사한 입장을 가진 국가들과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때 이미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을 당한 바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 압박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은 자국내 대규모 반도체 생산 기지를 보유한 한국이 미국의 반도체 디커플링(탈동조화)에 동참할지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앞서고 있는 일본과 네덜란드는 미국의 통제에 이미 동참키로 했다.

성명에선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해서는 “회복력 있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유지하고 급격한 기술 진보를 따라가는 가운데, 국가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양 정상은 양국의 해외투자 심사·수출통제 당국 간 협력 심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한국이 직접 동참한다는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국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적정한 조치’를 언급해 중국 등이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할 경우 이에 대응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법대 문일현 교수는 “중국을 실명으로 지목하진 않았지만, 중국이 민감해하는 영역을 공동성명이 거의 다 건드렸다”며 “중국이 공식 반발할 경우 자국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 대응 수위를 조절할 수 있지만, 한·중 관계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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