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SVB 사태' 막아라…한은, 실시간총액결제 도입 속도낸다
한국은행이 '한국판 SVB(실리콘밸리은행) 사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다. 스마트폰 뱅크런(예금 대량인출) 등으로 인한 은행의 지급결제 불능 사태가 금융권 전반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현행 이연차액결제(DNS) 방식의 신속자금이체 시스템을 2028년까지 실시간총액결제(RTGS) 방식으로 바꾼다.
시스템 개선이 완료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은행권의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제공비율을 2025년 8월까지 단계적으로 100%로 올릴 계획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DNS 방식의 신속자금이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방식은 고객 간 자금이체는 실시간으로 처리되지만 한은금융망을 통한 참가기관 간 최종결제는 거래 다음 영업일 오전 11시에 이뤄진다. 하루동안 이뤄진 자금이체에 대한 참가기관 간 주고받을 금액을 모아 상계처리한 뒤 차액만 결제하는 식이다.
예컨대 어느날 A은행에서 B은행으로 총 100만원이 이체됐고 B은행에서 A은행으로 70만원이 이체됐다면 당일 A은행과 B은행은 각자 은행 자금으로 고객 계좌에 돈을 지급한다. 이후 다음날 오전 11시 한은이 A은행 당좌예금 계좌에서 차액 30만원을 빼 B은행에 넣어준다.
이 방식은 돈을 보내는 고객의 거래은행이 실시간 결제를 위해 적정 수준의 결제유동성을 상시 유지·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주는 장점이 있다.
다만 SVB 사태와 같은 일이 국내에서 벌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A은행에서 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 다른 은행들이 A은행으로부터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신용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다음날 차액을 정산받을 수 없어 리스크가 연쇄적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RTGS는 수취인 계좌에 실시간으로 돈이 지급되는 순간 해당 건에 대한 은행 간 결제까지 마무리 되는 방식이다. 거래 건마다 은행 간 정산이 완료되는 만큼 DNS 방식과 같은 신용리스크 노출 우려가 없다는 게 한은 설명이다.
2012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멕시코, 호주, 홍콩 등이 RTGS 시스템을 구축했다. 유럽중앙은행뿐 아니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도 RTGS 방식의 실시간 지급 결제시스템 '페드나우'(FedNow) 도입을 준비 중이다.
김준철 한은 결제정책부장은 "SVB 사태를 계기로 신용리스크를 없애는 방식으로 바꿔야 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차액결제 실패를 대비해 은행으로부터 받아 놓는 담보(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비율을 현재 70%에서 2025년 8월까지 100%로 높일 계획이다. 오는 8월 80%, 2024년 8월 90% 등 단계적으로 높여갈 방침이다.
앞서 한은은 은행권의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제공비율을 30%(2015년)에서 100%(2022년)로 올리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COVID-19)에 따른 금융안정조치로 100% 인상 시점을 2025년으로 미뤘다.
김 부장은 "차액결제 담보비율은 (예정대로라면) 벌써 100%에 도달했어야 했다"며 "SVB 사태 이후 차액결제 이행을 안전하게 수행할 필요가 커져 더이상 (계획을) 유예하지 않고 2025년 8월까지 100%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주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회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해 기자들과 만나 "SVB 파산과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 뱅크런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는 빠를 것"이라고 한 바 있다.
한은은 은행 간 자금이체가 원활히 이뤄지는지, 급격한 예금인출이 발생하는지 등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은행들의 이체한도 소진율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고 한도가 70%가 넘으면 한은이 경고를 해 이체한도를 늘리는 식으로 가이드를 주고 있다"며 "SVB 사태 자금인출과 관련해 문제된 적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중"이라고 설명했다.
박광범 기자 socoo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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