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모기업 YTN인수 열망 속 기자들은 "정부 비판 어려워"

박재령 기자 2023. 4. 2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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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사장, 사석에서 YTN인수 강한 의욕, "정부 비판 근거 있게"
구성원 "발언 부적절"… 사장 "원칙론적 얘기, 기사 방향 지시 없었다"
미뤄진 김건희 보도, 부산엑스포 1면 상단 게재 등 보수화 불안
한국일보지부 "정부 비판 내용, 취재단계부터 주저하게 되는 것"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사실상 정부 의사가 반영되는 YTN 인수전에 모기업 동화그룹이 뛰어들고 경영진들이 YTN 인수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면서 한국일보 구성원들이 정부 비판 보도가 어려워졌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일보 노조는 김건희 관련 보도가 미뤄지고, 부산엑스포 기사가 1면에 배치되는 등의 사례를 들며 “정부 비판 내용은 취재단계부터 주저하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 한국일보 로고.

내부 구성원에 따르면, 한국일보는 YTN 인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발돋움하려는 모기업 의지에 내부 공감대가 있고, 한국일보도 도움을 줘야 한다는 인식이 윗선에 만연하다는 분석이다. 미디어 혹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인력을 별도 배정하는 등 구성원들은 YTN 인수에 대한 회사의 의지를 실시간으로 체감하고 있다.

더불어 지난달 말 이성철 한국일보 사장이 막내급 기자 3명과 함께한 사석에서 기자들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YTN 인수에 의욕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부 비판을 근거 있게 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알려져 일부 구성원들의 비판이 있었다. 이 사장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의 손바닥 '왕(王)자' 관련 기사를 예로 들며 이는 제대로 된 비판 기사가 아닌 모욕성 기사라며 대안을 제시해 비판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한국일보 A기자는 통화에서 “당연히 부적절하다. 예민한 상황에서 사장이 노골적으로 말한 것이 알려지니까 우리가 좀 조심해야겠다 이런 얘기가 나온 게 사실”이라며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지만 회사 내 YTN 인수를 놓고 공식적으로 얘기된 적이 없어서 문제 제기할 토대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B기자는 “(사장이) 압력을 행사하거나 구체적인 지시를 한 적은 없다.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에 따르면 (문제 발언도) 지나가는 식이라 편집권 침해라 하긴 어렵다”면서도 “그래도 이 시점에서 저연차 기자들을 상대로 사장이 그런 얘기를 한 건 부적절하다”고 했다.

이성철 사장은 지난 26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명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YTN 관련해 원칙론적인 얘기를 했을 것이고, 그 누구한테도 기사를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거나 이렇게 써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특히 어린 기자들에 그렇게 얘기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YTN 인수를 둘러싼 한국일보 논조 변화 우려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정진황 한국일보 뉴스룸국장과 진행한 취임 6개월 간담회에서 논조 변화 우려를 중점적으로 다뤄 소식지로 발행하기도 했다. 정진황 국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논조 변화 우려는 오해라며 “의도적으로 기사를 깔아뭉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사장·주필 교체 배경에 YTN인수?…친정부 변화 우려하는 한국일보]

[관련 기사 : 한국일보 우경화 우려에 뉴스룸국장 “오해…정체성 지킬 것”]

[관련 기사 : 한국일보 소수자 담당부서 폐지에 기자들 반발…커지는 보수화 우려]

하지만 우려는 해소되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지는 모양새다. 한국일보지부는 지난 18일 <경영진 침묵 속 YTN 인수 추진, 신뢰·정체성 훼손 '대탐대실' 우려>란 제목의 노보를 내고 한국일보 논조를 둘러싼 구성원들의 우려를 종합했다.

▲ 지난 18일 나온 한국일보 노보.

한국일보지부는 김건희 보도와 부산엑스포 1면 기사 등을 예로 들어 정부 비판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노보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한국일보 법조팀 기자는 '도이치 매수 3억대도 약식기소…김건희 최소 40억대 연루에도 檢처분 지연 왜?'란 제목의 기사를 발제했다. 하지만 17일 출고 예정이었던 기사는 21일로 출고가 연기됐고, 다시 22일로 연기됐다. 현장 기자는 1차 연기 이유는 대통령 내외의 해외 순방, 2차 연기 이유는 김건희 여사를 회사 주최 행사에 초청해야 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한국일보지부는 “12매로 승인된 기사는 30판에서 분량이 절반 정도 줄었다. 기사의 핵심인 김 여사 이름은 제목과 부제목에서 모두 빠졌다. 내용도 김 여사에 유리한 부분 위주로 재구성되며 기사의 뉘앙스가 달라졌다”고 했다.

▲ 지난달 22일자 한국일보 기사. 제목에 김건희 여사 이름이 빠졌다.

이후 기사는 수정돼 원안대로 들어갔고 부제에도 '김건희 여사 처분 못한 이유는'이 추가됐으나 제목은 바뀌지 않았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이른바 '조지는 기사'가 아니라 검찰의 사법처리 기준을 분석하는 내용인데도 두 차례나 출고가 미뤄지고 지면 게재 과정에서 과도하게 편집이 이뤄진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부산엑스포 관련 기사가 1면 톱에 배치된 데 이어 2, 3면에 연이어 배치된 것을 놓고도 한국일보지부는 “정부에 우호적인 콘텐츠가 늘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종합지 중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엑스포를 지면에 한 꼭지도 다루지 않았고,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14면과 10면에 각각 한 꼭지로 관련 기사를 게재했다. 정진황 국장은 노보에서 “엑스포는 월드컵, 올림픽만큼이나 국민 사기진작에 도움이 되는 행사라 열흘 전쯤 기획을 지시했다”며 “협찬과도 무관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 지난 3일자 한국일보 1면 기사.

이외에도 편집국 간부가 현장 기자에 정치성향을 물으며 '개딸', '문빠'와 같은 단어를 써가며 비판하거나 기자가 천공 관련 기사로 고발을 당했음에도 논설실에서 사설 등 후속대응을 하지 않은 것도 한국일보 보수화 우려를 심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노보에 따르면 '개딸' 발언을 한 간부는 “기사 근거가 미약하고 야당 의원들 발언이 대부분이어서 이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장난스럽게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국일보지부는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는 발제 단계에서부터 압박이 들어오고 우여곡절 끝에 출고가 되더라도 온라인 제목을 수정하라는 지시에 시달려야 했고, 지면에 실리지 않거나 기사가 축소·굴절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기자들 사이에선 적어도 당분간은 현 정부와 각을 세우는 기획이나 기사를 쓰기 힘들어진 게 아니냐는 자조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했다.

결국 YTN 인수와 같은 구성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 추진되는 상황에도 회사의 소통 노력이 없었다는 것이 불안감을 키우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A기자는 통화에서 “회사 차원에서 인수를 왜 하는지, 어떤 도움이 되는지 설명한 적이 없었다. 너무도 당연히 우리가 인수를 해야 하는 것으로 상정된 것 자체가 구성원들에겐 당혹스러운 것”이라며 “구성원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일인 만큼 이제 정식으로 설명하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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