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구가 만든 장애인 일자리, 장애인 삶에 ‘행복’ 선사하다
보육도우미, 오케스트라 장애인인식개선 강사, 환경미화 등
[서울&] [커버스토리] 보건복지부·서울시·자치구, 580억원 들여 3708개 일자리 마련
일반형·복지일자리는 주로 ‘보조’ 업무
올해부터 ‘요양보호사 보조’ 시범사업
“양질의 일자리 정책·아이디어 필요”
어린이집 원아실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아이도 있고 차분하게 앉아 뭔가를 만드는 아이도 보였다. ‘선생님’이 “뭐 만드는 거야”라고 묻자 아이가 곧바로 손에 든 것을 보여주며 “악어, 엄마 악어”라고 답했다. 다른 아이는 “고래”라고 말한 뒤 옆에 있던 것을 집어 “거북이 여기 있어요”라며 보여줬다.
“거북이가 살 수 있게 만들어줄까? 어디에다 만들 거야?” 선생님이 아이에게 다시 묻자 아이는 장난감 정원 앞을 가리켰다. 아이가 거북이집을 만들자 선생님이 “야, 잘 만들었다”며 칭찬했다. 선생님은 아이가 뭘 원하는지 잘 이해하는 듯 보였다. 21일 오전, 동작구 상도1동 구립예담어린이집 아름드리반(3살반) 모습은 여느 어린이집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를 좋아해서 하게 됐죠.” 박성경(26·발달장애인)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째 이곳에서 ‘보육도우미’로 일하며 월급으로 140여만원을 받는다. 교사 자격증은 없지만, 정식 교사와 2인1조가 돼 함께 아이를 돌본다.
“일상 대화는 할 수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릴 때 다양한 주제로 대화하는 게 힘들어요.” 박씨는 발달장애가 있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아 아이를 돌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박씨는 “행복해서 하는 일”이라며 “아이들이 내 말을 잘 이해하고 따라줘 크게 어려운 일은 없다”고 했다. 오전 11시에는 어린이집 뒷마당에서 아이들, 교사, 학부모가 함께 상추, 고추, 부추 등 여러 모종을 심었다. 이곳에서도 박씨는 능숙하게 아이들 모종 심기를 도왔다. 이상미 예담어린이집 원장은 “박 선생님은 ‘프로 보조’”라고 칭찬했다.
동작구는 구비 4억6200만원을 들여 보육도우미, 사회첫걸음, 직장적응 체험훈련 등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자리 사업을 한다. 여성 발달장애인 일자리인 보육도우미는 2010년 7월 시작해, 올해는 구립어린이집 15곳에서 15명이 근무한다. 발달장애 정도에 따라서 어린이집에서 돌봄보조, 주방보조, 환경미화 등을 담당한다. 1일 5시간(주 25시간) 일하고 월 146만원을 받는다. 사회첫걸음은 복지관이나 자립센터에서 바리스타 등으로 일하는데, 1일 4시간(주 20시간) 근무하고 월 116만원 정도 받는다. 직장적응 체험훈련은 자립센터나 북카페에서 환경정리, 문서파쇄, 우편물 작업 등을 한다. 1일 3시간(주 12시간) 근무하고 월 53만원가량 받는다.
김형수 서울시립발달장애인복지관 직업활동팀 장애인재활상담사는 “발달장애인 보육도우미는 서울 자치구 중에서 동작구가 유일하다”고 했다. 김 상담사는 “성경님은 다른 분들에 비해 인지력이 좋아 보육보조 업무를 한다”고 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김현(28)씨는 2020년부터 금천구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한다. 독산동 금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김씨는 19일 “바이올린 공연을 하는 소원을 이룰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함께 만난 최현홍(20)씨는 “장애인을 보는 편견을 깨고 인식을 바꿀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금천구는 2016년부터 발달장애인 특화 일자리 사업으로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 장애인식개선 강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구비 7200만원을 들여 금천구 내 초등학교와 어린이집, 공공기관, 일반 기업체 등을 방문해 오케스트라 공연과 함께 장애인 인식 개선 활동을 펼친다. 김씨와 최씨를 비롯해 고승환(24), 남우식(32), 박세준(31), 변인섭(30)씨 등 모두 6명이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기타를 연주한다. 지난해까지 125곳에서 326회 장애인식개선 활동을 펼쳤다. 이들은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기 전에 강사로 나서 아이들이 장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을 알려준다. 공연이 끝나면 아이들과 함께 합주하며 친해지는 시간도 가진다. 이들이 받는 월급은 100만원 정도다. 김현씨 어머니 박현주씨는 “연말이면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불안하다”며 “정부에서 지속할 수 있는 안정된 장애인 일자리에 관심을 쏟아주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송욱정(30·염창동)씨는 폴크스바겐 마이스터모터스 강서염창서비스센터에서 2019년 4월부터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한다. 강서구 기쁜우리복지관에서 종이말기, 쇼핑백 제작, 화장품 포장 일을 하다 이곳으로 옮겼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7시간씩 일하고 월 160만원을 받는다. 강서퍼스트잡지원센터에서 만난 송씨 어머니 윤혜련(57)씨는 “처음에는 회사 보내고 걱정했다”며 “지금은 일 잘한다는 소리도 듣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자리라서 다른 엄마들이 부러워한다”고 했다. 윤씨는 “발달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많은 월급은 바라지도 않고 시간 보내고 사회생활 하는 데 만족한다”고 했다. 또한 윤씨는 “아들이 회사 본사가 독일에 있어 독일에 가고 싶어 한다”며 “가족이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강서구는 2019년부터 ‘일자리 약자와 동행사업’을 시작했는데, 송씨가 ‘취업 1호’다. 발달장애인과 직무지원인(잡코치)이 함께 민간기업에서 근무한다. 강서퍼스트잡 지원센터가 맡아서 하는 이 사업을 통해 지난해까지 직업훈련을 받은 66명이 일반 회사에 취업했다. 발달장애인 이해도가 높은 잡코치는 출퇴근과 직장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올해 예산(구비) 2억원을 배정했다.
서울 자치구 대다수는 국비와 시비 지원을 받는 보건복지부 장애인일자리사업을 기본으로 한다. 18살 이상 미취업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줘 사회 참여를 넓히고 소득을 보장하는 사업으로 2007년 시작했다. 일반형(전일제·시간제)과 복지일자리에 더해 올해부터 시범 운영하는 발달장애인 요양보호사 보조 일자리 등이 있다. 일반형은 행정복지센터 등에서 행정도우미로 근무하는 일자리로 전일제와 시간제로 나뉜다. 복지일자리는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에서 사무보조, 다른 장애인 일상생활 지원 등 업무를 맡는다. 자치구 7곳은 올해부터 발달장애인 요양보호사 보조 일자리 사업을 하는데 식사나 이동, 환경미화 등을 담당한다.
올해 서울 자치구 장애인일자리사업은 예산 580억여원에 3708개다. 일반형 전일제 1200개, 일반형 시간제 665개, 복지일자리 1713개, 발달장애인 요양보호사 보조 130개다. 보건복지부(30%), 서울시(35%), 자치구(35%)가 예산을 분담한다. 전일제는 주 5일 40시간 근무하고 월 200여만원, 시간제는 주 20시간 근무하고 월 100여만원, 복지일자리는 주 14시간 근무하고 월 53만여원을 받는다. 발달장애인 요양보호사 보조 일자리는 주 25시간 근무하고 월 120여만원을 받는다.
국비와 시비 외 구비만 들여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하는 자치구는 동작구, 금천구, 강서구, 노원구 정도다. 노원구는 지난 3월 ‘공유서가·녹색환경가꾸미’ 사업을 시작해, 발달장애인 5명이 공원에 있는 공유서가와 주변 환경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낸 ‘2022년 상반기 장애인 경제활동 실태조사’를 보면, 국내 장애인은 258만여 명으로 경제활동 참가율은 38.1%, 고용률 36.4%이다. 전체 인구와 비교하면 경제활동 참가율은 26.8%포인트, 고용률은 26.6%포인트가량 낮다. 이 중 서울시 장애인은 38만3천여 명으로 고용률은 35.5%다. 장애인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저연령에서는 취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이 늘어나는 추세다. 변민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조사통계부장은 “장애인에게 맞는 ‘양질’의 일자리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며 “빅데이터 등 4차산업을 활용하면 변화에 맞는 장애인 1 대 1 맞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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