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 ‘핵 빅딜’ 없었다

박주현 기자 2023. 4. 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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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술핵 배치’ ‘북한 핵공격 시 미국 보복 명문화’ 없어
외신 “尹 자체 핵무장 포기 대가 미국 확장억제 발언권 얻어”
“韓, 핵버튼에 손가락을 올릴 수 있을 때까지 만족하지 않을 것”

일각에서 거론된 ‘한국의 미 전술핵 배치’, ‘북한 핵공격 시 미국 핵 보복 명문화’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되지 않았다. 대신 북핵 위협에 대비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확장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큰 틀에선 기존 정책을 재확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린 국빈 도착행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핵공격 가능성에 대비한 ‘핵협의그룹(NCG·Nuclear Consultative Group)’ 신설 제안 등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워싱턴 선언’을 채택했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확장억제 강화의 구체적인 방안을 두고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공격시 즉각적인 정상 간 협의를 갖기로 했으며 이로써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해 동맹의 모든 전력을 사용한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취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이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핵과 전략무기 운영 계획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전력을 결합한 공동작전을 함께 기획하고 실행하기 위한 방안을 정기적으로 협의할 것”이라며 “그 결과는 양 정상에게 보고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요한 건 밀접한 협업과 협의가 이뤄질 거라는 것”이라며 “한반도에 핵자산을 배치하지는 않겠지만 잠수함 같은 전략적 자산들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이나 ‘한국 미 전술핵 배치’ 의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외신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 포기를 대가로 미국 확장억제에 대한 발언권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핵무장에 대한 ‘빅딜’은 없었던 셈이다. ‘북한의 핵 공격에 미국이 핵으로 보복한다’도 명문화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대한민국에 전술 핵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며 군불을 지폈다.

확장억제는 미국이 핵무기가 없는 동맹국을 핵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개념으로 미국의 핵우산, 재래식 타격 능력 및 미사일 방어 능력과 같은 요소로 이뤄진다.

그 일환으로써 NCG는 미국이 확장억제 계획을 한국에 공유하고 한국이 그 계획 구상 과정에 관여하는 협의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의 핵기획그룹(NPG)와 유사한 성격을 띄고 있으나 기능에 있어 차이가 있다. NPG는 ‘Nuclear Planning Group’의 약자로 말 그대로 기획(Planning)에 초점이 맞춰있다. NCG의‘ Consultative’는 자문 혹은 협의라는 뜻이다.

명칭대로 NPG은 나토 회원국 29개국이 핵무기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참여해 핵 억제력 유지, 핵 정책 개발, 핵 태세 검토 역할을 협의한다. 핵 정책의 전반을 결정하는 협의체다. 또 회원국엔 미국 전술핵이 배치돼 있다.

지난달 국민의힘 주호영 당시 원내대표가 “나토식 핵공유를 강력한 선택지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지만 NCG는 NPG와 달리 전술핵 배치를 하지 않는다.

▮미국 확장억제 정책 재확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워싱턴 선언의 기본 취지는 미국이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약속을 강화하고 향상하는 일련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선언엔 “미국은 ‘핵 태세 보고서’(NPR)의 선언적 정책에 따라 한반도에 대한 모든 가능한 핵무기 사용의 경우 한국과 이를 협의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약속한다”고 명시했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해 10월에 2022년 NPR에 “핵무기가 존재하는 한 핵무기의 근본적인 역할은 미국과 동맹·협력국에 대한 핵 공격 억제”라면서 “미국은 미국이나 동맹·협력국의 핵심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규정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에 대해선 “핵 운용에 대한 아주 높은 기준을 유지하고 동맹과 협력국에 확신을 심어주며 동시에 적의 판단 사고를 복잡하게 한다”고 설명해 놓았다.

이는 핵무기는 매우 제한적 상황에만 사용하며 동맹이 미국의 확장억제 정책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되 미국이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핵무기를 사용할지 적이 판단하기 어렵게 만드는 의도다.

핵무기 사용 여부를 모호하게 유지함으로써 상대방을 교란하는 ‘핵 모호성(Nuclear ambiguity)’을 미국이 계속해서 이어간다는 뜻이다. 일각에서 제기한 ‘북한의 핵 공격에 미국이 핵으로 보복한다’ 명문화 역시 미국의 방침에 막힌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 전술핵 배치는 핵확산방지조약(NPT)에 위배되는 사안이므로 미국에선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국방부가 NPR에 “우방국과 협력국에 주는 확신의 일부는 적의 능력을 떨어뜨리고 제한함으로써 집단적 안보를 개선하기 위해 무기 통제, 핵 비확산 및 핵 위험 경감에 대한 노력을 계속하고 강화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무기 통제, 핵 비확산 및 위험 경감에 다시 한번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NPT는 핵 비보유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핵 보유국이 비보유국에 핵무기를 양여하는 것을 금지한다.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워싱턴 선언으로 미국의 국방정책이 핵무기 중심으로 다시 변화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확장억제는 새로운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전날 브리핑에서 확장억제는 ‘인식(perceptual)’ 요인이 중요하다면서 “미국의 선언적 정책이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갖췄고 필요한 만큼 강력하다고 전적으로 믿지만 김정은의 핵 위협 속에서 사는 한국 국민 일부가 불안해할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언에 담긴 조치는 “사실 한국 정부뿐 아니라 한국민과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이날 “한국 정부가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다시 천명하는 대가로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 미국의 핵무력 사용에 관한 협상에서 오랫동안 추구해온 위상을 얻게 됐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난달 27일 서울역 대합실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국무부 북한담당관을 지낸 싱크탱크 스팀슨 센터의 북한 전문가 조엘 위트는 WSJ에 “올바른 방향이지만 한국 정부와 한국군의 많은 관리는 그들이 (핵)버튼에 손가락을 올릴 수 있을 때까지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날 선언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the Regular Visibility)’을 한층 증진한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미국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더욱 빈번하게 전개하는 것은 물론 이를 더 적극적으로 공개하겠다는 의도까지 담긴 것이다. 이는 전략자산의 노출 빈도를 높여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제력을 높이는 한편 전술핵을 배치하지 않기로 한 데 따른 한국 국민의 안보 불안을 덜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수단으로는 전략핵잠수함(SSBN)의 한국 기항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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