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기소, 대표 실형… 강한 ‘중처법’ 처벌에 재계 긴장
잦은 안전의무위반·사망사고에 하청보다 엄벌
3월말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기소
법조계 “실질적 재해예방 체계 작동여부 중요”
경총 “과도한 처벌로 불확실성 증대… 중처법 개정해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으로 삼표그룹 오너가 기소된 데 이어, 한국제강은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최초로 1심에서 대표이사가 실형을 선고 받았다. 재계에서는 검찰과 법원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실질적인 안전관리체계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성형식 한국제강 대표이사는 지난 26일 창원지법 마산지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성 대표는 2007년부터 현재까지 분할 전 한국제강(현 한국홀딩스) 및 그로부터 분할 설립된 현 한국제강의 경영책임자 겸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 일해왔다.
앞서 지난해 3월 16일 경남 함안의 한국제강에서 철제 방열판 보수 작업을 하던 65세 A씨는 무게 1.2t인 방열판에 왼쪽 다리가 깔렸다. 방열판을 뒤집기 위해 크레인으로 들어올리던 중, 이를 지탱하던 섬유벨트가 끊어지면서 방열판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A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숨졌다.
이에 지난해 11월 한국제강과 성 대표, A씨가 속해 있으면서 한국제강과 도급계약을 체결했던 강백산업의 사업주 B씨가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이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에 따른 업무상 과실로 피해자 A씨를 숨지게 했다는 이유다. 성 대표에게는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하지 않아 A씨가 사망하는 중대산업재해에 이르게 했다는 범죄사실이 더해졌다.
재판부는 성 대표의 동종 전과 등을 이유로 실형을 선고했다. 성 대표의 형량은 피해자가 속해 있으면서 한국제강과 도급계약을 체결했던 강백산업의 사업주가 받은 형량인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보다 무거웠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성 대표가 검찰청·고용노동부와 부산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2010년,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사업장 안전점검에서 안전조치의무 위반 사실이 적발돼 벌금형 처벌을 받은 사실, 2021년 5월 사업장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아 지난 2월 벌금형으로 판결이 확정된 점을 지적했다.
앞서 지난 6일 중대재해처벌법 판결 첫 사례였던 고양시 요양병원 증축 공사 중 하청업체 직원 추락사고는 원청인 온유파트너스 대표이사도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집행유예 3년으로 실형은 면했다.
지난 3월말에는 ‘삼표산업 양주사업소 채석장’ 사건과 관련해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직접 재판에 넘겨지면서 재계에 충격을 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2개월여 만에 기업의 오너가 기소되는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정도원 회장은 지난해 1월 29일 삼표산업 양주시 은현면 도하리 골재 채취장에서 석재 발파를 위해 구멍 뚫기 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토사에 매몰돼 사망한 사고에서 안전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6월 정 회장이 아닌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이사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중대재해법 위반 당사자를 대표이사가 아닌 정 회장으로 새롭게 판단했다.
검찰은 정 회장이 채석산업에 30년간 종사한 전문가이며 사고현장의 위험성을 사전에 인식했고, 안전보건업무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보고받아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한 점, 그룹 핵심사업인 골재 채취 관련 주요사항을 결정해온 점을 들어 경영책임자가 맞는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에게는 정 회장의 지시를 수행하고 경영권 행사를 보좌하는 역할 정도만 해 경영책임자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산업안전보건법 혐의 등을 적용했다.
법무법인 율촌 중대재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각 지역 노동청이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사건 중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은 총 34건에 이른다. 검찰은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이중 두성산업, LDS산업개발, 삼강S&C, 엠텍, 만덕건설 등 14건을 기소했고, 1건은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 현대제철, 동국제강, 쌍용C&E, 세아베스틸, 여천NCC 등에서 발생한 남은 사건들은 여전히 수사중이다.
검찰이 기소한 14건은 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직후 또는 지난해 상반기에 발생한 산업재해로, 사고가 발생한 후 기소까지 8~10개월 정도가 소요된 것으로 분석됐다. 업종별로는 건설업 9건, 제조업 4건, 채굴업 1건이었다. 기소시에 주로 문제가 된 위반 사항은 ‘안전보건 관리책임자의 업무수행평가 기준 마련’(11건), ‘유해·위험요인을 확인, 개선하고 이를 점검하는 절차의 마련’(7건), ‘급박 한 위험이 있을 경우를 대비한 매뉴얼 마련과 점검’(6건) 등이었다.
법조계에서는 “실질적으로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작동하는지 여부가 법적 대응을 위한 측면에서 중요해 보인다”면서 이에 대한 정비를 당부하고 있다. 형식상 최고안전관리 책임자(CSO)를 선임했더라도 경영책임자는 실질적인 사업 및 안전보건사무를 총괄하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고, 안전보건 매뉴얼들을 갖추고 있더라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면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경향이 수사·재판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과도한 처벌로 불확실성이 증대되지 않도록 하루빨리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한국제강 판결에 대해 “현장의 안전보건조치 여부를 직접 관리·감독할 수 없는 대표이사에게 단지 경영책임자라는 신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엄격한 형벌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매우 가혹한 처사”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대표이사 실형 선고로 중처법에 의한 경영리스크가 현실화되었고, 향후에도 유사한 판결이 계속될 경우 기업의 경영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되는 등 산업현장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며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이 더 이상 증대되지 않도록 정부가 하루빨리 중처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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