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역주행에 싱어롱까지…MZ 저격한 '킬링 로맨스'

오보람 2023. 4. 27. 14: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봉 초기 혹평받다 입소문 타고 마니아층 형성
"예측 불가 즐거움…B급 아닌 A급 영화"
'킬링 로맨스' 합창회 현장 [촬영 오보람]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한 번도 난 너를 잊어본 적 없어 / 오직 그대만을 생각했는 걸∼"

26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 3관 스크린에 노래방 화면과 함께 그룹 H.O.T.의 '행복'이 나오자 관객들이 하나둘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눈 감고 그댈 그려요 / 맘속 그댈 찾았죠 / 나를 밝혀주는 빛이 보여 / 영원한 행복을 놓칠 순 없죠"

후렴구 시작과 함께 객석의 소리는 더욱 커졌다. 몇몇 관객은 작게 손뼉을 치고 몸을 흔들기도 했다.

음악 방송 촬영장인가 싶지만, 영화 '킬링 로맨스'에 나오는 화제의 곡을 함께 따라부르는 싱어롱 상영회 현장이다.

'킬링 로맨스' 팬들의 잇따른 요청에 'JOHN NA 좋아단 행복 합창회'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상영회는 260여석이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

이 영화는 이원석 감독이 '남자사용설명서'(2013) 이후 처음 내놓은 작품으로, 은퇴한 톱스타 여래(이하늬 분)가 남편 조나단(이선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렸다.

관객층이 폭넓은 코미디 장르인 데다 탄탄한 주연진을 갖췄지만, 지난 14일 개봉 직후에는 관객의 혹평을 받았다.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와 'B급 감성'이 낯선 일부 관객은 상영 도중 자리를 뜨기도 했다.

CGV가 실제 관람객만을 대상으로 산정하는 영화 평가 점수인 '골든 에그 지수'는 웬만한 졸작에서도 보기 어려운 60%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점차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높이더니 개봉 2주째인 27일 오전 기준 76%까지 올라오며 뒷심을 발휘하는 중이다.

CGV 관계자는 "업계에선 달걀(골든 에그 지수)이 깨졌다가 붙었다고 표현하는데, 이런 경우는 거의 처음 본다"며 "처음에 지수가 높다가도 점차 내려가는 게 대부분이지만 '킬링 로맨스'는 완전히 반대"라고 말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업계에선 입소문의 힘이 '킬링 로맨스'의 평점 역주행을 만들어냈다고 보고 있다.

개봉 초기 영화를 재밌게 본 일부 관객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지인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이런 추천을 받아 관람한 관객이 또다시 주위에 홍보하면서 마니아층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관객들이 코로나19로 극장과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이후 '검증된 영화'를 보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킬링 로맨스'는 취향이 비슷한 집단끼리 공유하고 관람하면서 막판 평점이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렇게 형성된 마니아층은 이른바 '전투력' 역시 강해 영화 화제성 형성에 일조한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영화 홍보 글을 적극적으로 게시하고 n차 관람을 하는 식이다.

이 감독은 26일 싱어롱 상영회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 도중 '킬링 로맨스' 추천 글을 매일 같이 트위터에 올려 온라인에서 관심을 끈 이용자를 찾기도 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킬링 로맨스' 주 관객층은 가장 활발하게 온라인 활동을 하는 MZ세대"라며 "이 세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충성도와 애착이 강해 적극적으로 흥행을 도우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롯데시네마에 따르면 '킬링 로맨스' 전체 관객 중 52.0%가 20·30대였으며 67.5%가 여성이었다. 마니아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상영회 관객은 20·30대가 84%, 여성이 92.5%에 달했다.

영화 '킬링 로맨스' 속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킬링 로맨스' 팬들은 이 영화의 매력으로 신선함을 가장 먼저 꼽는다.

2회차 관람을 앞두고 있다는 직장인 김모(28) 씨는 "요즘 나오는 한국 상업영화는 다 거기서 거기고 새로울 게 없었는데 '킬링 로맨스'는 한시도 예측이 안 될 만큼 신선했다"며 "동화와 환상을 왔다 갔다 하는 구성도 현실에서 탈피하는 느낌을 줘 좋았다"고 말했다.

친구 추천을 받고 멀리 있는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본 이모(30)씨는 "평소 영화를 볼 때 논리를 따지게 되는데 '킬링 로맨스'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도 극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며 "다들 B급 영화라고 하는데 실은 A급 영화"라고 강조했다.

페미니즘 요소가 들어간 점도 젊은 여성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싱어롱 상영회에서 만난 대학생 이수민(24) 씨는 "여래를 보면서 연극 '인형의 집'의 노라가 생각났다. 남편 앞에서 마냥 주눅 들거나 굴복하지 않고 주체성을 발휘하는 코믹한 캐릭터가 마음에 와닿았다"고 했다.

rambo@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