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 중·러 반발 의식해 수위 조절했나…중국 거명 않고 우크라 군사지원 논의없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갖고 발표한 공동성명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의식해 일정 부분 수위를 조절한 흔적이 엿보인다. 중국을 겨냥해 인도·태평양 전역에서의 협력 확대를 강조했지만, 명시적으로 중국과 대만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한국의 폭 넓은 지원 제공을 약속하면서도 살상무기 지원 등 러시아를 더 자극할만한 구체적인 내용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를 강하게 견제하는 내용을 담되 반발의 빌미는 줄이는 형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채택한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서 “역내 안보와 번영의 필수 요소로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5월 한·미 정상회담과 지난해 5월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에서 이미 등장했던 표현으로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윤 대통령이 방미 전 로이터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대만해협 상황에 대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중국의 강한 반발을 샀던 것과 비교하면 수위를 낮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대신 공동성명에는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 매립지역의 군사화 및 강압적 행위를 포함해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인도·태평양에서의 현상 변경 문제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은 대만 해협 문제이지만, 두 정상은 대만을 거론하지 않은 채 남중국해에 초점을 맞춰 내용을 두루뭉술하게 표현했고,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도 않았다.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한·미 정상 공동성명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 중요성이 거론된 것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대만 문제의 실제를 똑바로 인식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대만 문제에서 언행에 신중을 기하고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점점 멀리 가지 말라”고 반응했다. 이어 “대만 문제는 중국 내정이며 핵심이익 중 핵심으로 어떤 외부 세력의 간섭도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며 “대만 문제의 진정한 현황은 양안(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에 속한다는 것이며 두 개의 중국을 만들려는 외부 세력이야말로 대만해협의 현황을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앞서 로이터통신의 윤 대통령 인터뷰 보도 직후에는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거나 “불에 타 죽을 것”이라는 등 보다 강경한 언사를 동원해 반발했었다.
한·미가 대만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수위를 조절했지만 중국을 자극할만한 다른 내용도 성명에 담겼다. 양국은 “경제적 강압과 외국기업과 관련된 불투명한 수단의 사용을 포함한 경제적 영향력의 유해한 활용에 대해 깊은 우려를 공유하고 경제적 강압에 대응하기 위해 유사입장국과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명시적으로 중국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경제력을 앞세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대중 봉쇄 시도에 한국이 보조를 맞추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양국은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해서도 “국가안보를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해외투자심사 및 수출통제 댱국 간 협력 심화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이미 일본과 네덜란드가 동참을 시사한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도 디커플링에 동참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한·미 양국이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협의 그룹(NCG)을 설립하기로 한 것도 중국이 자국에 대한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여 반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워싱턴 선언 발표 하루 이틀 전 중국에 대략 사전 설명을 했다”며 “선언이 중국과 직접적인 충돌 요인이 아니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동맹 차원의 대비 방안이기에 중국은 이를 우려하거나 문제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겠다는 취지로 사전 브리핑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오닝 대변인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미국이 지정학적 사리사욕을 위해 지역 안보를 고려하지 않고 한반도 문제를 확대하고 긴장을 조성했다”면서 “미국의 방법은 핵 비확산 체계를 파괴해 다른 나라의 전략적 이익을 해치고 한반도 긴장을 격화시켜 지역의 평화·안정을 파괴하는 것이며 한반도 비핵화 목표에 배치되는 것으로 중국은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미 공동성명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입장도 담겼지만 한국의 무기 지원 등 러시아의 극단적 반발을 불러올 내용까지는 가지 않았다. 공동성명은 “한·미 양국은 주권과 영토 보전을 수호하는 우크라이나와 함께하며 양 정상은 러시아의 행위를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했다”며 “양국은 전력 생산과 송전을 확대하고 주요 기반시설을 재건하기 위한 것으로 포함해 필수적인 정치·안보·인도·경제적 지원 제공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해 러시아의 반발을 샀던 데서 한 발 물러선 것으로 평가된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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