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수상한 경영 행보 셋
(시사저널=송응철 기자)
최근 영풍그룹 핵심 계열사인 고려아연에서 수상한 경영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의 해외 기업을 5800억원대에 사들이는가 하면, 기존 사업과 무관한 사모펀드에 4100억원대 자금을 투입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까지 오너 간 경영권 분쟁을 겪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이 모든 일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 최전선에 나선 이후 벌어졌다.
①전자폐기물 재활용 기업 인수가격 적정성 논란
비철금속 제련 부문 세계 1위 기업이자 영풍그룹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고려아연은 지난해 7월 미국 법인 페달포인트홀딩스를 통해 미국의 전자폐기물 재활용 기업인 이그니오홀딩스 지분 73%를 약 4324억원에 인수했다. 이그니오홀딩스는 전자폐기물에서 금·은·동·팔라듐 등 유가금속으로 제련될 수 있는 중간재를 추출하는 기술을 보유한 도시광산 기업이다. 이그니오홀딩스 인수는 최윤범 회장이 주도했다. 그가 지난해 고려아연의 미래사업 로드맵으로 제시한 '트로이카 드라이브(삼두마차)' 달성을 위한 결정이었다.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신재생 에너지 및 그린수소 사업' '자원순환 사업' '이차전지 소재 사업' 등으로 구성됐다. 고려아연은 이그니오홀딩스의 전자폐기물 공급망을 통해 동박 생산 원료 수급과 이차전지 폐배터리 자원 확보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고려아연은 같은 해 11월 이그니오홀딩스의 잔여 지분 27%도 사들였다. 인수가는 1495억원이었다. 총 5819억원을 들여 이그니오홀딩스 지분 100%를 확보한 셈이다.
문제는 이그니오홀딩스의 재무 상황이다. 지난해 7월 기준 이그니오홀딩스의 자본금과 자본총계가 각각 106억원과 109억원이고, 637억원의 매출과 3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당시 업계에서는 인수금액을 두고 의문이 나왔다. 사업에 중요한 인허가권을 보유한 기업의 경우 실제 기업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매출액과 당기순익이 각각 637억원과 32억원에 불과한 기업을 5819억원에 인수한 것은 과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그니오홀딩스 잔여 지분을 인수한 지난해 11월에는 인수가격 적정성에 대한 궁금증이 한층 커졌다. 자본금과 자본총계가 각각 1100만원과 –18억원으로,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28억원과 –47억원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기업을 5819억원에 인수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고려아연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공시한 이그니오홀딩스 재무 상황은 2021회계연도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며 "회계법인의 실사를 거쳐 지난해 7월 공시한 재무 상황이 더욱 최근 상황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②'시세조종 의혹' 사모펀드에 4133억원 투자
최 회장은 고려아연의 수상한 투자도 진두지휘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신생 사모펀드(PEF)인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용 중인 6개 펀드 가운데 4개 펀드에 총 4133억원을 투자했다. 기존 사업 영역과 무관한 분야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최 회장은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회장, 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사장과의 인연을 바탕으로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 고려아연은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용하는 코리아그로스제1호 자금의 94.64%(1616억원), 저스티스제1호의 99.2%(482억원), 탠저린제1호의 99.4%(940억원), 그레이제1호의 99.6%(1096억원) 등을 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영하는 전체 자금은 4700억원에서 56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중 고려아연의 자금이 74%에서 88%에 달하는 셈이다. 업계에서 원아시아파트너스는 사실상 고려아연의 소유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눈여겨볼 대목은 원아시아파트너스는 최근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을 벌인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있다는 점이다. 원아시아파트너스는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 경쟁이 한창이던 지난 2월 SM엔터테인먼트 주식을 고가에 대규모 매입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검찰은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카카오와 공모,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 주식 매수에 나선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원아시아파트너스에 대한 투자와 관련해서는 달리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③'장씨·최씨 한 지붕 두 가족' 경영권 분쟁 주도
최근까지 이어진 고려아연 오너 일가 간 경영권 분쟁도 최 회장이 촉발했다. 영풍그룹은 그동안 장씨와 최씨 집안이 공동경영을 해왔다. 장씨 집안이 전자계열을, 최씨 집안이 비전자계열을 각각 맡아 경영하는 식이었다. 고려아연의 경우는 장씨 집안이 소유하고 최씨 집안이 경영을 맡는 구조로 운영됐다.
양쪽 집안은 1949년 창립 이래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그동안 이렇다 할 분쟁을 겪지 않았다. 이런 공동경영 원칙에 금이 간 건 지난해 8월 고려아연 이사회가 한화그룹 미국 계열사인 한화H2에너지USA를 대상으로 제3자 유상증자를 결의하면서다. 당시 한화H2에너지USA는 4717억5050만원을 투자해 고려아연 지분 5%를 취득했다. 최 회장과 미국에서 동문수학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힘을 보탰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를 기점으로 양쪽 집안은 고려아연 지분 매입 경쟁을 벌였다.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일가는 자신들이 지배하는 코리아써키트와 테라닉스, 에이치씨 등 계열사를 동원해 고려아연 지분 0.58%를 매입했다. 여기에 맞서 최 회장은 고려아연 자사주 6.02%를 활용해 우군을 늘려갔다. 고려아연 자사주 1.2%를 한화그룹 지주사인 한화 자사주 7.3%와 교환했고, LG화학에는 자사주 1.97%를 넘기고 이 회사 자사주 0.47%를 받았다. 또 글로벌 원자재 트레이딩 기업 트라피구라(1.5%)와 한국투자증권(0.8%), 모건스탠리(0.5%) 등 투자사에 자사주를 매각했다. 자사주가 타사로 넘어가면 의결권이 다시 생긴다는 점을 이용해 여러 기업을 우군으로 확보한 셈이다.
두 집안의 지분 매입 경쟁은 올해까지도 이어졌다. 최 회장은 지난 2월 계열사인 유미개발(0.51%)과 해주 최씨 종중(0.17%)까지 동원해 지분 확대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10%포인트 이상이던 장씨 집안(32.23%)와 최씨 집안(28.82%)의 지분율 격차는 3.41%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두 집안의 경영권 분쟁은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 기간을 기점으로 휴전에 들어간 상태다. 장 고문은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 회장의 회장 취임에 찬성하고 이사 선임과 관련해서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여기에 최 회장도 영풍정밀 주주총회에서 장 고문을 기타 비상무이사로 선임하면서 시장에 경영권 분쟁이 종식됐다는 시그널을 던졌다. 이와 관련해 고려아연 관계자는 "과거 경영권 분쟁과 관련된 주변의 우려가 많았지만 올해 주주총회는 별다른 문제 없이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누구?
M&A 변호사 출신…능력 인정받은 3세 경영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과 유중근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2남1녀 중 차남이다. 고(故) 최기호 고려아연 창업주의 손자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미국 애머스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뉴욕 소재 로펌인 크레바스 스웨인 앤 무어에서 인수합병(M&A) 전문변호사로 활동했다. 고려아연에 합류한 건 2007년 온산제련소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입사하면서다.
이후 그는 페루 광산회사(ICM 파차파키) 사장과 호주 아연제련소인 선메탈(SMC) 사장 등 해외법인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후 2019년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어 2020년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회장에 올랐다.
최 회장의 고속 승진 배경은 시장에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고려아연 사장으로 취임한 2019년부터 제련 수수료 급락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세계 경기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3년 연속 실적을 개선했다. 2021년에는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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