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표류기’ 밤섬에 사람이 살았다… 1년에 한 번 밤섬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메트로 돋보기]

전혜진 기자 2023. 4. 27. 14:1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강 밤섬 가운데에 놓인 비석. 글자 일부가 보이지 않는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조선 초부터 배를 만들고 농사지으며 주민이 거주하였으나 한강 개발로 68년 2월 62가구가…’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역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도착한 밤섬. 안쪽으로 들어가자 이 같은 문구가 적힌 비석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비석에 새겨진 문구가 일부 땅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가 비석 밑동의 흙을 손으로 파내자 ‘창전동으로 이주함’이라는 글자가 보이며 문장이 완성됐습니다.

무인도 밤섬에 세워진 이 비석의 정체는 뭘까요. 또 왜 이렇게 땅속에 묻혀 있는 걸까요?

● 8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모이는 사람들

한강 하류의 철새도래지인 밤섬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됩니다. 생태 보전 가치가 높아 1999년 서울시 생태경관보전지역, 2012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됐습니다. 이날 기자는 밤섬을 관리하는 서울시 관계자들의 협조로 밤섬에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한강 여의나루 선착장에서 3.15t 순찰선을 타고 5분 정도 나가니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밤섬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서강대교 아래 배를 대고 밤섬에 첫발을 내딛자 경쾌한 새소리와 무릎까지 오는 갈대와 억새가 반겼습니다. 2009년 영화 ‘김씨표류기’의 배경이 되기도 한 밤섬은 듣던 대로 인적이 전혀 없는 무인도 그 자체였습니다.

10일 오후 서울시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서강대교 아래 밤섬에 정착한 순찰선에서 내려 밤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그러나 밤섬이 처음부터 무인도였던 건 아닙니다. 과거 밤섬은 주민들이 약초를 기르고 배를 지으며 살아가는 유인도였습니다. 조선왕조가 서울을 도읍지로 정한 후 본격적으로 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했고, 약초와 뽕나무를 심어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조선 전기에는 밤섬의 뽕나무가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수백 년 동안 ‘배 짓는 마을’이기도 했습니다. 밤섬 사람들의 배 짓는 솜씨는 한강 하류의 강화도, 서해까지도 널리 알려졌다고 합니다. 특히 조선 후기 한강 밤섬 주변에 마포진, 양화진, 서강진 등 나루터가 발전하면서 밤섬은 한강을 다니는 배들을 만드는 제조 공장이자 수리 공장이 됐습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가장 배 목수가 많았을 때는 전체 100여 가구 중 50여 가구가 배를 짓기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이전 밤섬의 모습. 서울시 제공


그러면 밤섬 주민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요? 1968년 2월 정부가 1차 한강 종합개발을 시작하면서 한강의 유속을 빠르게 하고, 밤섬의 토사를 여의도 둑에 쌓을 석재로 이용하고자 밤섬을 폭파하면서 밤섬의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습니다. 밤섬에 거주하던 62가구 443명의 주민은 밤섬 폭파 이후 밤섬이 내려다보이는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으로 집단 이주했습니다. 2차 한강 개발 이후로는 한강에서 자유롭게 배를 띄울 수 없게 됐고, 수많은 한강 다리들이 완공돼 한강에서 더 이상 배가 필요하지 않게 됐습니다. 이에 당시 밤섬의 배 목수들은 생계를 위해 건축 목수로 전업했다고 합니다.

밤섬은 폭파로 사라졌지만 다시 섬으로 부활했습니다. 한강이 토사를 계속 실어 나르고 퇴적하면서 폭파됐던 섬이 재생된 것입니다. 밤섬 주민들 역시 몸은 고향을 떠났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매년 8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서울시 협조와 감독하에 이곳을 찾아 귀향제를 지내는 이유입니다. 1년에 단 하루지만, 이곳에 한때 사람이 살았음을 알려주는 ‘밤섬 주민 옛 생활터’ 비석이 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길 바라봅니다.

● 점점 커지고 있는 밤섬

비석의 밑동이 묻혀 글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건 상류에서 흘러온 토사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장마철 같은 때는 상류에서 쓰레기가 밤섬에 떠내려오는 경우가 많아 주기적으로 정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지난해 태풍 힌남노가 왔을 때는 밤섬 일부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9월 항공에서 촬영한 한강 밤섬 사진. 서울시 제공

그래서일까요. 밤섬은 퇴적작용으로 인해 지속해서 크기가 커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밤섬은 섬 가운데로 흐르는 샛강을 기준으로 윗밤섬과 아랫밤섬으로 나뉘는데, 하류 쪽인 아랫밤섬의 크기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1966년 항공사진으로 처음 측정한 밤섬 면적은 4만5684㎡이었지만 2013년엔 27만9531㎡로 약 6배가 커졌고, 2018년엔 28만4381㎡로 5년 만에 4850㎡가 더 커졌습니다.

5년마다 밤섬의 크기를 재는 서울시는 올해도 측정에 나섰습니다. 서울시는 최근 드론 측정을 마쳤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밤섬이 2018년에 비해 얼마나 커졌을지 궁금해집니다. 매, 흰꼬리수리 등 멸종위기종과 황조롱이 등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밤섬이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건강한 생태환경을 보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