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가 지속돼야 하는 이유를 물으신다면
아이즈 ize 김형석(영화 평론가)
영화제의 시간이다. 이번 주에 개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4.27~5.6)를 시작으로 5월엔 디아스포라영화제(5.19~5.23)가 인천에서 열리고, 무주산골영화제(6.2~6.6)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가 이어진다. 여기에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7.10~7.16), 제천국제음악영화제(8.10~8.15), 서울국제여성영화제(8.24~8.30),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9.14~21), 부산국제영화제(10.4~10.13), 울주산악영화제(10.20~10.29) 그리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서울독립영화제까지 시네필들의 1년은 매달 이어지는 영화제들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외에도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테마로 열리는 수많은 작은 영화제와 상영회들까지 합하면, 영화제는 일상이나 다름없다.
올해도 영화제의 주기가 시작된 것이 기쁘긴 하지만, 사실 작년에 한국의 '영화제 생태계'는 큰 위협을 받았다. 적잖은 영화제들이 내홍을 겪었고, 사라진 영화제들도 꽤 된다. 먼저 강원도에서 강릉국제영화제와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대한 지자체(강릉시, 강원도)의 지원이 중단되었다. 각각 3회와 4회를 치른 두 영화제의 단명은 영화계에 적잖은 충격이었다. 충북무예영화제도 3회 만에 막을 내렸고, 미래의 거장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수많은 단편영화를 제작 지원했던 울산국제영화제는 2021년에 1회만 치르고 끝났다. 17년 동안 이어졌던 제주영화제와, 1995년에 시작되어 20년 넘게 사랑 받았던 시카프(SICAF.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도 2022년에 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수많은 '영화제의 죽음'을 목격했던 한 해였다.
작년에 영화제들이 겪었던 수난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가장 큰 감정은 무기력함이었다. 영화제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인 불가능한 행사다. 지자체 지원이 끊어지면 한국의 그 어떤 영화제도 중단될 수밖에 없는데, 중요한 건 지자체장의 독단적 결정으로 지원 중단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며, 평창과 강릉과 충북과 울산의 영화제는 그렇게 없어졌다. 그 어떤 법적 장치도 없다. 지자체장이 예산 편성을 하지 않으면 영화제는 없어진다. 그 과정에서 공청회 같은 지역 의견 수렴 과정이나, 의회의 인준 같은 건 없다. 작년에 끝날 것 같았던 이런 일들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2017년부터 지역의 젊은 영화인들이 만들어가던 원주옥상영화제는 올해 시의 불승인으로 도내 영화제 지원사업에 신청하지 못했다. 원주시의 결정이다. 지금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을 헐고 그곳에 주차장과 복합문화시설을 지으려 하는데, 그 극장은 한국에서 단관극장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 된 건축물이며, 2020년 재개관 이후 원주옥상영화제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 행사가 치러진 곳이다. 이런 문화적 가치가 아무런 공론화 과정도 없이 파괴되는 것이며, 영화제 역시 항상 그런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23년에 영화제를 접하는 심정은, 매년 반복되는 즐거운 루틴을 만난다는 기쁜 마음은 아니다. 어쩌면 우린 지금 영화제라는 이벤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위중한 시기를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자체의 문화적 무지에 대해 지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것은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지금은 영화제의 생존을 위해 방어 논리를 만들고 향후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물어야 한다. 우리에게 영화제는 왜 필요한가. 한국 사회에서 영화제를 '설득'하고 '주장'하기 위해선, 이 질문에 대해 칼 같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사회적 합의와 여론이 형성되어야 영화제는 살아남고 우리 사회에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가꿔온 지역의 문화 유산이 지자체장 개인의 결정에 의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을 막기 위해, 일단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당장 법제화는 힘들더라도, 영화제는 그 가치를 인정 받고 관객과 최대한 밀착하기 위해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해야 한다. 영화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가장 탄탄한 지지자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지자체장에 의해 없어진 작년의 영화제들이 모두 5년 미만의 짧은 역사를 지닌, 아직 저변이 탄탄히 다져지지 못한 영화제들이었다는 사실은 그 근거다. 없애도 큰 반발 없을 표적들이었고, 만약 대중의 저항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영화제의 가시적 생산성을 내세워선 안 된다. 영화제는 지자체 홍보의 수단일 수도 있고,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 행사일 수도 있고, 많은 관객들이 찾아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는 이벤트일 수 있지만, 그 무엇보다 '플랫폼'이다. 어떤 지자체에 괜찮은 영화제 하나가 있으면, 관련되어 만들어지는 문화적 효과는 매우 크다. 특히 영화제를 통해 발굴되고 지원받는 영화인이 만들어낼 미래 가치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영화제는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축제이며, 그런 의미에서 가장 생산적인 문화 활동이다. 영화제가 필요한 건 그런 이유다.
코로나 이후 점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틀어 플랫폼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지금, 영화제만큼 그 복합적인 요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면서도 사람들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할 수 있는 대중적 이벤트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K-무비와 K-드라마의 위세는, 1990년대부터 영화제를 통해 쌓인 내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K-콘텐츠'의 영광이 지속되길 바란다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플랫폼은 영화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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