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 출신 지휘 거장’ 헤레베허 “악보의 내면 연주하는 게 가장 중요”

이강은 2023. 4. 27. 13: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차르트 ‘주피터’·베토벤 ‘영웅’ 들고 내한 공연

“지휘자는 무엇보다 분석적인 사고력이 있어야 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지휘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정신의학을) 공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 크레디아 제공
다음달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 공연을 하는 고(古)음악의 거장 필리프 헤레베허(76)는 최근 세계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정신과 의사 경험이 음악 활동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음악가들은 보통 개방적이고 지적·감정적으로 풍부하다”면서 “지휘자로서 오케스트라가 저마다의 음악을 연주하도록 지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간의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며 정신과 의사 경험이 지휘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벨기에 출신인 헤레베허는 의사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인간 본성에 관심이 많아 정신의학을 전공했고 의대생이던 1980년 고음악 앙상블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를 창단하기도 했다. 정신과 의사를 하다 흥미가 잃자 음악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는 옛날 음악을 그 시대의 악기와 기법으로 연주하는 고음악 전문 지휘자로 음악사적으로 타당하고 철저한 분석을 거친 음악을 추구한다. 

초창기에는 바흐를 중심으로 바로크 음악을 연주했지만 음악적 지평을 넓히고 싶어지면서 마흔 살 무렵부터 고음악만 고집하지 않고 고전·낭만주의에 이어 현대음악까지 관심 영역을 확장했다. 

헤레베허는 고음악의 핵심이 ‘명료성’에 있다고 했다. “시대악기(곡이 탄생한 시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것은 음악을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인데 음악적으로는 명료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와 내 동료들의 비전과 목표는 구시대적이지 않은 것이었어요.”이라며 고음악이 옛 음악을 단순히 그대로 재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 크레디아 제공
1991년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랑스 출신이 약 30%이고, 유럽 다른 지역과 미국, 한국, 일본 출신 등 다국적 단원으로 구성된 이 오케스트라는 주로 베토벤부터 슈만, 브람스, 브루크너, 말러 등 낭만주의 음악에 주력한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가 걸어온 음악적 여정은 중요한 도전들로 특징지을 수 있어요. 오케스트라 창단 30주년을 맞아 브루노 발터가 1911년 뮌헨에서 초연을 지휘했을 당시의 오케스트라 색채로 ‘말러 - 대지의 노래’를 연주했는데, 이는 제가 품어왔던 중요한 음악적 꿈 중 하나였습니다.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 대곡들이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될 때, 여러분은 이 음악들이 중세 말에서 20세기 사이에 지어진 다성음악의 아치로서 고대 음악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조화롭게 연주하고 악보대로 연주하는 것, 악보에 담긴 정신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지휘할 때 중요한 3가지로 꼽았다. “그 중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합니다. 악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다른 견해를 가진 음악가들이 있어요. 결국 오케스트라는 합심해(다른 견해를 조율해) 악보의 내면을 연주해야 합니다.”

지휘자 필리프 헤레베허. 크레디아 제공
6년 만에 내한하는 헤레베허가 5월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20일 부천아트센터에서 한국 관객에 들려줄 곡은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와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이다. 두 곡 모두 대위법(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 기법)이 집약된 작품으로 당시 작곡 양식의 한계를 초월한 곡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주피터’는 모차르트가 수많은 오페라를 작곡하며 발전시킨 극에 대한 재능과 대위법에 대한 재능이 결합해 탄생한 작품”이라며 “‘영웅’에서는 대위법 작곡 기법이 점점 더 발전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두 곡 모두 긍정과 희망의 정서로 고난과 시련을 딛고 일어나는 ‘인간의 승리’를 담고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도 비슷하죠. 또 한국 젊은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와 열정으로 인해 에너지 가득했던 공연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라요. 이번 공연도 기대가 됩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