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미디어는 자살률을 증가시켰을까?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최근 포털을 채우고 있는 뉴스들을 살펴보면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학교폭력의 실태를 공개했지만, 도리어 피해자가 극단적인 시도를 선택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를 본 사람들도 극단적 시도로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무대를 빛내던 아이돌 가수가 사망하면서 추모 공간이 조성되기도 했죠.
오늘 마부뉴스에서는 조금은 무거운 주제인 '자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볼 지점이 있어서 주제를 준비해 봤어요. 오늘 마부뉴스가 독자 여러분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 이번 레터에서 부득이하게 특정 사건을 언급하게 될 경우, 자살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대신 객관적인 사망 사실에 초점을 둔 표현으로 대체합니다. 다만 자살률과 같이 통계적으로 관련 수치를 이야기할 때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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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중 압도적 1위
2021년 총 사망자 수는 31만 7,680명입니다. 1983년부터 사망원인통계를 집계한 이래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중 고의적 자해, 즉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 3,352명으로 집계됐어요. 하루에 평균적으로 36.6명이 극단적 시도로 사망했다고 볼 수 있겠죠. 전체 사망 원인 중 자살의 순위는 암, 심장 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에 이어 5위입니다. 상당히 심각하죠?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비율(자살률)을 살펴보면 26.0명인데, 이 수치는 고혈압의 사망률(12.1명)과 패혈증의 사망률(12.5명)을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자살의 심각성이 더 눈에 띕니다. 연령별로 사망원인을 살펴보면 10대부터 30대까지는 자살이 사망원인 1위거든요. 10대 사망자의 43.7%, 20대 사망자의 56.8%, 30대 사망자의 40.6%가 극단적 시도로 사망했습니다. 과거 데이터와 함께 살펴보면 더 씁쓸해집니다. 11년 전인 2010년 통계에서도 10~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거든요. 20년 전 통계를 봐야, 사망원인에서 자살의 순위가 내려갑니다. 참고로 2000년 10대와 2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운수 사고이고 30대는 암이었습니다. 당시 자살은 10대와 30대에선 3위, 20대에선 2위를 기록했죠.
이번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어느 수준인지 살펴볼게요.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압도적인 수치로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 그래프는 표준 인구로 계산해서 OECD 회원국들의 자살률을 나타낸 건데,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24.1명으로 압도적 1위입니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인 11.1명의 2배 가까운 수치죠.
Q. 남성과 여성 중 자살률이 더 높은 성별은?
성별로 살펴보면 우리나라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2.2배 높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자살시도자를 살펴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1.8배 더 많죠. 전문가들은 이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를 자살 수단의 치명률의 차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남성 자살률보다 여성 자살률이 낮다고 해서 그 무게감이 덜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우리나라 여성 자살률은 타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거든요.
자살은 공중 보건의 위기
2018년에 진행된 자살 실태조사를 보면 자살에 대한 금기적 태도가 이전 조사 때보다 더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낫고, 다른 사람의 자살에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죠. 특히 "자살은 말하지 않아야 하는 주제이다"라는 질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절반에 가까운 48.5%나 됐습니다. 반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30.6%에 불과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부뉴스가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간 자살 사망자들의 유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자살 사망자의 94%가 사망 전에 경고 신호를 보내왔습니다. 자살 시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5.8%가 도움을 얻으려고 자살을 시도했다고 답변했죠.
자살은 주변의 관심과 도움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자살은 공중 보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죠. 공중 보건이라는 건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질병을 예방한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책임으로만 두는 게 아니라 주변 사회가 나서서, 또는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자살로부터 보호하고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 시작은 정확한 실태 파악과 통계 작성일 겁니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지 제대로 된 정책과 제도가 나올 테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마부뉴스의 이번 레터를 바라봐 주길 바라겠습니다.
정부에서는 이렇게 조사된 통계와 실태 자료를 바탕으로 2004년 제1차 자살예방기본대책을 수립하면서 자살을 막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했습니다. 뒤이어 2009년엔 2차, 2016년 3차 대책을 마련했고,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이 진행될 예정이죠. 예방 대책에 발맞춰서 2006년엔 지하철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했고, 2011년엔 맹독성 농약에 대한 생산을 금지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자살률은 2011년을 정점으로 찍고 줄어들었어요.
자살 예방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
한 번 실제 데이터로 미디어가 자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에서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린 그래프인데, 연구팀에선 2005년부터 2011년 사이에 발생한 유명인 자살 사건을 대상으로 관련 보도가 나간 후 한 달 동안 일반인들의 자살률을 계산해 봤어요. 유명인이 사망하기 직전 한 달 평균치와 비교해 보니 평균 18%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죠.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2012년 이전까지는 한 달간 일반인들의 자살 건수가 상승하는 추세가 뚜렷합니다.
우리나라 사례에서만 베르테르 효과가 분석된 건 아닙니다. 과거 장국영의 사망 이후를 분석한 논문 자료도 있습니다. 당시 장국영의 사망 이후 홍콩에서 발생한 자살이 이전 5년 평균보다 56% 증가하기도 했죠. 아직까지도 일부 뉴스에서는 자살 사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표현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과거엔 더 심했으니까요... 통제되지 않는 보도로 제2의, 제3의 자살 시도자를 양산했었던 상황이 데이터로 증명되는 거죠.
모방 자살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에선 자살 예방을 위해 자살예방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엔 언론사들이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정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죠. 잘못된 자살보도로 사람들 죽게 할 수 있기에, 자살보도 방식을 바꿔 소중한 생명을 구하려고 한 겁니다. 그래프를 보면 2012년 3월 자살예방법 시행 이후, 2013년 9월 자살보도 권고기준 시행 이후 일평균 자살 건수가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미디어가 노력한다면 자살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셈이죠. 이런 효과를 파파게노 효과라고 합니다.
사회적 책임에 손 놓는 SNS…?
독자 여러분, 혹시 넷플릭스의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드라마 본 적 있나요? 청소년의 자살로 시작되는 시리즈인지라 당연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죠.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방영된 이후 자살 관련된 검색량이 19%나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방영 3개월 뒤 미국 청소년 자살률은 무려 30%나 증가했죠. 극단적 시도를 하는 모습이 드라마 영상에 그대로 들어가면서 자살 예방 단체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고요. 결국 넷플릭스는 해당 영상을 편집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OTT 접근성이 극도로 높아진 오늘날, 자살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 때에는 충분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OTT 뿐 아니라 SNS의 상황도 돌아봐야 할 겁니다. SNS에 쓰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타인에 대한 질투, 박탈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굳이 자세한 연구 결과를 꺼내오지 않더라도 아마 SNS를 하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우울한 느낌, 독자 여러분들도 받아본 적 있을 겁니다. 거기에 유사한 콘텐츠를 제공해 주는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우울한 글과 영상, 사진을 보던 이용자에겐 계속해서 비슷한 콘텐츠를 제공해 주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힘든 사람에게 '당신이 좋아할 만한 우울증 콘텐츠'를 추천해 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혜민 기자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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