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함' 정재훈이 LCK 스프링 통해 확인한 '용기'

이한빛 2023. 4. 2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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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함' 정재훈은 2022 LCK CL 스프링 정규시즌 중 3월에 데뷔전을 치렀고, 5월에 1군으로 콜업됐다. '호잇' 류호성과 주전 경쟁을 해야 했던 그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고, 올 스프링에는 '준' 윤세준과 주전 자리를 두고 경합을 펼쳐야 했다. 하지만 정규 시즌 중반에 윤세준이 연이어 선발로 나오며 실전 감각을 쌓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런 정재훈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스크림조차 하지 못한 상황에서 정규 시즌 7주차 리브 샌드박스전에 선발 출장하게 된 것. '태윤' 김태윤을 훌륭하게 보좌한 그는 238일 만에 매치승을 거뒀고, 경기가 끝난 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스프링이 끝난 후 만난 정재훈은 이번 스프링을 통해 아직 프로를 포기하기엔 이르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제 LCK 1군 선수로서 두 번째 스플릿을 보낸 정재훈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에 앞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광동 프릭스에서 서포터를 맡고 있는 '모함' 정재훈이라고 합니다.

스프링 끝나고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희가 솔로 랭크 10위를 찍어야 휴가를 갈 수 있었거든요. 2주 동안 계속 솔로 랭크만 했고, 부산에 있는 본가에서 일주일 정도 보내고 다시 복귀해서 솔로 랭크를 하고 있습니다. 2위까지 찍었다가 지금은 좀 떨어졌어요.

본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처음에 오버워치 프로게이머를 준비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때 제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그때 프로게이머는 자퇴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고등학교는 나와야 된다고 하셔서 무산 됐었죠. 솔직히 그때 오버워치도 저한테 잘 맞았어요. 했으면 정말 잘했을 것 같아요. 집에는 컴퓨터가 없어서 PC방에서 했는데 랭커였거든요. 아쉬웠죠.

만약 오버워치 프로게이머로 데뷔했다면 어느 정도까지 올라갔을 것 같나요
탱커나 힐러를 했었어서 류제홍 같은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었는데도 못하게 되어서 굉장히 아쉬웠겠어요
좀 아쉽긴 했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결국 LoL 프로게이머로 데뷔하게 되었어요. 어떻게 프로게이머를 준비하게 됐나요
제가 원래 LoL을 잘 안 했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어요. 그때 탑으로 했고, 탑 라이너로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수능 전까지 탑을 하는데 랭크가 마스터에서 못 올라가더라고요. 그래서 서포터로 방송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샤코 서포터로 방송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수능 끝나고 잘 되면 스트리머를 하고, 안 되면 군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브리온 아카데미 테스트를 보게 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광동 프릭스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제가 20살 때 브리온 아카데미를 나오고 스피어에서 대회 3개 정도 우승을 했어요. 대회 우승하고 솔로 랭크 점수도 상위에 있으니까 다른 2군 팀에서도 연락이 많이 왔죠. 5~6개 팀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 중 맨 처음 연락을 준 팀이 광동 프릭스여서 오게 되었습니다.

'모함'이란 닉네임은 어떻게 짓게 된건가요
브리온에 있을 때 2군에 있던 분 중 한 분이 '정훈이의 모험'이라는 닉네임을 쓰고 계셨어요. 제가 3군일 때 그 분이 되게 잘해서 '재훈이의 모험'이라고 하고 싶었어요. 근데 누가 비슷한 닉네임을 쓰고 있었고 따라는 하고 싶더라고요. 닉네임 추천도 받아봤는데 이상한 것만 추천해주셔서 결국 '모함'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닉네임들을 추천 받았나요
버팔로나 케첩 같은 것들이었어요.

LCK CL에서 1군 콜업까지 굉장히 짧은 시간이 걸렸어요. 본인의 어떤 점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하시나요
CL에서도 뛴 경기 숫자는 많지 않았어요. 부족한 점도 많았는데 피지컬과 라인전을 좋게 봐주셨고, 이틀 동안 진행된 6번의 테스트에서 피지컬적으로 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일찍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프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언을 많이 받았다고 알고 있어요. '울프' 이재완에게 DM을 보내기도 했다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요
아마 2군에 있었을 때였을 거예요. 서브로 있어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스크림을 보거나 연습하는 것밖에 없었어서 동기 부여가 필요했어요. 제가 서포터를 시작한 게 '울프' 이재완님의 매드 무비를 보면서였거든요. 그래서 '이 분한테 조언을 얻고 싶다'는 생각으로 DM을 보냈는데, 엄청 길게 조언해주셔서 힘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강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나요
아무리 연습을 해도 부족한 부분에 대한 개선이 잘 되지 않아 막막하다고 이야기했어요. 라인전은 되는데 운영적인 부분에서 힘겨워 했거든요. 울프님은 거기에 "피지컬적인 문제는 극복이 어렵지만 이겨냈으니 마음 천천히 먹어가면서 조금씩 하면 잘 될 것이다. 너무 급하게만 생각하지 마라"라든가 "팀과 이야기를 많이 하라"라는 팁을 주셨어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땐 제가 딱히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솔직히 안 읽어주실 줄 알았거든요. 장문의 조언을 보고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한테 그런 응원을 받기 쉽지 않잖아요.

서포터로의 전향을 결심한 것도 울프님 덕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어느 부분이 좋았나요
제가 본 울프님은 기본기가 탄탄해요. 피지컬도 뛰어나지만 기본기가 탄탄하다고 느꼈어요. 제가 피지컬적인 부분은 따라갈 수 있는데 아직 기본기가 많이 부족한 거 같아서 보면서 고쳐가려고 했죠.
1군에는 빨리 올라왔지만 주전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나 압박은 없었을까요
빠른 시간에 1군에 올라와서 욕심도 많이 났지만, 경기를 몇 번 뛰면서 제가 부족하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지난해 '호잇' 류호성 선수의 기본기가 탄탄해 보면서 배울 게 많았어요. '준' 윤세준 형도 그렇고요. 물론 주전 경쟁 자체는 압박이 되지만 서로 배워갈 게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올 스프링에는 한 달 정도 출전을 못했어요. 답답하진 않았나요
한 달 동안 연습을 못한 채 갑자기 출전하게 됐을 때는 부담감이 많이 들었어요. 이전까지 김대호 감독님이 저한테 눈길 한 번 안 주셨거든요. 제게 관심이 별로 없으셨는데, 솔로 랭크도 30위 안에 들면서 감독님께 끊임없이 어필을 했죠. 연습 과정이 좋아서 출전하기도 했다가 한 달 동안 스크림을 아예 안 하고 또 나오게 되었어요. 압박감이 들었지만 최병철 코치님이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라고 응원해 주셔서 괜찮았던 것 같아요.

오랜만에 출전한 경기에서 승리하고 눈물을 흘렸죠. 개인적으로는 238일 만의 매치승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1군으로 빠르게 콜업이 되긴 했지만 보여준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제 고질적인 문제는 이니시 챔피언을 잡았을 때 고립된 시야가 있는 것과 긴장을 많이 한다는 것이에요. 스크림 할 때는 잘 하는데 경기 때는 그게 나오질 않아서 많이 속상했어요. 작년부터 고치려고 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과연 이 자리에 있는 게 맞나', '많이 부족한데 이렇게 자리만 채우고 있는 게 맞나', '올해가 끝나면 그저 그런 선수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등을 했어요. 그때 경기도 갑자기 나와서 피지컬적으로 이기긴 했지만, 적어도 프로로서 할 수 있고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느꼈었어요. 오랜만의 승리이기도 해서 많이 울컥했었습니다.

이후엔 4연승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본인의 어떤 점이 달라졌기에 팀 연승의 한 축으로 활약할 수 있었을까요
브리온전에서 출전하게 됐을 때 감독님이 저 빼고 나머지 4명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리브 샌드박스를 상대로 다시 출전하게 됐을 땐 네 명 다 거의 완성이 됐고 제가 1인분만 하면 이길 수 있도록 세팅해놨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말 그대로 제가 해야 될 것, 딱 1인분만 했는데 팀원들이 더 잘해줘서 이긴 것 같아요. 솔직히 누가 나왔어도 이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제가 나와서 이겼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김대호 감독님의 피드백이 직설적인 부분이 있는데 본인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제가 지금까지 뭔가 쓴 말을 들으면서 잘한 적이 없어요. 좋은 말만 듣고 자라서 와닿는 게 없었거든요. 쓴 조언도 자주 해주시고 좋은 말도 한 번씩 해주셔서 이젠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런데 솔로 랭크 아이디는 '씨맥당신은틀렸어'더라고요
휴가 내기를 했는데 그때 제 솔로 랭크 점수가 600점이었어요. 10등 컷이 1300점이었을 텐데 감독님이 저한테 휴가 못 갈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일주일 휴가는 보장되어 있었지만 감독님이 10위는 못 찍을 거 같으니 미리 휴가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불독' 티영보다 10위를 더 빨리 찍었어요. 감독님한테 바로 메신저로 "씨맥 당신은 틀렸어"라고 보내고 그걸 닉네음으로까지 쓰게 됐습니다.
이번 스프링을 통해 1차적으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스프링 스플릿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옛날부터 하고 싶은 건 되게 많았는데 쉽게 포기하곤 했어요. 프로게이머도 운으로 됐다고 생각해서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단 마음도 들었죠. 이젠 쉽게 포기해야 된다는 생각은 아예 들지 않아요. 이번 스프링에서 나름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 이걸 토대로 피지컬적인 선수로만 기억되는 게 아닌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LCK에서 활동하면서 인상 깊었던 서포터 선수가 있다면 누군가요
두 명이 있는데 '케리아' 류민석과 '켈린' 김형규예요. 류민석 선수는 피지컬로 누르는 압력이 강하고 LoL 자체를 잘한다는 느낌이에요. 김형규 선수는 서포터로서 기본기가 탄탄하고요. 두 선수의 강점이 달라서 배울 게 많습니다.

서머에서 이루고 싶은 팀적 목표와 개인적 목표가 있다면 무언인가요
우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거예요. 저도 작년 1군 콜업 이후로 플레이오프를 한 번도 못 가봤거든요. 우승이라고 하면 너무 거짓말이니까 일단 플레이오프 진출을 첫 번째 목표로 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스프링에는 좋은 모습과 안 좋은 모습을 둘 다 보여드렸어요. 광동 프릭스의 일원으로서 이번 스프링에선 그저 그런 서포터였지만, 이번 서머에는 더 노력해서 꼭 플레이오프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사진=박상진 기자 vallen@fomos.co.kr
이한빛 venat@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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