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음식예능 홍수시대, 그들이 살아남는 비법
장사·캠핑·부루마블 등 소재 다양
‘퇴근후 한끼’ 화제성·시청률 두토끼
차별성 없는 예능, 시청자들 외면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여행 예능들이 쏟아지고 있다. 팬데믹 환경에서는 여행 콘텐츠가 대리만족 수준에 그쳤지만, 이젠 스페인, 멕시코, 모로코, 이탈리아, 바하마 등 다양한 국가로 떠나는 체험형 여행 예능들이 이어지고 있다.
여행 예능은 ‘1박2일’이라는 지상파 기본형에서 여행 크리에이터의 유튜브 콘텐츠까지 실로 종류가 다양하다. 심지어 영어와 해외여행, 문화 관련 주제를 다루는 유튜브 ‘영알남YAN’과도 경쟁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여행 크리에이터들에게 여행 콘텐츠의 기본은 예능이 아니라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EBS ‘세계테마기행’ 등과 같은 교양물이다. 워낙 탄탄하게 구성된 이 두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행에 관한 콘텐츠의 꿈을 키워왔다고 하는 크리에이터들이 많다. 현재 방송 중이거나 최근 방송이 끝난 여행, 음식 등과 관련된 예능은 무려 십 수편에 이를 정도다.
tvN은 사장 이서진을 중심으로 멕시코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며 분식 메뉴를 내놓은 ‘서진이네’와 ‘부산촌놈 in 시드니’, ‘아주 사적인 동남아’, ‘텐트 밖은 유럽-스페인 편’, ‘장사천재 백사장’ 등을 방송하고 있다.
JTBC도 ‘뭉뜬리턴즈’, ‘한국인의 식판’, ‘글로벌 퇴슐랭, 퇴근 후 한끼’ 등을 방송 중이거나 방송했고, KBS는 ‘배틀트립2’, ‘걸어서 환장 속으로’가 한창 방송 중이다.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SBS ‘수학 없는 수학여행’, ENA ‘지구마불 세계여행’, 채널S는 ‘다시 갈 지도’도 여행을 기반으로 하는 예능이다.
사실 이렇게 여행 프로그램이 쏟아지다 보니 시청자들의 선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프로그램들도 속속 나온다. 이제 시청률은 TV 뿐 아니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 등 수많은 플랫폼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어 대다수의 정량적 성적표가 신통치 않다. 이제 예능인으로 예능을 구성해 시청률을 확보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화제성과 의미가 수반된 콘텐츠들은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퇴근후 한끼’다. ‘퇴근 후 뭘 먹을까’에서 출발하는 ‘퇴근후 한끼’는 여행예능은 아니지만, 여행 예능이나 여행 정보프로그램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여행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먹는 것’이다. ‘퇴근후 한끼’는 오사카와 서울, 후쿠오카와 부산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며 퇴근 후 직장인들이 찾는 그곳의 맛집을 소개한다. 여기서 출출함을 느끼며 퇴근하는 사람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들어가는 식당은 여행 풍속도나 다름 없다. 인상깊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도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아저씨 박동훈(이선균 분)의 퇴근 길이 자주 묘사됐다. 여행하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이런 것이다. 피곤한 몸이 특정 장소 방문과 음식을 먹는 것으로 ‘힐링’되는 것이다.
유튜브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TV’를 운영하는 마츠다 아키히로와 정준하가 후쿠오카 중심지 텐진을 벗어나 조용한 주택가인 이마이즈미에서 튀김 전문 요리(덴푸라)를 먹는 모습에서 그런 모습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퇴근후 한끼’는 사람(인생)과 음식, 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4부작 파일럿으로 종영한 사실이 아쉬울 정도다. 현실 직장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로 사람 냄새가 나고, 더불어 ‘찐 로컬 맛집’들도 소개되면 여행 예능으로도 손색이 없다.
덴푸라의 어원은 포르투갈어다.16세기 중엽 선교를 위해 나가사키항으로 들어온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사순절(Têmpora, 템포라)이나 사계재일(Quatuor Tempora, 쿠아투오르 템포라)에는 일정기간 동안은 육류를 섭취할 수 없어 채소를 튀겨먹었다.
다행히 에도(도쿄)에는 유채꽃이 많아 식용류가 풍부해 두껍게 튀김옷을 입힐 수 있었다. 일본 발음으로 덴푸라라고 하는 이 튀김은 일본의 대표요리가 됐다. 그러니까 나가사키는 덴푸라의 발상지다. 고소하고 바삭한 튀김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날라간다.
사순절 등 금육일에 육류나 별다른 음식의 섭취 없이 헛배를 부르게 하는 먹거리중 하나가 맥주다. 그래서 특히 독일에서는 맥주의 양조는 오래전부터 수도원을 중심으로 이뤄져 ‘액체 빵’의 기능을 수행해왔다.
‘텐트 밖은 유럽-스페인편’은 조진웅, 최원영, 박명훈, 권율의 좌충우돌 캠핑 도전기가 그려졌다. 같은 소속사 연예인이 많아 서로 친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캠핑을 하는 내내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는 조진웅과 멤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멀티 플레이어 최원영, 새싹 캠퍼이지만 한없이 긍정적인 박명훈, 40세로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누구보다 듬직한 막내 권율까지 캐릭터적으로도 흥미롭다.
‘텐트 밖은 유럽’이 호텔 대신 캠핑장, 기차 대신 렌터카, 식당 대신 현지 마트를 이용하여 세상 자유로운 방식으로 유럽을 여행하는 캠핑 예능이라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다. 스페인편도 바로셀로나에서 시작해 시에나네바다 산맥과 그라나다까지 광활한 자연을 보는 즐거움이 만만치 않았다. 다만 계속 장소를 옮기고 이동하면서 비·눈 오고, 바람 부는 장면의 반복은 지루함을 주기도 했다. 유해진 등 원년 멤버들이 복귀하며 오는 5월 11일 시작하는 노르웨이 편에서는 이런 점들이 다소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지구마불 세계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 크리에이터 3대장으로 불리는 빠니보틀, 원지, 곽튜브가 직접 설계한 부루마불 게임으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여행은 결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주사위를 던져 여행지를 선정한다는 자체가 ‘무작정 즉흥 여행기’다.
하지만 그런 돌발변수들에 대응해 나가는 이들 3대장의 대처법 역시 훌륭했다. 때로는 뻔뻔함도 필요했다. 무계획, 급이동, 노(No) 예약 여행, 한마디로 우여곡절 여행의 진수를 잘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계속 여행을 다니는, 여행지에서 또 다른 여행지를 가는 반복이 피곤함을 주기도 한다.
여행지는 많이 보여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원지가 갈라파고스의 이구아나를 보여주고, 빠니보틀이 바하마의 리조트와 돼지섬을 가는 것도 충분히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투 머치’한 부분이 있다. 여행에서도 균형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장사천재 백사장’은 외식 경영 전문가 백종원이 과연 해외에서도 성공적으로 밥 장사를 할 수 있을 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다. 제작진이 백종원을 외국 아무 곳이나 떨어뜨려 놓는 식이어서 ‘백종원 어드밴티지’가 작동하기 힘들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지역인 모로코 마라케시의 야시장에서 백종원이 불리함을 극복하고 장사에 성공했고, 나폴리에서는 3개의 상권을 분석하는 모습 등에서 알찬 내용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시청자에게는 맛집 선정에 대한 여행 꿀팁이 되기도 한다. 한식 불모지인 모로코 야시장에서 불고기 버거와 갈비탕을 팔다 민원이 들어와 장사가 중단된 사태, 지도상 논란이 있는 국경 표시 등은 대중들의 외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키워 향후 여행에도 좋은 교훈을 준다.
드라마도 여행을 소재로 한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가 곧 편성될 예정이다. 인생에서 한 번도 센터였던 적 없는 아이돌 출신 여행 리포터가 의뢰 받은 여행들을 대신해주며 삶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힐링 트립 드라마로, 공승연과 유준상이 캐스팅됐다. 이처럼 여행은 예능, 드라마 할 것 없이 방송 콘텐츠의 최대 소재가 됐지만, 차별성이 없다면 잊혀질 수밖에 없다.
서병기 선임기자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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