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포핀스’ 속 뱅크런, 아이울음에서 촉발된 예금 인출러시 [Biz&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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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과 마이클 남매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아야 할 어린이들이다. 하지만 은행원인 아빠는 아이들을 엄격하게만 대하고, 엄마는 사회 운동에 바빠 아이들을 신경 쓸 틈이 없다. 이 가족은 마법을 쓰는 유모 메리 포핀스(배우 줄리 앤드루스)의 도움으로 행복을 되찾는다.
로버트 스티븐슨 감독의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Mary Poppins·1964)는 흔히 ‘어린이용 영화’로 분류된다. 하지만 개봉 당시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수상하며 명작으로 인정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예금을 둘러싼 경제 현상도 담고 있다.
아이들은 아빠 직장인 은행에 견학 가면서 동전으로 모이를 사서 공원의 새들에게 주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은행장이 “새에게 모이를 주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은행에 예금하면 아프리카 철도와 나일강의 댐과 전 세계 여객선에 투자돼 복리로 불어난단다”고 설득한다. 아이들 이름으로 예금하겠다며 은행장은 동전을 강제로 가져가려고 한다.
마이클은 “내 돈 돌려줘!”라며 울부짖는다. 은행에서 이 모습을 본 한 고객이 “예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건가”라고 외친다. 은행장에게 돈을 돌려달라며 우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사람들은 “내 돈부터 찾아야겠네”라면서 모두 달려간다. 당황한 창구 직원은 문을 걸어잠근다. 고전적인 뱅크런의 모습이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뱅크런이 한국에서 일어나면 예금 인출 속도가 미국의 100배일 것”이라며 경계감을 나타냈다. 영화 메리 포핀스 상황에 대입해 보자.
첫째, 마이클이 예금을 안 하겠다며 돈을 돌려달라고 울부짖은 것을 인출 거절이라고 하는 건 가짜 뉴스다. 하지만 예금 인출 러시는 뉴스의 진위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가짜 뉴스가 돌발성으로 인해 더 빨리 퍼질 수도 있다.
둘째, 영화에서 인출이 막혔다는 소문은 은행 안팎의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확산됐다. 지금은 정보가 모바일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거리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전달된다.
셋째, 과거에 공포에 빠진 사람들은 먼저 예금을 인출하기 위해 말 그대로 달려갔다. 디지털 뱅킹 시대에는 누구보다 빨리 접속해서 계좌 이체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이번 실리콘밸리 은행 사태에서는 은행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 없었고, 언론은 쓸 만한 사진을 건질 수 없었다.
한국은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나라다. 인터넷과 메신저를 통한 실시간 정보 확산과 디지털 뱅킹 비율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예금 인출 속도에 대한 이 총재의 경고는 의미심장하다. 이제는 중앙은행이 건전성·유동성 규제와 예금보험제도를 넘어 ‘가짜 뉴스 확산 방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공연 예약부터 세일 상품 주문까지 광클릭 경쟁에 너무나 익숙한 국민이다. 지금은 ‘뱅크런’이 아닌 ‘뱅크 광클’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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