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 문화 영토 개척한 이주민…'천의 얼굴' 가야를 만나다
일본 유적서 출토된 260여 점 처음 한자리에…"가야 문화의 정체성 주목"
(김해=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땅이 협소하기가 여뀌 잎과 같지만 수려하고 기이하다.…이곳에 의탁해 강토(疆土)를 개척해서 마침내 좋은 곳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느냐."
역사서 '삼국유사'에 따르면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은 궁궐터를 정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방의 산세를 보고 그가 선택한 곳은 옛 김해만.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일대가 모두 물에 잠겨 있던 이곳에서 수로왕은 바다로 눈길을 돌린다. '물의 길' 시작이다.
거친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 새로운 땅에서 문화와 역사를 일궈낸 가야를 조명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김해박물관은 이달 28일부터 가야누리 3층 기획전시실에서 일본 규슈국립박물관, 후쿠오카현과 함께 여는 특별전 '바다를 건넌 가야인'을 선보인다.
고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잇는 중요한 축이었던 가야를 조명한 자리다.
가야의 흔적이 새겨진 보물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 '합천 옥전 M3호분 출토 고리자루 큰 칼 일괄' 등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출토 유물 총 113건 284점을 소개한다.
개막에 앞서 지난 26일 찾은 전시장은 파도 물결이 넘실대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건 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 선대회장 유족이 기증한 '배 모양 토기'다. 앞에서 봤을 때 영문자 '브이'(V) 형태에 가까운 배는 거친 바다를 건너는 데 적합했으리라 여겨진다.
가야 이주민의 모습을 본뜬 조형물, 이른바 하니와(埴輪)는 그 자체로 시선을 끈다.
지바현 야마쿠라 1호분에서 나온 이 유물은 옷차림새, 자태로 봤을 때 가야 이주민으로 추정된다고 박물관은 설명했다.
신광철 국립김해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상의 끈을 묶은 방식과 소매, 끝이 위로 올라온 신발 등을 가리키며 "당시 일본인이 입던 복장과는 다른 것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전시는 가야의 국제적 교류 활동을 보여주는 대표 유물 4가지를 소개하며 시작된다.
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바람개비 모양 청동기, 김해 대성동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솥, 전북 남원에서 출토된 닭 머리 모양 청자 항아리, 투명한 빛깔의 유리잔 등 가야로 유입된 외래계 문물을 볼 수 있다.
전시의 핵심은 단연 가야인이 일본 열도에 남긴 발자취를 살펴보는 '바다를 건넌 이주민' 영역이다.
신 학예연구사는 "가야의 국제 교류 활동을 보여주는 유물은 주로 가야 유적에서 나온 게 많았으나, 일본 열도 곳곳에서 확인되는 관련 유물 260여 점을 한곳에 모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가야인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배를 새긴 토기, 철제 갑옷과 덩이쇠, 나무 따비 등 다양한 유물을 볼 수 있다.
5세기 무렵 시토미야키타 유적에서 나온 이동식 부뚜막과 부뚜막용 시루 등은 가야인이 전파한 토기 제작 기술, 요리법 변화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유물이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시장 한편에는 일본 고분 유적에서 나온 소 모양과 말 모양 하니와도 눈길을 끈다.
신 학예연구사는 "하니와는 주로 제사를 지내는 무덤 주변에 둘러서 설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내에서도 소 하니와는 거의 없다는 게 학계 의견"이라고 말했다.
전시의 마지막 주제는 '천의 얼굴'을 가진 가야인이다.
넓적한 판 위에 '엑스'(X) 자 문양을 점선으로 교차해 새긴 금동관, 화려한 금귀걸이, 섬세한 금속공예 기법을 보여주는 큰 칼 등을 보여주며 장인, 전사, 뱃사람, 상인 등 가야인의 다양한 면모를 되짚는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일본 순회 전시의 마지막이다. 가야라는 주제를 각 박물관이 어떻게 다뤘는지가 흥미롭다.
양성혁 학예연구실장은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은 가야 통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규슈박물관에서는 여기에 도래인(度來人) 이야기를 더했다. 김해에서는 가야 문화의 정체성이 핵심 주제"라고 설명했다.
이정근 관장은 전시를 '가야의 귀환'이라 언급하며 "이 땅에 있었던 가야 사람, 그리고 그들의 문화가 일본에 영향을 주고 순회 전시를 거치고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 관장은 "과거 동아시아에는 가야인에 의한 한류 열풍이 불었던 셈"이라며 "가야사뿐 아니라 가야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그 발자취를 하나씩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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