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특별법 2년간 적용... 생계 곤란 피해자 월 62만 원 지원
세제, 신용·디딤돌 대출 지원
4억 한도 낙찰가 100% 대출
LH 저렴한 값에 20년간 임대도
경매 끝난 피해자도 혜택 받아
전세사기 피해자는 향후 2년 간 거주하던 집이 경매에 나오면 우선 매수하는 권리를 갖게 된다. 매수를 원치 않을 경우 공공이 사들여 저렴한 값에 임대로 거주할 수 있다. 피해자를 위한 대출 규제도 대폭 완화되고, 생계가 곤란한 경우 생계비도 지원받을 수 있다. 경·공매가 끝난 피해자도 혜택 대상에 포함된다.
국토부, 위원회 설치해 피해자 여부 판단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전세사기 피해 특별법 및 지원방안'을 27일 발표했다. 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예상되는 5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공포 후 즉시 시행되는 특별법은 임대차 계약 기간을 고려해 시행 후 2년 간 유효하다.
지원 대상 요건은 다소 까다롭다. ①대항력(임대차의 내용을 주장할 수 있는 법률상 힘)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②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③면적ㆍ보증금 등을 고려한 서민 임차주택 ④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⑤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 ⑥보증금 상당액이 미반환될 우려 등 6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 집주인이 집값이 떨어져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일반적인 역전세 집 임차인은 지원받지 못한다.
국토교통부는 민관합동 전문가가 모인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를 설치해 피해자 여부를 결정한다. 피해자가 지원을 신청하면 30일 내로 시·도가 기본요건을 조사, 확인한 뒤 위원회가 심의·의결한다. 이후 한 달 내로 국토부가 피해자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기초조사와 병행해 위원회 직권조사도 가능하다. 특별한 사유가 있을 시 15일 이내로 1회 연장 가능하다. 신청 후 75일 안에는 피해자 여부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이의신청 시 국토부는 20일 내로 재심의해 결정해야 한다.
정부는 "경매 절차가 시작되지 않았더라도 국가가 강제 집행할 권리를 증빙하는 집행권원이 있다면 피해자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면적, 보증금 기준은 현재 전세보증금 3억 원, 전용 85㎡ 이하를 고려 중으로 정부는 법 공포 후 한 달 내에 시행령을 통해 기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경계선 효과 때문에 억울하게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피해지원위원회가 탄력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설명했다.
경매 낙찰 시 우선매수권 부여... 공공임대도 가능
정부는 특별법에 피해자가 살고 있는 집을 경매 시 낙찰받을 수 있는 방안을 담았다. 피해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해 가장 먼저 최고가 낙찰액으로 낙찰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현재는 경매 신청자만 경매를 유예하거나 정지할 수 있으나, 특별법이 통과되면 피해자가 직접 경매 유예, 정지를 신청할 수 있다. 기간은 정지한 다음날부터 최대 1년까지다. 자금을 마련하는 등 피해자가 경매를 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는 셈이다.
우선매수권을 쓰는 건 ①입찰 전 피해자가 매수권을 실행하겠다고 법원에 신고서를 제출하고, 입찰에 나온 최고가 낙찰액을 본 뒤 매수를 결정하는 방법과 ②입찰날 최고가 낙찰액을 확인하고 우선매수신고서를 내 낙찰받는 방법도 있다. 매수를 안하고 물건이 유찰되면 피해자는 횟수와 상관없이 우선매수 신고서를 다시 낼 수 있다. 단, 낙찰가 하락을 목적으로 우선매수권을 악용할 경우를 대비해 공유자는 1회만 신청 가능하도록 했다.
임대인의 체납 세금이 많을 경우 경매를 진행할 수 없었던 피해자에게도 길이 열린다. 세금 징수 권리인 선순위 조세채권을 임대인 소유 주택 모두에 분배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만약 100억 원이 체납된 임대인 소유 주택 1,000채가 경매에 부쳐지면, 지금은 100억 원을 걷을 때까지 우선 경매되는 집들의 낙찰금액을 먼저 징수했다. 결국 채권자에게 돈이 돌아가지 않은 집들은 경매 절차를 밟지 못했다. 이젠 100억 원을 집주인 소유 주택마다 나눠 1,000만 원씩만 징수하게 된다. 더 많은 임차인이 경·공매를 신청할 수 있을뿐더러 배당금도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정부는 법 공포 후 한 달 내로 배분 기준에 관한 대통령령을 만들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여력이 안 돼 기존에 살던 집을 낙찰받고 싶지 않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해 임대로 살 수 있다. LH는 집을 낙찰받은 뒤 시세 대비 30~50%로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는 매입임대를 통해 피해자에게 살던 집을 제공할 방침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일반적인 매입임대와 달리 소득이나 자산요건을 고려하지 않고 모두 입주자격을 부여한다. 만일 낙찰가나 주택상태 등에 따라 LH가 매입하지 못할 경우, 인근 지역 유사 공공임대에 우선 입주할 수 있게끔 한다.
세제 지원도 투입한다. 임차인이 기존 임차주택 낙찰 시 등록면허세뿐만 아니라 200만 원 한도로 취득세가 면제되고, 3년간 전용 60㎡는 50%, 60㎡ 초과는 25%의 재산세가 감면된다. 아울러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가 최대 1년간 지방세 납부기한 연장 및 징수, 고지, 체납처분 유예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치할 예정이다.
1년간 대출 규제도 대폭 완화
가계대출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경매를 통해 해당 주택을 낙찰받을 경우, 대출한도 4억 원 이내에서 낙찰가 100%를 대출받을 수 있다. 경매가 아닌 일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엔 비규제지역에 한해 집값의 8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당국은 담보인정비율(LTV)을 높여도 소득·상환능력을 따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대출 문턱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DSR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 규제 완화는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되고 필요시 연장된다.
정책금융지원도 추가된다. 우선 디딤돌대출을 이용할 경우, 기존 최우대 요건인 신혼부부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고 최대 거치기간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된다. 대출금리는 1.85~2.7%에 한도는 4억 원이고 소득 요건은 7,000만 원 이하다.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할 경우엔 우대금리 0.4%포인트를 적용해 금리가 3.65%(저소득청년층은 3.55%)까지 낮아진다. 아울러 최대 3년간 거치기간이 제공되고, 원금의 30%까지 만기 일시상환이 가능하다.
생계 유지가 곤란한 피해자에겐 자금 지원도 병행된다. 재난 상황 발생 시 지원하는 긴급복지 제도를 전세사기 피해자에게도 적용하는 것이다. 1인 가구 기준 소득 월 156만 원, 재산 3억1,000만 원(대도시), 금융재산 600만 원 이하 피해자라면 생계비 월 62만 원에 300만 원 이내의 의료비, 월 40만 원(대도시)의 주거비가 지원된다. 또 개인신용평점 하위 20%, 기초수급자·차상위계층, 근로장려금 해당자는 최대 2,000만 원까지 3% 금리의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경·공매가 끝난 사람들도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혜택이 적용된다. 특별법 시행 2년 내 경·공매가 종료되고, 경매가 완료된 시점에 피해자 인정요건을 모두 충족했다면 공공임대 우선입주, 금융지원, 긴급복지, 신용대출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단, 특별법 시행기간 중 신청한 자만 대상에 해당된다.
정부는 추가로 지원센터에 가기 어렵거나 피해지원을 신청하는 법을 몰라서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동형 상담버스를 늘리고 주민센터 내 상담부스를 설치할 계획이다. 또 법률, 심리 전문상담인력을 200명 더 확충할 방침이다. 정부는 전세사기 기획조사 대상을 현재 9,000건에서 하반기 4만 건으로 대폭 확대하고, 특정경제범죄법에 규정을 신설해 전세사기 범죄 가중처벌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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