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에 빠진 美 부채한도 협상, 치킨게임 돌입

오현우 2023. 4. 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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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美 하원서 공화당이 발의한 예산안 통과
예산 지출 줄이고 지출 증가율 1%로 고정하는 법안
백악관 "디폴트 위기 줄이려면 조건없이 감액해야"
피치 레이팅스는 부도 위기 계속되면 신용등급 강등 고려
디폴트 위기에 미 국채 시장도 요동쳐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부채한도를 상향하는 조건으로 정부 지출을 삭감하는 내용의 공화당 예산안이 27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을 통과했다. 반면 조건 없는 증액을 요구해 온 백악관은 거부권을 쓸 전망이다. 부채한도를 두고 양당의 갈등이 더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날 미 하원에서 공화당이 내놓은 부채한도 인상 법안이 찬성 217대 반대 215로 통과됐다. 공화당 소속 캐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표결 직후 "공화당이 부채한도를 인상했다"며 "백악관의 행동력 부재로 미국 경제가 혼란에 빠졌다"고 했다.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현재 31조 4000억 달러로 설정된 부채 한도를 1조 5000억 달러(약 2010조원) 인상하는 대신 예산 지출 규모를 2022년 수준으로 낮추고 지출 증가율을 1%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재생 에너지에 대한 일부 세제 혜택을 철폐하고, 일부 빈곤 퇴치 프로그램에 대한 규정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상원은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작다. 조건 없는 증액을 촉구한 백악관은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게 되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카린 장 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된 것에 대해 "공화당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하기 위해선 조건 없이 즉각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건 없는 증액을 재차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월가에서는 부채 한도 협상이 정치적 수렁에 빠지게 되자 치킨게임(겁쟁이 게임)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하지 않을 경우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뜻이다.

브레켄리지캐피털어드바이저의 아담 스턴 애널리스트는 "지금 미국 경제는 '캐치 22(진퇴양난)'과 비슷하다"며 "금융 시장에서 변동성이 지금보다 더 커지게 되면 그제야 정치권이 해결에 집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기 국채 수요가 증폭된 건 미 연방정부의 자금 고갈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미국 재무부 금고가 고갈되는 시점인 'X-데이트'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세수 부진과 부채 수준을 감안하면 당초 예상 시점인 7~9월보다 2개월 일찍 현금을 소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국적 신용평가사 피치레이팅스도 미국의 디폴트를 경고했다. 피치레이팅스는 미국이 부채 한도를 제때 증액하지 못하면 '제한적 채무 불이행(RD)'을 부여할 전망이다. RD 등급은 특정 재무 위험에 처해 채무를 불이행한 경우를 뜻한다.

피치레이팅스는 "X-데이트를 앞두고 디폴트 위험이 이전보다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오면 신용등급도 바뀔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AAA 등급은 부정적 감시 등급으로 전환해 추가 강등 조치가 고려될 것"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부정적 감시 등급으로 지정되면 3개월 이내에 강등될 확률이 50%에 달한다.

부채한도 협상이 난항을 겪자 국채 시장이 요동쳤다. 25일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연 3.406%까지 내려앉았다. 퍼스트리퍼블릭 주가가 50% 넘게 하락하며 은행 위기가 재발할 거란 우려가 증폭됐다. 국채에 수요가 쏠렸다는 분석이다.

다음 날 하원에서 공화당 부채한도 법안이 통과되자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50bp(1bp=0.01%포인트) 넘게 치솟으며 연 3.45%를 찍고 소폭 하락했다. 26일 오후 10시 기준으로는 연 3.435%에 거래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 가치는 하락한다.

전문가들은 디폴트 위기가 계속되면 주식 시장도 위험하다고 내다봤다. 스턴 애널리스트는 "X 데이트가 가까워질수록 투자자들은 초조함을 느낄 것"이라며 "금이나 국채로 자금을 옮기려 주식을 매도하는 공황 매도(패닉 셀)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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