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붉은 모래..멜버른 두개의 로얄보타닉가든 [함영훈의 멋·맛·쉼]

2023. 4. 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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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멜버른⑱

[헤럴드경제, 멜버른=함영훈 기자] 멜버른에 주말이 찾아오면, 도시 내 여러 청정 생태 공원들에 시민과 여행자가 북적거린다. 최근 호주 제1도시로 등극한 멜버른이 그린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범을 보인다.

대표적인 곳이 멜버른시티-크랜버른에 있는 두 개의 로얄보타닉 가든이다. 영국 왕에 세웠다는 타이틀을 단 곳 답게, 청정, 행복, 휴식, 공생, 땀방울과 보람, 건강, 야외쿠킹, 웃음, 배려 등 인간이 추구하는 좋은 요소들이 밀집돼 있다. 크랜버른 로얄보타닉 가든의 신비스런 붉은 모래 정원은 난대지방 라테라이트 적토, 한국남쪽 적황토와 색깔은 비슷한데, 더 진하고 모래 형태라서 시선을 뗄수없다.

크랜버른 로얄보타닉가든 레드샌즈파크
멜버른 리치몬드 로얄보타닉 가든, 온전한 자유의 일광욕. 배경이 되는 조각배는 르느와르풍 회화를 연상시키는데, 풍경속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처녀뱃사공이 더 멋을 부린다.

시민과 여행자들은 2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는 공공 바비큐 불판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동양식 건강 수액을 마시며, 자전거 하이킹을 즐긴다. 20대 부터 60대 까지 럭비풋볼 같은 격한 운동도 즐기고, 야라강 뱃놀이도 한다.

견공들도 신이 났다. 푸른 공원을 맘껏 활보하고 지난주 만났던 이웃집 멍순이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는, 그들에겐 오늘이 그날이다.

반려동물 시대, 로얄보타닉 가든에서도 ‘개팔자 상팔자’

풋볼장에선 20대에서 60대까지 역동적인 파워가 넘치고, 보타닉 가든 곳곳의 포토존에선 인생샷 남기기를 위한 다양한 포즈가 난무한다. 즐거워진 사람들의 표정을 연못의 블랙스완은 흐뭇하게 감상한다.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한 20대 여성이 잔디밭에 누워 호수의 조각배를 배경으로 멜버른의 가을햇살을 온몸으로 흡입하는 모습을 통해 평화를 목도한다.

▶인정과 건강 넘친 멜버른의 주말= 크랜버른 보타닉가든, 신비의 레드샌즈파크에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 허둥대는 한국인 여행객들을 위해 버윅-크랜버른 마을 791번 버스 여성기사는 적당한 곳에 같은 회사 후배 남성 기사가 모는 792번 버스를 연결해주려고 바삐 무전교신을 한다. “너 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야? 왜 무전 안받니? 한국인 두 분이 너의 버스로 달려가니 조금 만 정류장에 더 기다려~”하면서 다그치는 동안, 한국인 여행객들은 고마워 어쩔줄 몰라한다. 그녀는 한국인 일행이 무거운 짐을 끌던 노파의 짐을 버스로 들어올려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앞서, 한국인 여행객은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에서, 평소 몸에 밴 경로사상을 발휘해 무거운 짐을 계단 아래로 내리지 못한 멜버른 어르신의 짐을 들어 안전하게 내려주기도 했다. 멜버른 할머니는 처음 본 한국인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791번 버스의 여성기사가 베푼 친절은 한국인이 멜버른 어르신에게 베푼 호의에 대한 답례일지도 모른다. 해외여행 가서 그 나라 어르신을 우리집 할머니 처럼 대하면 그들은 매우 감격해 한다.

샌드링엄 아이들의 플로깅

그리고 해질녘 샌드링엄 어린이들의 환경정화 봉사활동 해변 플로깅에 여행자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출장 태권도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던 한국인 워킹홀리데이 여대생들은 석양이 드리워진 멜버른 시티행 메트로 열차 안에서 보람찼던 오늘 하루 이야기를 동포 아저씨들에게 털어놓았다. “워킹홀리데이 동안 고단했던 때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우리말 쓰면서 얘기하니 속이 다 시원하네요”라면서.

그렇게, 햇살 찬란한 초가을 멜버른의 주말은 인정과 건강미, 웃음과 보람이 아름답게 교차하고 있었다.

리치몬드역의 여행자들

▶리치몬드 로얄보타닉 가든= 주말 오전,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에서 메트로를 타고 리치몬드역에 내려 청년과 중년들이 뒤섞인 럭비 잔디구장를 지나고 야라강을 건너 500m만 걸으면 로얄보타닉 가든과 마주한다.

세계적인 멜버른 리치몬드 럭비경기장에서 중년과 청년이 섞여 주말 아마추어 끼리 경기를 하고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 닿지 않은 듯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멋지며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멜버른 로얄보타닉가든이 푸른 웃음을 짓는다.

가든에 도착하기에 앞서, 야라강변 공공 전기구이 시설 곳곳엔 아버지가 고기를 굽고, 어머니가 건강 수액을 가족과 이웃에게 나눠주는 풍경이 펼쳐진다. 다가가니 이방인에게도 먹을 것을 내어준다. 일가족과 이웃집 가족이 합세해 10여명이 같이 소풍왔다고 한다.

로얄보타닉가든 가기 진전 야라강변의 가족 소풍 풍경. 음식 준비의 8할은 사진속 딸과 대화하는 아버지가 다 했다. 이웃집 아저씨가 뭐 부터 먹을지 고민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몇 발짝만 옮기면 럭비풋볼 경기장 ‘고쉬의 목장’(Gosch's Paddock)이 있다. 그리고는 1956년 멜버른 올림픽이 열렸던 곳, 올림픽 공원이 이어진다. 멜버른풋볼클럽이 홈구장이었던 고쉬의 목장에선 호주 풋볼 리그(AFL)의 중요 경기가 열리던 곳인데, 주말 동호인과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로얄보타닉 가든 입구엔 ‘인생은 수목들에 의해 풍요로워지고 지속가능해진다’는 표지판과 함께 지켜야할 수칙과 에티켓, 기본정보를 적어두었다.

메인 호수인 오너맨틀호엔 뱃사공이 더 멋을 내는 조각배가 르느와르 ‘보트파티 오찬’ 그림에 나오는 옷차림을 한 신사와 숙녀를 태운 채 떠다니고, 그 옆 작은 연못, 한국여행객들이 붙여준 이름 ‘흑조의 호수’엔 블랙스완들이 떼지어 물고기 사냥을 한다.

로얄보타닉 가든 또 다른 소풍가족

정원엔 동백에서 열대우림식물까지, 길포일 볼케이노(Guilfoyle's Volcano)의 희귀식물에서 한국식 대나무, 나리꽃까지, 다양한 수초가 공생한다. 멜버른 출신 한국방송인 샘해밍턴이 “멜버른엔 하루에도 4계절이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곳엔 모든 날씨에 살 만 한 식물들이 한데 모여산다.

산책길가에 30m 가량의 높이로 우뚝 선 한 고목, ‘모어튼 베이 피그’라는 닉네임을 가진 나무는 이런 편지를 붙여놓았다. “난 늙은 나무야. 내 껍질에 글씨를 새기지 말아줘. 그러면 난 서서히 죽어. 이 공원의 챔피언(우두머리) 답게 오래오래 여기에 있고 싶어”라는 말은 시민과 여행자에게 경종을 울린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무들과 오래오래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이웃과 얘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편지였다.

멜버른 리치몬드 인근 로얄보타닉가든에 5월의 가을이 오고 있다.

어린이 정원에선 아이들이 기어 다닐 수 있는 식물 터널, 올라갈 수 있는 바위, 숨을 수 있는 대나무 숲도 있다. 어른들은 공원 곳곳에 있는 테라스나 자딘 탄이라는 카페에서 자연을 관망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버스킹도 이뤄지는데 잔디밭이 야외극장이자 객석이 된다.

대나무숲엔 복색과 용모만 봐도 알수 있는 중국계 젊은이들이 한창 인스타그래머블 사진 찍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인 여행자들을 위해 기꺼이 포즈를 취해준다.

중국계 학생이 로얄보타닉가든 대나무숲에서 한국인 일행에게 멋진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대나무에 한자 낙서가 너무 많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신비의 붉은 모래 공원과 크랜버른 로얄보타닉가든= 로얄보타닉 크랜버른(Cranbourne) 가든으로 가는 과정은 험난했다. 골프장, 경마장, 경견장, 자연보호구역, 레드샌즈파크 등이 모여있고 워낙 광대하기 때문이다. 친절한 기사들이 모는 791,792번 버스를 타고 가다 가든의 어느 한켠에 잘 내려야 걷는 거리를 줄인다. 한국인 일행의 목적지는 레드샌즈파크인데, 골프장쪽에서 하차한뒤 3㎞ 가량을 걸어갔다. 그것도 골프텔의 착한 투숙객이 카트를 몰고가다 우리를 태워줬기에 망정이지 10리는 훨씬 넘게 걸을 뻔 했다.

착한 카트 드라이버

이곳에선 17만여종의 식물들과 그 사이로 왈라비 등 야생동물이 자유롭게 생활한다. 웜뱃 몇 마리가 후닥딱 몸을 움직이며 사람을 놀래키는데, 사실은 사람이 그를 놀래킨 것이다.

보타닉 가든 외에도 레드샌즈센터, 보타닉 리지, 골프장, 우드랜드 피크닉 구역, 스트링기(유칼리 일종)바크 피크닉 구역, 깁슨즈 힐, 원형극장 등 11개의 광대 구역으로 구성돼 있다.

로얄보타닉가든 크랜버른. 사진 속 왼쪽 위 레드샌즈파크도 크다고 느꼈는데, 가든 전체로 보면 아주 작다.

레드샌즈파크는 참으로 신비롭다. 주홍색 모래가 드넓은 평원에 드러나 있다. 철분을 함유한 열대 적색토 라테라이트와 닮았지만 라테라이트는 식물이 살기에 부적합한데 비해, 이곳 레드샌드에는 식생도 풍부하다.

다만 관광객들이 붉은 모래를 더 잘 볼수 있도록 둥근 꽃밭 수십개를 드넓은 적사장에 예쁘게 배치해 놓았다. 익스플로러 관람차를 타고 다녀야 15ha에 달하는 정원을 구석구석 탐방할 수 있다.

붉은 모래밭 앞 푸른 정담

레드샌즈 공원을 나오자 와라비가 몇 마리가 이방인을 경계하며 뛰어갔다 멈췄다를 반복한다. 이곳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곳까지는 또 3㎞가량을 걸어야 한다. 이곳엔 크랜버른 다운타운에서 우버택시를 불러 오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레드샌즈파크 앞 마을에서 집구경하려고 개방된 나무문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더니 주인이 저녁을 먹다말고 냉큼 달려나와, “캠핑카가 집집마다 있느냐”, “현지인들은 어딜 놀러가느냐” 등등 아닌 밤중의 홍두깨 같은 질문에도 척척 친절하게 답해준다.

크랜버른 시내로 가는 동안 야생토끼, 호주 팔색조 등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허기진채 3km를 걷는 동안 한국의 경마장 보다 더 커 보이는 경마장도 있었다. 특히 대형 개 경주장도 발견된다. 땅이 넓으니 별 걸 다 만드는 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크랜버른 다운타운에 있는 한국전쟁 등 참전용사 추모비

▶한국전 참전용사비에 일동 묵념= 느린 걸음으로 40여분 지나 크랜버른 시내를 발견하자 기쁨이 샘솟는다. 야생도 좋지만 사람사는 곳도 참 좋은 곳임을 새삼 깨닫는다.

다운타운 입구 호주브랜드 콜드락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은 뒤 시내 들어가서 햄버거나 먹자했는데, ‘미라마’라는 값싸고 맛이 기가막힌 소고기 요리집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배불리 먹고 싸가지고 와서 다음날 비상식량 비축했다.

기차역으로가는 버스정류장 옆에는 참전용사 추념비가 있다. 호주가 한국전쟁때 용맹하게 싸워준 것이 너무도 고마워, 크랜버른 참전용사 위령비 앞에서 진심어린 묵념을 했다. 위령비에는 1,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말라야분쟁, 동티모르 사태, 이라크전쟁 등 평화를 위해 호주 용사들이 참전한 전쟁들이 모두 기록돼 있었다. 〈계속〉

크랜버른 가든에도 야생동물들은 늘 보였다. 한국인이 5m 앞까지 가도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는 왈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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